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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다 Nov 02. 2020

#09 일기장

골동품점에 들어온 아홉번째 물건



물건 주인의 말

가게 주인 물건임.




가게 주인의 말

일기를 쓰기 시작한지 2년이 넘었다. 이 일기는 초등학교때 쓰던 일기와 다른 것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예전에는 숙제라서 억지로 썼다면 지금은 쓰고 싶어서 쓴다는 사실. 초등학교때는 쓰기 귀찮기도 하고 쓸 얘기가 하도 없어서 예전 일기를 재탕해서 쓰곤 했다. 그러다 보니 ‘오늘은 놀이공원에 다녀왔다.’라고 시작하는 일기가 일주일에 2개씩 나왔다. 담임 선생님은 '얘가 놀이공원을 엄청 좋아하는구나.' 라고 생각하셨을까? 알고서도 그냥 넘어가주신거겠지? 아무튼, 지금의 내가 일기를 쓰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생각을 정리 할 수 있다는 것과 내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알 수 있다는 것. 뿌연 생각과 감정들을 글로 풀어내면 한결 선명해지고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내가 이런 고민을 했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그 때의 문제가 해결된 지금처럼 지금의 고민도 나중에는 해결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긍정을 할 수 있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은 이럴때 쓰는 건가보다. 2년 동안의 일기들을 훑어보며 지금도 생각해볼만한 흥미로운 문장들을 몇가지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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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정이란 생각보다 너무 가볍고 가려지기 쉬운것이여서 나도 모르게 느껴버린, 혹은 느낀 척해버린 감정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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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이 모두 빗나가버리는 순간들. 정답이 오답이 되고, 오답이 정답이 되어버릴 때. 

어쩌면 삶을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자기합리화를 잘하는 사람의 몫이 아닐까. 결과가 어떻게 되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자기가 행하는 것들이 모두 정답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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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 파 묻힌 밤. 눈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건데 하얗고 느리게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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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날때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야 라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가 보였으면 좋겠다. 주인을 만나지 못한 수줍은 단어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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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이 맞는 것일까.

아무래도 넘어져보기 전까진 아무것도 모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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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앞에서 웃을 순 있지만 아무 앞에서 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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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포장에 급급하지 않았으면. 결국 날 말해주는 건 사소한 말과 행동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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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이 고장났다. 마치 사이키 조명처럼 반짝거리며 칙칙한 복도를 비춘다. 유별난 것들은 다 숨죽여야하는 곳에서 저 전등이라도 자신을 다른 전등들과 구분시키려해서 다행이다. 위태롭고 아름다운 저 빛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잠시 서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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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다먹고 남은 귤껍질을 버리려고 손에 들고 있었다. 손을 맘대로 쓰지 못해 답답해하며 10분 넘게 쓰레기통을 찾아 두리번 거렸더니 슬슬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도로변에 작고 더러운 쓰레기통을 발견하여 마침내 버리는데 성공했다. 귤껍질때문에 습해진 손바닥에 미간을 찡그리며 코를 대었을 때 상쾌한 귤향기가 확 피어올랐다. 아로파테라피를 한 것 마냥 기분이 좋아졌다. 고통 끝에 낙이 온다는 명언을 한낮 귤껍질에서도 느낄 수 있다니 사는건 참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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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떤 이별노래를 듣던, 슬픈 연애소설을 읽던, 로맨스 영화를 보던 결국 내가 아닌 그 사람을 생각할 거잖아. 너의 슬픔속에 내가 없다는게 너무 서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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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떠올라서 글을 쓰다가 누군가를 떠올리고 싶어서 글을 쓸 때가 오면 나는 이제 괜찮아졌다고 말해도 되는것일까. 질문에는 대답이 없고 눈앞의 촛불은 촛농을 녹여낸다. 뜨겁고 투명한 촛농이 희뿌연 덩어리가 되듯이 투명했던 그리움도 뿌옇게 흐려져간다. 누군가의 행복을 빌며 나는 따뜻하게 식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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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하는 것들이 다른 무엇이 되기위한 것이 아니라 껍데기 하나를 벗는 일이기를. 나를 꾸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일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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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저 나무에 매달린 하나의 나뭇잎이라면 기둥 밑에 숨어서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살다 시들어 버리는 것보단 그래도 위로 자라나 바람에 온몸을 내맡긴 채, 주변이 어떻게 생겼는지, 내가 자라나는 공간이 어떤 공간인지, 한번이라도 마주할 수 있는 나뭇가지가 되는 것이 났겠다. 맨몸으로 휘어지기만 할뿐, 부러지지 않는 저것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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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묻은 흙이 계곡물에 씻겨 내려가듯이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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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사람은 움직여야해. 팔다리가 달린 이상 손가락으로 글을 쓴다던가, 발가락으로 양말을 신고 산책을 나갈 준비를 한다던가. 무섭다고 아무것도 안하면 안돼. 


지금의 나 :  아무래도 이 당시에 무언가 움츠러드는 일이 있었나보다. 과거의 내가 저런 생각을 하다니 지금의 나도 본받아야겠다. 그나저나 발가락으로 양말을 어떻게 신지?


이상, 앞으로의 일기장에도 채워질 문구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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