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음 중국을 만난 건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울 때 였습니다.
니 하오~
니 츠 판러마?
짜이지엔
우렁차게 따라 하면서 점수도 잘 받았는데요.
꽤 오래 전인데 독일어 대신 중국어를 권유해 주신 선생님의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요즘 영어는 기본. 중국어는 필수.
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으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중국을 처음 만난 건 중학교 때였네요.
삼국지를 처음 읽었던 것이 그때였으니까요.
그리고 일본 Koei 사의 삼국지 2부터 게임을 하면서 더 재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국의 역사를 갖고 일본 게임사가 대박을 터트린 게 재미있습니다.
일본 Sony의 Playstation에서도 Koei 사의 삼국 무쌍 같은 게임까지 만들며 계속 흥행작을 만들며 전 세계에서 돈을 쓸어 담아 왔지요. 거기에 돈을 보태 준 1인이 여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마도 중국에선 게임을 정신을 황폐화시키는 아편과 같은 존재라고 평가하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서구 열강과 무역전쟁과 그들의 침략 과정에서 아편 전쟁이라는 안타까운 역사가 있어서 중독의 해악을 잘 알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도 밤 10시 이후엔 20세 이하 청소년들이 게임을 못 하게 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 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어머니의 등 스매싱을 맞고도 PC 방에서 친구들과 미친 듯이 실력을 쌓았고, 임요한으로 대표되는 스타 크래프트에 이어, 페이커의 LOL까지 e-sports의 장을 열었습니다. NC Soft 같은 회사들이 리니지 같은 폐인 양산 게임을 만들어 조 단위 이상의 성공을 거두고 야구단까지 만들어 우승 후 게임 item으로 우승 ceremony를 하는 걸 보았지요. 저는 다행히 리니지 폐인 대열에 합류하진 않았고, 합류했던 한 후배는 학고 받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비싼 등록금 내놓고 학교를 가지 않고 게임했던 걸 보면, 그런 걸 보고 중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과연, 게임 산업이 음악과 영화 시장을 합친 것보다 매출이 더 높다더니 실감이 났습니다. 중국이 생각을 바꾸고 AI 시대에 '오공'이라는 게임을 만드는 이유라고 봅니다. 딱딱하게 살면서 게임기 한번 잡아본 적 없는 공산당 고위 간부들의 인생 경험을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신서유기라는 프로그램을 찍고 있는데 말입니다.
삼국지 2와 영걸전을 할 때는, 조조가 왜 CaoCao 라고 하는지 잘 몰랐고, 유비를 Liu Fei 라고 썼는지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이 중국어 발음을 그대로 쓴 것이었더군요.
한국 사람인 제가, 다른 나라처럼 주재원으로 몇 년씩 산 것도 아니고, 해봐야 며칠 출장이나 여행 다닌 게 전부인데, 중국의 역사에 대한 글을 쓰고 관련 책까지 낸 걸 보면, 인생은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그 후로 중국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지만, 제 개인적인 미래와 먹고 사는 것과는 큰 관련성이 없어서,
시간이 될 때 관련 뉴스나 드라마 정도를 보면서 중국은 막연히 못 사는 나라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일제 하면 와~ 아이와, 워크맨 하다가,
중국산이라고 하면 싸고 품질이 좋지 않은 물건이라 치부했던 시절이 있었지요.
한 중국 친구는 한국에 왔을 때
“중국에 에스컬레이터는 있니?”
라는 질문을 받고 놀랐다고 합니다.
“중국엔 이런 거 맘껏 못 먹지? 맛있게 먹어라.”
하는 말에도 말입니다.
그때 그 친구는 아닌데 하면서도,
크게 나쁠 것은 없으니 예 하면서 맛있게 먹었다고 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지요? 중국에서 해외 유학을 하려면 deposit 해야 하는 금액이 있고,
중국 유학생 중에서는 집이 성과 같은 녀석들이 있다는 걸.
중국에 아파트는 있니? 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닭장 같은 아파트보다 더 크고 넓고 좋은 집에서 사는 친구들도 많다는 걸 말입니다.
지금 전기차가 우리나라보다 더 많이 돌아다니고, 전 세계의 드론 시장을 휩쓸며,
WE Chat Pay로 현금 없는 삶을 살고, 알리와 테무 등으로 e-commerce를 장악해나가고 있는 중국을 보면,
잘못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겠지요.
특히, 상업 중심 도시인 상해의 발전과 현재를 보면 피부로 느껴지지요.
중국은 이제 싼 인건비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며 물량 밀어내는 수준의 나라가 아닌 것 같습니다.
남미 주재원 시절 수도 중심지에 화웨이가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I Phone을 썼었고 삼성과 LG 스마트 폰이 있다고만 알았지, 화웨이나 샤오미는 몰랐습니다.
하루는 사무실에 저 밖에 없어서 혼자 나와서 밥을 먹으러 가는데,
화웨이 중국인 직원들이 우르르 몰려 나왔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회사에서 김치찌개나 순댓국 먹으러 같은 팀 직원들이 몰려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중국어로 크게 떠드는데 어렸을 때 제2 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운 가락이 있어서 조금 알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여기가 중국인가, 남미인가 잠시 헷갈렸지요.
