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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 Nov 27. 2024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살아야 하는데


인생은 어찌하여 이리도 답답하고 성급할까.


펄펄 내리는 올해의 첫 눈을, 조용히 아무 생각 없이 바라만 보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일본 출장 때 바깥으로 보이는, 넓은 세상과 그 세상을 뒤덮을 듯 내리는 눈을 보며, 따뜻한 오뎅 국물에 데워진 정종 한잔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설국’이라 부르고, 노벨문학상을 탔겠지.


하얀 눈꽃 세상과 달리,

내 메모장엔 검정색 펜으로 쓴, 해야 할 일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환율 올랐을 때 달러 팔자.

평가 요청 온 것 빨리 끝내자.

협상하고 있는 것 잘 정리하자.

도와드리고 있는 것 잘 마무리하자.

저녁엔 맡겨둔 짐 찾으러 가야지.

이따 세미나 늦지 않게 가야지.

. . .“


잠시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 모든 것들이 하얀 눈에 가려져 살포시 덮인다.


어두운 방 안에 갇혀, 데드 라인을 맞추려, 잘 안 되는 집중할 필요도 없고,

같은 말 계속 반복하는 하소연도 들을 필요 없다.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에 하얀 풍경을 보며, 잠시나마 내려 놓으니 이리도 마음이 편안하지 아니한가.

그렇게 편하게 앉아 있으니 뒷골이 땅기지도 않는다.

오늘은 두통약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퇴근해서도 치열하게 살며, 도서관도 가고, 필요한 검색에, 작업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그놈의 AI 잡고 친해지려고 하니 죽을 맛이다.


처음엔 신기하고 재밌기도 했는데, 이 녀석도 아직 완전체가 아닌지라 뻔한 모습도 보여서 그런지 그렇게 친해지고 싶지도 않다.


회사에선 친해지라고 하면서도 회사 데이터는 보호해야 한다며 선을 그으니, 이래라는 건가 저래라는 건가. 데이터가 쌓여야 질문에 대한 좋은 답변이 나올 텐데.

이렇게 IT들이 밥 먹고 산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서울 도심 속 대기업 정규직이라고 하는데, 왜 난 돈 부자도 아니고, 마음 부자도 아닐까.


한낱 직장인들 중에 그 중 조금 더 나은 걸까.

가뜩이나 힘든 취업시장에서 비좁은 취업문을 뚫고 들어와서 중소기업 비정규직 계약직보단 더 안정적으로 살고 있으니 내 삶이 더 나은 건가?


일용직으로 험하고, 더러운 일 하면서 욕 먹고 눈치 보며 살지 않아도 되니 배 부른 소리 그만해야 할까?


다른 기회들도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그런 기회가 누구에게나 찾아오진 않는다고 하는데, 그 좋은 기회를 잡은 나는 왜 그때만 잠시 좋고, 진정 행복하진 않을까.


좋은 기회라는데 막상 해보면 힘들고 어렵고, 이상한 다른 변수들이 터지기 일쑤다. 원래 일이란 게 그런 것인가? 마음 가다듬고 호들갑 떨지 않으며 대응하지만, 그리 기분이 좋진 않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해주면 좋아하는데, 넌 왜 그렇지 않느냐는 말에,

남들 다 좋아도 내가 싫은데 어쩌란 말이냐

라고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맞춰줘야 함께 가고 다음이 있다는 걸 잘 알기에 표정을 숨기고 웃으며 알았다고 한다. 이러다 정신병이 생기는 게 아닐까.


회사를 일류 최대의 발명품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조직과 위계 위에 쌓은 성이 잘못 운영되면 미친 사람들이 모인 정신병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폐허가 된 정신병원을 배회하는 좀비들을 우리는 종종 본다. 그것이 나는 아니어야 할텐데.


나는 지금 나와 맞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먹고 살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을 일들을 꾸역꾸역 하며 이런 저런 불만을 토로하며, 이것도 맘에 안 들고, 저것도 맘에 안 든다고 하는 건 아닐까.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을 누가 얼마나 좋아하겠나.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포커페이스가 되어 버렸다. 난 도박도 별로 좋아하지 않은데, 왜 그런 가면을 쓰고 살아가게 되어 버렸나. 제길.


지하철, 엘리베이터, 회사, 백화점, 맛집.

어딜 가나 사람이 많다. 시끌시끌 목청 높이는 곳에서 밥을 먹고 나면 이제 소화제가 필요하다.


이렇게 눈 내리는 풍경을 보며, 나에게 위로를 주겠다는 음악도 없이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은데, 창을 열면 눈 청소하는 기계소리와 차 소리가 들려온다.


