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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Dec 10. 2023

올해도 어김없이 인사철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128


매번 비슷비슷하면서도, 늘 새로운 인사철입니다.


어떤 이는 잘리거나,

어떤 사람은 임원이 되거나 더 올라가는 건 비슷한데,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 매년 다른 게 신기합니다.


신문에는 세대 교체니 뭐니 하는 이유와 함께, 사장이 되거나 임원이 되는 소식을 전하지요.


현실에선 신문에서 말하지 않는 속 사정과 인생이 담긴 경우가 많습니다.


40대 초 비교적 이른 나이에 임원이 된 분이 계셨습니다.


젊은 세대로의 전환이 화두다 보니, 60을 넘으신 분은 집에 가시고, 40대 혹은 그보다 어린 사람을 임원으로 발탁하는 것이 어떤 trend 처럼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임원 평균 나이가 어려지고 있다고 광고합니다. 보통 보면 그 평균 나이가 40대 후반 정도 됩니다.


이른 나이에 1/100의 확률을 이겨내고 임원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크게 두 부류입니다.


정말 일을 잘해서 탁월한 성과를 낸 사람


아니면


일로는 탁월할 성과를 내지는 못하지만, 그것을 누를 수 있을 정도로 아부를 잘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말로 loyalty가 좋다. 즉, 충성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드물게 있는, 일도 정말 잘하면서 층직한 사람들과는 구분해주세요 ^^)


성과를 잘 내는 사람이 보고도 잘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은 잘하는데 보고를 잘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없는 성과도 만들어서 보고를 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들이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인 양 보고하기도 합니다. 일은 잘하지만 처세가 약한 사람들이 그렇게 당하는 경우가 많지요.


(물론, 일도 못하고, 보고도 잘 못하는 임원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인척관계처럼 특별한 관계가 있거나, 정말 탁월한 입 안의 혀 같은 아부 능력이 있어야겠지요.)


아부꾼들은 당연히 자신이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을, 뭔가 대단한 것인 양 현란한 말과 presentation 하는 걸 잘합니다. 어떤 제도를 만들었다고 상을 받고, 그 제도가 잘못 되었는데 그걸 없애서 비효율을 제거했다며 상을 받는 걸 보기도 했습니다.


상을 준 사장이 아버지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성은 달랐으니 양 아들이겠지요. 술 마시고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였지요.


이번에 1년 만에 잘린 젊은 임원은 안타깝지만 후자였습니다.


아무도 임원감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본부장 출근시간에 맞춰 나오며 인사를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어필할 정도로 열심히 했지요.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오는 본부장과 사장을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는 등 업무 능력은 바닥이었지만, 아부 능력은 최상이었습니다.


자신을 발탁하는 데에 힘을 써준 본부장이 60 줄에 걸려 나가자 모두들 그 40대 임원의 퇴직을 예상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러려면 차라리 임원이 되지 말고 부장으로 정년까지 좀 더 맘 편하게 다니는 게 낫지 않냐는 말들을 했습니다.


대기업 임원의 엄청난 숫자의 연봉을 신문 지상에서 접하며 짧게 빡세게 해서 큰 돈 챙기고 쉬거나 하고 싶은 것 하는 게 낫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임원도 실적이 정말 좋거나, 오래 해서 고위 임원이 되어야 5억, 10억, 20억 그렇게 받는 것이지, 처음 상무가 된다고 해서 그런 연봉을 받는 일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참고로, 재벌 회장님은 100억을 받기도 합니다. 단위가 다르지요. 그것도 한 회사에서 그렇게 받고, 여러 회사에서 동시에 고연봉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큰 돈도 배당금에 비하면 적은 돈이라니 ㅎㅎ 할 말 많지만 더 하지 않겠습니다.)


어떤 경우 해외 수당 받는 주재원 부장보다 실수령액이 적기도 하지요. 사장 등에게 직접 갈굼 당하고 책임은 커서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면서 말입니다.


저 또한 그 사람을 아는지라 자연스레 이번에 짤리겠군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실적도 없고 조직 관리도 잘 못해서 엉망이고, 본인은 아부하고 윗분들 따라 다니며 밥 먹고 술 따르는 게 다 인데도 자신의 앞날은 창창하다고 떠벌리고 다녔지요.