그런데, 그 중국 친구들 중 한 명이 저를 유심히 보더니 중국어로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워 스 한구어런. (나는 한국사람이다) 라고 응수했지요.
그러냐며 부족한 중국어로 이야기하다 영어하다 스페인어 하다 아무튼 말이 통해서,
같이 자기들이 자주 가는 중국 식당에 가자고 해서 밥을 먹었습니다.
중국인 반 현지인 반의 북적거리는 중국 식당.
일하는 사람, 밥 먹는 사람도 거의 비슷한 비율이었습니다. 아, 일하는 사람들은 현지인 친구들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중국 친구들이 그 나라에만 10만 명이 무비자로 들어와 있다는 말을 듣고 더 놀랐지요.
우리나라 교민들은 해봐야 몇 백 명인데.
후에 중국의 석유회사 시노펙 (전 세계 시가총액 1위를 찍기도 했었지요) 친구들을 만나며 이 친구들의 전 세계 확장세가 엄청나구나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그래도 역시 미제 애플이라는 생각에 화웨이를 쓰진 않았습니다.
한국으로 복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웨이와 샤오미가 한국에 상륙했습니다.
화웨이는 그렇게 성공하진 않았던 것 같고, 샤오미는 휴대용 배터리 충전기 등으로 회사 이름에 걸맞는 수준의 성공을 했습니다.
정작 미국에선 가성비 제품으로 꽤 잘 나갔고 미국 정부의 견제를 받기도 했지요. 지금은 AI 반도체 Chip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전기차 BYD가 배터리 세계 4-5 권에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BYD는 이번 유로 2024와 코파 2024 sponsor를 하며,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조차 미래 전기차의 대부분은 중국이 생산할 것이라는 말이 그냥 한 말이 아니란 것을 느끼게 해 주었지요.
후에 중국 친구들에게 샤오미 레이쥔 회장을 논하자,
한국에서 현대 정주영 같은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역시 한국인 관점에서 중국을 볼 것이 아니라, 중국인의 관점에서 중국을 볼 필요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해외 사업 업무를 하면서 외국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외국 회사 동향도 많이 접하게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중국 회사들이 다른 나라 회사를 인수하거나 대표자가 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필리핀에서도 그랬고, 화교 친구들이 활약하는 것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엔 인도 친구들이 그랬지요.
분명 영국 회사인데 대표자가 인도 친구이고. (영국 총리를 인도계 친구가 한 적도 있으니 그리 놀랄 일은 사실 아니지요.)
중동의 큰 회사인데 실무 책임자가 인도인이었습니다.
영국의 지배를 받아서 영어도 잘하고, 원래 수학도 잘하고 머리가 좋으니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해외 사업 관련 insight도 인도인 할아버지와 협상을 하며 배운 적도 있을 정도였지요.
중국을 넘어선 인구수와 G5에 rank 해 있는 그들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지요.
심지어 저희 회사에서도 인도인 친구를 고용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전엔 영국인이나 캐나다인 할아버지를 고용해서 선진 기술과 know how를 익히자고 하다가요.
요즘 외국 친구들과 교류하다 보면 중국 친구들이 인도 친구들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MNC (Multi National Company)의 주요 보직에도 여전히 인도 친구들이 많지만, 중국인, 중국 화교 친구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을 직접 경험합니다. 사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어렸을 때 중국어를 배운 걸 이렇게 써먹고 있네요.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합니다.
런던이나 토론토에 출장을 갔을 때가 생각납니다.
중심가에 크게 자리 잡은 중국 china town을 보며 여기가 영국인가 중국인가 놀라기도 했습니다.
중심가에 한 귀퉁이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한국 식당이나,
아니면 외곽에 아담하게 모여 있는 korea town과는 비교가 많이 되었지요.
일본이 지진과 쓰나미 등으로 자신들의 섬나라가 가라 앉고 있기도 하고,
대륙의 땅 욕심에 미국 뉴욕 등의 해외 부동산을 사서, 그 동네 집값이 올라가게 만든 때가 있었습니다.
중동 부호들이 런던의 부동산을 많이 매입해서 정작 영국인들이 이제 비싸서 사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말도 들었구요. 남의 나라일만은 아니지요? 제주도 부동산과 서울 부동산의 외국인 (특히, 중국인)의 구매 현실을 보면 기가 막히실 것입니다.
G3-4 정도의 일본은 landmark를 사는 정도인데, 중국은 china town을 만들어 중심가 일대를 자신의 지역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 자주 보았습니다. 온통 중국어 간판에 여기가 상해인가 런던 소호와 피카디리 Circus 근처가 맞나 싶기도 했지요.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이유가 ABC 때문이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America Born Chinese로 미국에서 태어난 중국인들이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라고 합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현수교도 사실 중국인들이 지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기여도가 높아서 다리 공사하면서 죽은 중국인들을 기리기까지 한다고 하는군요.
