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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Mar 17. 2024

실직과 취직 사이

소설 보이스 피싱 2


이 글은 보이스 피싱 관련 기사 등을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적은 100 프로 허구입니다. 보이스 피싱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가 작년만 2000억 원 가까이 되고 계속 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하루 빨리 피해액이 0이 되어 피해자 분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적어 봅니다.


아래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6dad664f134d4c4/758




“B 메디컬인데요.

어디 다른 곳 취직하신 건 아니지요?“


“네, 네”

좋아하는 남자 전화도 이렇게 반갑지는 않았을 거다. 전화기를 귀에 바짝 붙이고 최대한 공손하게 말했다.


“경력이나 나이나 저희가 원하는 분이시라 연락 드렸어요. 언제부터 근무 가능하세요?”


‘내일부터 당장 가능해요!’

라고 말이 튀어나올 뻔 한 걸 참고, 다음주부터 가능하다고 말했다. 너무 없어 보이고 급해 보이는 것도 싫었다. 더군다나, 막상 취직 걱정하다 일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으니 며칠 더 쉬고 싶은, 화장실 들아갈 때와 나갈 때 다른 심정. 변비는, 아니, 일자리 걱정은 이렇게 해결되었다.


“네, 원하는 급여 수준은 어떻게 되세요?

지난 번 일하셨던 병원 급여 명세서 보내주시면서 말씀 주세요.“


“네, 지난 병원에서 얼마 받았고, 거기서 조금만 더 올려주시면 감사 드리겠어요. 급여 명세서는 보내드릴께요.”


그것도 겨우 말했다.

취직 시켜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지난 번 얼마 받았으니 그만큼만 주세요 하려다, 정말 마지막 용기를 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도 돈의 힘인가?

하기 싫은 말도 기어코 하게 만드는 힘.

어쩌면 애초부터 그 많은 사람들이 일 년 내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에 나와서 저녁까지 때로 원치 않는 사람들과도 일하게 만드는 구조일지도.


“네, 잘 알겠습니다.

좋으신 분 모시려면 그렇게 해야지요.


참고로, 4대 보험도 당연히 다 들어드리구요. 복지 조건은 어쩌도 저쩌고...“


어렵게 꺼낸 말에 상대방의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오니 기분이 좋아졌다. 한국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알고, 돈은 내 통장에 꽂혀야 내 돈인데. 우리는 늘 사탕발림에 속아 넘어간다. 친구에게 식장 들어가기 전엔 모르는 거라 조언하면서도.


“그런데...”


아, 촉

안 좋은 예감

제발 누가 저런 토 좀 안 달았으면 좋겠다.

알았으면 아는 거지, 왜 저렇게 조건을 다나.

사회생활하면서 이런 일들을 겪다 보니, 남친이 근데 하며 이해 못 할 말을 하면 짜증이 치솟는다.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되는데, 왜 이렇게 남자가 말이 많고, 말을 바꾸는 건지.


세상에 치일수록 인내심은 부족해지고, 쉽게 만나서 빨리 헤어진다. 남친도, 회사도. 남친에겐 때로 내가 지 엄마야 화가 나기도 하는데, 공주 대접 받고 싶어 하는 나 또한 짜증 유발자일지도. 회사 구내식당에서도 맛없는 반찬이나 머리카락을 보면 짜증이 치솟는다. 집에선 그런 반찬마저도 없는데.


“저희 회사 규정상 한 달간 수습기간을 거쳐야 하거든요. 그리고 문제 없으면 근로계약서 사인하고 정상 근무하시면 됩니다.“


“그럼, 수습기간 동안 급여는...”


결국 돈 벌려고 회사 다니는 건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수습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니 당황스러웠다.


그래 뭐, 수습이면 어떠냐. 돈만 많이, 아니 월급만 제때 나오면 되고, 한 달 열심히 하면 되지 뭐. 근데, 내가 대학생 인턴도 아니고, 의사 인턴도 아닌데, 경력직한테 무슨 수습인지 참. 세상 팍팍하다 정말!


“아, 그리고 급여는 걱정 마세요.

수습기간엔 80 프로 나가구요.


그리구요.“


사람의 말은 참 특이하다.

하던 말을 잠시 멈추면 더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뭐? 빨리 말을 하라고. 속 터지게 하지 말고.

한국 사람 성질 급한 거 모르나.

속 터지게.


(보통 이러면 안 됩니다 - 작가 주)


“저희 의료기기 계약금 같은 금액 거래처 수금을 하시면 해당금액의 3프로를 드려요.”


“네?“


이거 뭐지?


의료 사무직이라더니, 수금원이나 채권 추심원 뭐 그런 건가? 난 생긴 것도 인상 쓰면 무서운 마동석도 아니고, 싸움닭처럼 달려들지도 못하는 한 떨기 평화주의자인데.


“불법 채권 추심 그런 거 아니구요.

정상 수금 업무예요. 저희가 인원이 모자라다 보니 종종 사무직 분들에게도 그런 업무가 있어요.

만나서 소리 지르고 돈 내놓으라고 하는 그런 일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이상한 건,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 더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어떡하나?

이 불경기에 마땅한 일자리는 없고, 먹고는 살아야 하고. 불법적인 일은 아니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안 준다고 하면 안 준다고 하면 되는 거 잖아.