조용히 번잡하지 않은 곳에 살고 싶어 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번잡한 한 곳에서 살고 있다. 이런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 아닐까.


인생은 생각한 대로 된다고 하던데, 어떨 땐 이렇게 반대로 가고 있다. 이래서 속담이나 격언도 반대말이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높이 난다.


아니, 일찍 일어나면 먼저 잡아 먹힐 수 있다.


그래서, 사실상 세상엔 진리란 없다고 했고,

없는 진리를 찾으러 하염없이 걷다 보니 끝이 없고 그게 일이 되고 직업이 되어 버리기도 한 건 아닐까.


노크도 없이 회의실 문을 벌컥 여는 소리에 현실로 다시 돌아온다. 사람들은 모여 살아야 인간이라고 하는데, 모여 살면 방해와 침해가 생긴다. 권력과 영향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옆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말을 명심하고 잘 들으라고 강조한다. 안 들어주면 갈등.


그런 걸 조정하는 걸 보고 질서니, 윤리니, 도덕이니, 법이라고 하나. 맞는 말 같으면서도 딱딱하고 답답하며 부자연스럽다.


원래 세상이란 게 부자연스럽고 부조리한 것인가. 사실 돼지떼도 우리 안에 떼거리로 가둬두고, 닭들도 비좁은 닭장에 모아두지 않았다. 녀석들에게도 푸닥거리며 돌아다니고, 꿀꿀대며 움직일 동물의 자유가 있었다. 가축이라는 이름으로 길러지며 안정적인 먹잇감이 되어 버렸다. 공장에 매달려서 돌아가는 육계들을 보면 가끔 징그럽다. 그렇게 한동안 치킨을 먹지 못하기도 한다.


모여 다니면 맹수에게 떼를 지어 덤벼들 수 있어서 초식동물은 같이 그렇게 다닌다던데, 사실 외부의 적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건 내부의 적이다. 확보된 먹잇감을 나눌 때 욕심을 부리는 상대가 나를 잘 안다면? 웃는 가면을 쓰고 뒤통수를 때리는 일은 허다하다.


난방되는 도심 속 건물이 안전한 은신처인 줄 알았더니, 요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다 보니, 사실 생산성과 효율성을 내세운다는 닭장이었고, 결국 냄비 속 개구리들이었다. 이번엔 내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찰수록 시간은 다가온다. 차다는 바깥에서 일찍 죽기 싫어서 천천히 늦게 죽는 차안을 선택한 것일까. 매일 어느 조직이나 차고 넘치는 불만과 다툼 그리고 볼멘소리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라고 본다.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에서 남의 돈 받고 시키는 일 하는데 행복하긴 쉽지 않다. 의무란 부담의 다른 말이다.


사람은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싶을 때 만나고,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아야 행복하다. 하지만 형평성이란 이름으로 획일화된 조직에선 대부분이 반대다. 불행하기 쉬운 구조이기 때문에 행복을 강조하는 건 아닐까.


원래부터 잘 팔리고 앞으로도 잘 팔릴 것으로 예상되는 물건은 비싼 돈 들여서 광고가 별로 필요 없다. 도배되는 광고는 목적이 있다. 판매 촉진과 세뇌가 그것이겠지. 보통 잘 안 되기 때문에 좋은 면을 강조한다. 원래 좋은 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느끼고 알게되는 경우가 많다.


행복은 누가 너 행복한거야 라고 해서 느끼는 것이 아니다. 나 스스로 자발적으로 기분이 좋아져야 행복이다.


닭장, 성냥곽 같은 아파트에서 살아보겠다고 평생 빚에 허덕이며, 정년도 연장시켜 계속 일하게 해 주셔서 감사하는 삶은 진정 행복한 삶인가?


언제쯤 나만의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또 그런 자유를 누리면 진정 행복할까?


잡 생각 그만하고 정신 차리고 일해야 하나?

‘무노동 무임금’를 진리라며 들이밀고 눈에 쌍심지 키고 있는 인건비 낮추는 사실상의 재무팀 HR 친구들과,

주인의 마른 수건도 짜서 쓰라는 말도 받들어 모시는 마름들 칼날 피하려면.


그래서 좋은 생각. 긍정적인 생각하며 사이 좋게 잘 지내라고 그렇게 강조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다투기 좋은 비좁은 닭장 속 경쟁까지 시키니 싸울거리는 도처에 널려있지만 지속가능한 경영이 이루어져야 이 체제가 유지될테니까.


- 첫 눈 내리는 날 실적 채우려는, 별 의미 없는 세미나 들으러 가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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