미국의 World Bank와 일본 중심의 ADB를 탈피하기 위해, 중국은 AIIB를 만들어 국제 차관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지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만난 런던의 유명 대학에서 유학한 동료가 있었는데요. 영어도 잘하고 두뇌도 명석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배울 점이 많아서 가까이 지냈는데, 지금은 다른 한국 회사와 국책 은행을 거쳐 AIIB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AI 관련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해서 우리나라 AI 연구 인력들이 중국으로 스카우트 되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도 앞서 있는 반도체 기술 인력의 유출과 함께 어쩌면 우리나라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수준까지 되어 가고 있지요.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중국 하면 싼 중국 음식, 가짜 술과 명품
그리고 김밥가게 중국인 아주머니와 공사 현장에 일 하러 온 친구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인들의 안마를 받는 것은 우리가 마지막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중국 친구들은 반도체 등 일부 분야를 빼면 대한민국보다 중국이 기술 면에서 따라잡았거나 더 앞서는 분야가 많다고 말합니다. 안타깝지만 이런 현실을 보는 우리나라 산업부 관료들까지 이를 인정하고 있지요.
산업의 종속은 과거 우리 나라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던 물품을,
우리가 되려 싼 가격으로 수입하게 되고, 결국 하도업체가 되거나 위험하거나 궂은 일을 위탁 받는 등의 현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중국 친구들이 한국인을 고용하는 시대도 함께 오겠지요.
먼 이야기냐구요? 중국을 가보시거나 해외 사업을 많이 하지 않고 내수 관련 업무를 하시는 분들은 아마 감이 조금 덜 오실 것입니다. 하지만 해외 사업 업무를 계속 해오고, 외국 자격증을 따고 해외 친구들과 교류하면서 느끼는 체감은 훨씬 큽니다.
중국의 실업률, 특히 청년 실업률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지요? 중국의 대표적인 명문대인 칭화대 졸업생의 15%만 취직을 한다는 것은 양질의 job이 적다는 것을 말할 것이고 그것은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5%로 우리보단 높지만 예전 같이 못하다는 사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치열한 경쟁 끝에 대학 졸업장을 받은 우수한 두뇌의 수많은 졸업생들은 중국 내에서 취직을 못하면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해외로 눈을 돌릴 것입니다. 내수 시장이 약하면 해외 수출과 진출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얼마 전 있었던 파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당초 예상했던 5개의 금메달을 크게 상회해서 13개의 금메달을 따서 세계 8위라는 우수한 성적을 낸 것을 보며 저도 많이 기뻐했습니다. 양궁, 펜싱, 배드민턴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1위는 어느 나라 였을까요? 미국이었습니다. 왜 이름이 한자로 아름다운 나라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들 용어로는 U.S.A. 금메달 40개였지요. 2위는 중국이었습니다. 금메달 40개로 동률이었고 은메달 숫자에서 44 vs 27로 겨우 1위를 차지했습니다. 3위는 20개의 금메달로 일본이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30년이며 엔저로 경기 침체라는 그 일본이 말입니다. 중국이 금메달을 하나만 더 땄어도 유럽 프랑스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1위를 했겠네요. 스포츠는 국가 경쟁력과 경제력을 반영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이 왜 중국을 견제하는지 알 수 있는 단면이지요. 우리가 탁구 신동이라 부르는 삐약이 신유빈 선수도 중국 선수들에 가로막혀 금메달을 따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직은 그들의 수준이 더 높다고 인정했지요.
금메달을 따고 후진적인 선수촌 문화와 배드민턴 협회의 문제점에 대해 작심발언을 한 베트민턴의 안세영 선수에게 중국에서는 큰 돈을 주고 대우해 줄 테니 중국으로 귀화하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나요?
실제로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들 때문에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되려 부당한 대우 등을 당한 우수한 선수들이 중국 등으로 귀화한 예가 있습니다. 귀화까지는 아니지만 차범근 감독님이나 홍명보 감독님도 우리나라 국대 감독을 하시고 난 후 중국 프로팀 감독을 했다는 것도 잘 아실 것입니다. 남미의 한 국가에게 차관을 빌려주고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제대로 상환하지 못하자 갈라파고스를 자신들에게 넘겨라고 요구했던 중국입니다.
자국민들이 시위를 하고 난리를 쳐서 실제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발상이나 행동이, 소위 스케일이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나중에 중국 차관 잘못 썼다가 제주도 내놓으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어떠신가요?
변화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당장 겪고 있지 않으시지만 앞으로 G2의 중국을 경험하실 일이 점점 더 많으실 것입니다.
마윈의 알리바바가 중국의 아마존인가 보네 하던 것이 지금은 한국의 아마존이라는 쿠팡을 위협하는 2위 자리에 있습니다. 이마트는 적자를 보고 오프라인 매장을 철수하고 있구요.
에스컬레이터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중국의 늘어가는 상하이의 마천루들을 보며 여러 생각을 해봅니다.
과거 조선시대 명나라를 섬기는 사대주의 속국만이 조공국이 아닐 것입니다. 산업 종속이 이루어져서 그들의 하도업체가 되어 안마를 하고 있는 날은 없었으면 합니다. 이미 그렇게 하기를 시작하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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