받으면 수수료까지 챙기니깐 땡큐고.


일단 해보자. 어차피 월급은 80 프로 나온다니까.


에휴, 눈칫밥 먹는 것도 힘들다. 어디서나.


“네, 해볼께요.“


전화를 끊고 혹시나 해서 B 메디컬을 포털에서 검색해 봤다. 바로 검색되었고,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래 저래 둘러보니 의료 기기도 팔고, 관련 서비스도 제공하는 안전한 회사 같았다. 관련 기사도 있고.


‘괜찮은 회사네. 일하고 월급 받는 데도 문제는 없을 것 같고. 아이고, 신경 썼더니 피곤하다. 좀 자자.‘


(보이스 피싱은 고도화 되어서, 실제 존재하는 회사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회사 대표 전화 등으로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안내 문자 전화 번호와 다를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더 악질은 그럴싸한 회사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전화 번호를 일치시킵니다. 여러 루트와 방법을 통해, 확인에 확인을 거치셨으면 합니다.


귀찮으실 수는 있는데, 사기 당해서 몇천만 원, 몇억 이상 날려 먹는 것보단 나으실 것입니다. - 작가 주)




D는 물끄러미 문자를 계속 보고 또 봤다.


정부 지원 대환대출 대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서민층의 고금리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하오니 많은 신청 부탁 드립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무시하고 지웠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카드 돌려 막기를 하다, 사채까지 손을 대서 방법이 없었다. 처음엔 몇십만 원 안 되는 소액이었는데 이자 때문인지 갚아야 할 돈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어 하다 보니 천 단위가 넘어가서 이제 감당이 안 되었다.


이자가 오른 것도 있는데, 신문 기사를 보면 몇 프로 올랐다고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올랐다. 방송국 놈들, 아니, 은행 놈들. 어려울 땐 국민 세금으로 자기들 살려달라고 하고, 평상시엔 예금 이자는 적게 주고, 대출이자는 많이 올려서 예대마진 장사를 아주 꿀같이 한다. 은행들 이자 수익이 몇십조 원이라고 하니 말 다했지.


그러면서 이자든 원금이든 상환이 하루만 늦어도 귀신같이 연락이 온다. 일하고 있을 때 받는 돈 갚으라는 독촉 전화에는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다.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가슴이 덜컹덜컹 내려앉는다. 은행이나 캐피탈 까지는 양반이었다.


사채는 온갖 욕설과 협박이 난무했다. 다 벗은 옷 사진 찍어서 보내라는 둥, 연락처 전부 다 보내라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잘못하면 눈이나 신장 떼가겠다고 할 것 같아 주변에서 빌리고 빌려서 겨우 정리했다.


친구나 가족 등에게 돈 빌려달라고 전화하고 말할 때도 죽을 것 같았지만, 사채업자의 돈은 떼먹었다간 진짜 죽을 것 같았다. 왜 보증 서지 말라는 말과 함께, 사채 쓰지 말라는 말이 금언처럼 쓰이는지 알게 되었다. 원래 알고 있는 말이었고,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느냐는 말을 들었을 땐 웃었다. 하지만, 직접 찍어 먹어보니 확실히 알게 되었다. 피부로, 온 몸으로 느끼는 직접 경험만큼 값진 것은 없다.


그렇게,

어느새 말로만 듣던 다중채무자가 되어 있었다.

안돼서 여기저기서 돈 빌린 사람. 흔히, 돌려 막기 상태로 답이 안 나오는 사람을 말한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에 45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거의 전 국민의 10명 중 1명 꼴. 학교 다닐 때 운동장에 450명만 세워 놓아도 복작복작 난리였는데, 감이 안 온다.


진짜인가?

진짜겠지.

나라에서 한다는데.


사기일지 모른다는 불안감보다, 빚의 압박이 더 컸다.


돈 앞에 사람은 약하다. 빚 앞에선 더 약하다.

돈 나고 사람 났냐!


어디선가 들었던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1588-14xx


080이 아니니까 보이스 피싱은 아닐 거야.


쪼들리는 상황은 불안감에 항거하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계속 만들어냈다.


전화만 한번 해보지 뭐.


(전화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링크는 더더욱 누르면 안 됩니다. - 작가 주)


“고객님, 안녕하세요.

상담원 E 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네. 문자 보고 연락 드렸는데요.”


“새 희망 대환대출 대상자시군요.”


“네, 맞아요.”


“네, 전화 잘 주셨구요.

상담을 위해 먼저, 성함과 주민번호를 알려주시겠어요?“


“네, 이름 D, 주민번호 xxxxxx-xxxxxxx"


"네, 확인 감사합니다.

대상자 맞으시구요.“


이런 저런 개인 정보를 캐물었다. 나라에서 이자 깎아준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알려달라는 것 다 알려줬다. 대화를 하면서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벌써 나에 대해 일부 알고 있는 것도 있는 것 같아 순간 싸했다.


그때 그냥 전화를 끊었어야 했는데.


고생스러워도 N잡러가 되어서 빨리 대출 갚을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나라에서 힘든 서민 도와준다는 말에, 깎아주는 이자 금액 차이를 보니, 힘든 생활에 혹했다. 아니,

잠깐 맛이 간 것 같다.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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