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당신을 찾아낼 것입니다
인생에서 막연하다는 말은 희망이 되기도 하고, 의미 없는 헛된 소망이 되기도 합니다. 막연하다는 말은 불안하다는 말과도 꽤 닮아 있습니다. 막연하다는 건 상당히 어중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이니 과감한 선택도 필요합니다.
막연한 것을 정확한 형태로 바꾸기 위한 노력, 저는 그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오늘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제가 언젠가는 잘 될 거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남들 앞에서 그렇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줄곧 그렇게 생각하곤 했죠. 막연한 소망은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흘려보냈고, 저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제가 막연한 마음을 간직하기만 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어떤 것도 실천하고 있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 간절히 바라왔던 것과는 달리 글쓰기는 언제나 뒷전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앞으로 나아가 있는데 내가 이제 와서 시작한다고 뭐가 되긴 할까? 내 삶의 행동반경이나 시야가 이렇게 좁은데 좋은 글이 내게서 나올 수 있을까? 막연하게 잘 될 거라고 스스로를 품어왔던 마음과는 달리, 저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매일 뒷걸음치기 일쑤였습니다. 이제 뒷걸음칠 공간이 남지 않았다고 느낀 저는 뭐라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시작하지 못했던 마음을 다독였습니다.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이미 늦었어. 나는 전업주부라서, 동네만 돌아다녀서 시야가 좁아.
생각을 달리해보기로 했습니다.
나는 멈춰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 시야가 좁아서 더 세밀하게 그것들을 들여다볼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죠.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으로 오스카 감독상 수상을 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이 말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한 말이었습니다. 대중에게 환영받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사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공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적으면서 용기를 내봅니다. 이래서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래서 할 수밖에 없는 일들로 바뀌는 순간은 참 짜릿합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힘들 때 위로받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저는 전업주부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작가로 인정 받고 싶고, 때로는 이런 과정에서 위로 받고 싶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과 이런 정서들을 펼쳐놓고 이야기 나누고 싶기도 합니다.
개인적이고 사소한 감정들을 쓰면서 상상해 봅니다. 지금 쓰는 이 글이 다른 시간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달되는 순간을 말이죠.
막연하게 안갯속에서 헤매는 시간은 괴로우면서도 소중합니다. 나만의 방향을 잡고 우거진 나무들을 지나 드넓게 펼쳐진 숲을 보려고 합니다. 그 숲을 보기 위해 오늘도 저는 가장 개인적인 글을 씁니다.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말에 적극 동감하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그래도 노력은 해보고 투덜거려야 폼 나지 않겠나 싶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뭐 운이 좋으면 '막연의 숲'을 지나 '나만의 숲'에 도달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운이라는 것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을 겁니다. 남들은 볼 수 없지만 나만 볼 수 있는 노력 말이죠.
당신은 지금 어디쯤 계신가요?
그 누구도 추적할 수 없는 공간에 있다 해도 누군가는 당신을 찾아낼 것입니다.
누군가 찾지 못한다면 스스로 찾으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힘을 내서 오늘도 한 걸음 걸어온 당신이니까요.
오늘 함께 들으실 곡은 노르웨이 숲의 '너를 수놓은 밤'입니다. 저는 밤에 읽는 라디오, 지 작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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