아부를 많이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임원이 되더니 안하무인이 되고, 일은 더 안 하고 회사에 나오면 주로 담배를 피우러 많이 다녔습니다. 어찌나 하루에 담배를 많이 피우는지 같이 엘리베이터에 타면 담배 냄새와 술과 고기 냄새 등의 악취가 코를 찔렀지요. 어쩌면 욕심과 스트레스로 속도 썩고, 사람도 썩어 가서 그런 악취를 풍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저도 자중하고, 지저분하게 살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임원 인사 발표가 나고, 그 분은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마치 나라를 잃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하긴, 인생의 목표가 임원이었고, 부족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꿈을 이루고자 정말 간 쓸개 다 내주며 아부하고 굴렀는데 1년 만에 그렇게 되었으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을 겁니다.


더욱이, 임원이 되었을 때는 연봉도 높아지고, 방도 생기고 차도 주는 등 100가지가 바뀐다는 말이 있는데, 높이 올라간 만큼 떨어지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 모든 것을 잃은 것에 더해, 대기업 임원이 되고 나서는 다른 곳에 가기도 애매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와 친한 형님도 임원 승진 때는 좋아서 광대가 마스크를 뚫고 나올 정도였는데, 잘못 꼬여서 1년만에 짤리고 지금 집에서 놀고 있습니다. 40 대 후반 한창 일할 나이인데 말이지요.


평직원은 그냥 평직원으로 가서, 원래 있던 곳 일이 없어져서 비슷한 일 있는 곳으로 옮겨가 원래 하던 일을 하면 되지만, 임원은 그 경력이 되려 발목을 잡기도 합니다.


“대기업 임원까지 하셨는데, 이 대우 받으면서 이런 일 하실 수 있겠어요? 연봉도 반도 안될텐데요.“


이런 수모를 겪기도 하지요. 하지만, 40대에 직장을

잃고 100 세 시대에 60년을 놀기는 힘든데, 미리 준비가 되어 있거나 집이 원래 부자가 아니면 참 어려운 상황에 빠지는 경우를 봅니다. 60까지 정년으로 부장으로 퇴임하거나, 늦게 임원을 달아도 임원을 60 가까이까지 하면서 그래도 몇 년 고연봉 받는 게 더 나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젊은 나이에 임원이 되어 승승장구하며 10년, 20년 임원을 계속하면 제일 좋겠지만, 세상의 흐름과 시장의 변화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임원이라는 것도 결국 재벌, 즉 남이 시켜주는 것이고, 계약직이라 맘에 안 들면 더 쉽게 뺏어 버릴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속성을 잘 아는지라 똑똑하고 자기 할 말 하며 일 잘하던 사람도 임원이 되면 눈치 보느라 바보가 되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물며, 능력 없는 아부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속된 표현이 있지만,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옮기진 않겠습니다.


당장의 큰 상실감과 어두운 미래에 계속 눈물을 흐리는, 그 전직 임원에게,


“진짜 이걸 몰랐냐? 앞만 보고 그렇게 살지 말고, 주변도 좀 보고 챙기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살아라.“


라는 직언을 해주려다, 더 슬퍼질까 굳이 말을 하진 않았습니다. 말은 줄이고 오지랖은 펼치지 말라는 옛 성현들의 가르침을 오늘도 성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며 퇴임 인사라는 메일에, 구구절절이 자신의 마음을 쓰고, 상처나 피해를 줬으면 용서해 달라는 말을 썼습니다. 애초에 상처나 피해를 주지 말았어야지, 앞으로 회신도 못 받을 이메일에 이런 말을 쓰면 뭐 할까요.


회사를 다니고 조직을 이끌고 일을 하다 보면 실적 압박을 받고, 관리를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상처나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 쳐도, 최대한 그러지 않으려고 신중하게 조심하며 살아가야 하는데, 보통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을 보면 개차반인 분들이 많습니다. 마지막에 나가면서 걸리는 것이 있다 보니 본인 마음 조금이라도 편하려고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진정성 있게 다가오진 않지요.


직원들을 내려다 보며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큰 소리를 치던 본부장도, 그 옆에서 달라 붙어서 한 자리 하던 젊은 임원도 인사 발령이 나고선 사라졌습니다. 한분은 이미 미리 통보를 받고 그날로 짐을 싸서 도망치듯 가셨습니다. 젊은 임원은 눈물을 흘리다 보안팀 감시 하에 짐을 싸고 회사 노트북과 차 키를 반납하고 집으로 갔구요.


그 분들의 텅 빈 방을 보니 갑자기 이런 옛 시가 떠오르네요.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고려 말 길재라는 분이 남긴 시인데, 이 맘 때쯤 한 번씩 생각이 나곤 합니다.


나가신 분들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기 보다,

무엇보다 건강하시기를 바래 봅니다.


그래도,

서두에 달아둔 이전 글에서처럼,

꺼진 불도 다시 볼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으니까요.


https://brunch.co.kr/brunchbook/realcompany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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