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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티브 Antibes Aug 12. 2022

파리를 누비며 - 여행은 조우이자 관점을 바꾸는 시간

까르나발레 박물관 구경 - 우연이 만들어내는 즐거움

Benoit에서 프랑스 정찬을 여유있게 맛 본 후, 저녁 7시로 예정되어 있는 졸업식 전야제까지 정처없이 파리를 떠돌기로 순간 마음먹었다.

작은 가방에 깨알같은 글씨로 오늘의 계획된 여정을 적은 수첩이 계속 나를 째려 보는 듯한 느낌과 그 깨알같은 글씨들을 적어내리기 위해 리서치를 수행한 과거의 나에게 심히 죄책감을 동시에 느꼈지만, 조용히 판도라의 상자를 닫듯이 그 아우성들을 뒤로 하고 그 마음의 공간을 빠져 나왔다.

이미 아침 오랑주리 박물관에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기도 했고, 약간 오버한 점심 식사로 나른해 지기도 하였으나, 그 이유 때문이라기 보다는 정처없이 멍한 상태로 파리의 어느 골목길들을 마주하고 싶은 정처없음의 희망이 갑자기 솟구쳤기 때문이다.


하여, 정처없음을 추구하였으나, 파리 여정 리서치 시간의 기억이 머리에 전혜린의 수필 속 가스등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 기억들이 계속 소환되기는 했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마음속으로 오락가락하며 걷다가 눈에 번쩍 들어온 거리에서 발길을 멈쳤다. Rue des Rosiers (장미덩굴의 거리)였는데, 거리 모퉁이에 장식된 유사 장미 덩굴도 독특했지만, 갑자기 이스라엘의 어느 거리로 공간 이동한 듯한 유대인들의 거주지가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서점, 까페, 빵가게, 고기가게 등의 분위기가 다른 파리 지역에서 볼 수 있었던 분위기와 다소 다르기도 하고, 유대인 전통 복장을 한 사람들과 관광객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마구 섞인 풍경이 또 색달랐기 때문이다.



우리는 왜 여행을 할까.

출장이나 학업 등 강제적으로 장소를 옮겨 새로운 여정을 거쳐야만 하는 강제된 여행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기 저기 다양한 여행을 다닌다. 아마도 현재의 모습과 장소를 벗어나 새로운 장소를 새로운 기분으로 탐험하는 요소도 물론 있겠으나, 그런 '새로운 형태의 의식주'라는 암묵적인 목적의 여행이라도, 기억에 뚜렷이 남는 여행의 순간들은 어쩌면 순간적인 우연한 찰나에서 느끼는 깊은 에너지의 순간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독특한 풍경일수도 있고, 평소 못 느끼던 맛일수도 있고, 평소 입지 못했던 보지 못했던 디자인의 옷이나 장신구 등을 경험하는 순간 혹은 찰나의 기쁨이 아닐까. 

또 그렇게 새로운 풍경과 문물을 접하면서, 고정되었던 나만의 시각이 좀 더 유연해 지고, 나만의 시각들로 점철된 꼰대스럽게 딱딱해진 뇌를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찰나의 집합이기도 한 것 같다. 하여, 여행은 관점을 조심스럽게 다른 방향으로도 틀어보고 요리보고 조리보는 사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유대인이 파리에 사는 것이 놀라운 일도 아니지만, 순간 파리의 유대인 공간이라는 컨셉이 새롭게 다가왔다. 가게 하나씩을 들락날락 해 보고 싶었으나, 정처없이 또 걷기 시작했고, 문득 Musée Carnavalet에 접어들었다. 루이14세 동상이 Musée Carnavalet라는 대저택 (실제로 대저택을 파리 시청에서 매수하여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함) 중간에 떡하니 서있고, 중세 시대로 거슬로 올라가는 파리의 다양한 모습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라고 한다. 박물관 1층에는 오래된 파리 상점들의 간판을 대신하던 다양한 문 장식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하나씩 모아둔 정성도 그것이지만, 어떤 상점을 나타내는지 찾아내는 수수께기 풀이도 재미를 더했다. 


박물관 입구에 서 있던 루이 14세 동상 (맨 아래 오른쪽 사진)과 1층에 전시된 오래된 파리 상점의 유사간판들.


중세 시대의 파리도 흥미롭긴 하지만, 1547년부터 18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부유한 파리지엥들의 고급 저택 내부 인테리어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과감한 색채의 인테리어와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벽들, 내 집안으로 옮겨 놓고 싶은 편안해 보이는 소파, 실용적이면서도 고급짐이 흐르는 가구들을 하나씩 뜯어보는 재미와 신선함이 시간을 멈추게 한다. 


들어가 살아도 될 듯한 고급 파리지엥 주택 인테리어가 흥미롭다. 고급짐이 흐르는 가구들도 탐나는 대상이다.


프랑스혁명을 거슬러 BELLE ÉPOQUE(벨에프크)를 지나 현대에 이르는 동안 변화하는 파리상과 또 파리지엥들의 문화 생활을 엿보는 느낌도 색달랐지만, 이 전시들은 박물관의 높은층에 속해 있어, 이미 저층을 통과하며 신기로움을 체험한터라 다소 뇌 용량이 한계에 다다르는 시점이기도 했고, 많은 양의 사진과 그림 등을 소화하기에는 짧은 시간 벅찬감을 느껴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아마 짧은 역사 지식 때문이기도 할 터이고 육체적인 피로감의 누적으로 인한 홈(Home = Hotel) 급행의 강한 욕구가 불일듯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 안단테 안단테로 시작한 Musée Carnavalet 관람은 알레그로 장단의 발걸음으로 급히 마무리되었지만, 정처없는 발걸음이 안겨다 준 소중한 경험으로 그리고 추억으로 남으리라. 알레그로로 마감한 박물관 고층의 전시들은 역사 공부를 좀 더 하고, 지식과 대조하며 확인하는 소중한 견학의 기회로 접하리라 조용히 계획하며 한낮의 빛이 사그라드는 늦은 오후의 파리 길거리로 다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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