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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래빛 Apr 19. 2021

어떤 하루

은래빛 단편소설


아침에 눈을 뜨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오늘은 자살시도를 했던 고객과 다시 통화를 해야 하는 날이다.

“후...”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고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잠들기 전이나 아침에 눈을 뜰 때 새로이 시작하는 하루가 기대되면 성공한 인생이라는데, 내 삶은 어째 점점 실패로 가는 것만 같았다.


내 인생이 실패로 가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지만, 어쨌든 출근은 해야 했다.    


난 몸을 일으켜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아이에게 입맞춤과 함께 인사를 한 후 회사로 향했다.    


***    


나는 계약변경 및 지급관련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보험금이 부지급 되거나 계약이 해지되는 경우 꼭 고객에게 연락하여 직접 안내를 해야 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자살을 시도하고 나서 보험금을 청구했을 경우, 계약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치려 한 경우이기 때문에 ‘계약의 해지 사유’에 해당한다.    


그러면 나는 자살시도를 했던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고객님 안녕하세요, 몸은 괜찮으신가요, 죄송하지만 고의적으로 자신을 해하려 하셨기 때문에 보험계약이 해지됨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안내를 해야 했다.    


이러한 안내를 아주 조심스럽게 하더라도 그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더러는 굉장히 무력한 목소리로 ‘네..’라고 답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욕설을 시작으로 저주를 퍼붓거나, 자신이 냈던 보험료에 집착하며 전액을 돌려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또는 약 5분 간격으로 지속적인 전화를 하여 똑같은 질문을 하거나, ‘왜요?’, ‘그러니까 왜요?’라는 말을 깐족거리며 되풀이하곤 했다.  

  

오늘도 나는 위와 같은 자살시도 고객과 통화 약속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40대 중반의 남자로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이에 보험계약이 해지될 것임을 안내하자 통화는 며칠째 설전으로 이어졌다.        



“이 보세요, 은,0,0, 대리님, 보험약관에는 ‘계약자가 고의로 보험금 지급사유를 발생시켰을 경우’ 회사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적혀있는데요? 맞죠?”    

“네.. 맞습니다 고객님”    


“난 삶이 괴로워서 자살시도를 했을 뿐, ‘보험금이 발생하겠구나’라는 고의적인 생각을 하면서 약을 먹은 게 아닌데? 이 부분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어??”    


“네 고객님, 저희가 말씀드리는 부분은 고객님이 보험금 지급 발생을 ‘염두’에 두고 시도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고객님이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고의적 의도’를 가지고 약을 드셨고,    

 

그 행동은 결론적으로 당사에 보험금 지급사유를 발생시켰기 때문에.. 약관상 ‘고의로 보험금 지급사유를 발생시켰을 경우’에 해당됨을 안내드리는 것입니다”   

 

“뭐야, 자기들 좋을 대로 해석하는구먼? 누구 맘대로 계약해지야!!!.. 난 절대 동의 못 해!”    


“보험계약 해지는 회사의 고유 권한으로, 고객님의 동의 여부와 관계가 없습니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다시 한번 최종 계약은 해지됨을 알려드립니다”    


“하! 말은 청산유수네.. 당신,  은 00 대리라고 했지? 내가 지켜볼 거야.. 잘 먹고 잘 사는지 지켜보겠다고!! 알겠어?? 너 밤길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는 나에게 밤길을 조심하라는 안부 섞인 인사를 마지막으로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나는 가만히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렇게 약 4일간에 걸친 계약해지 건이 하나 마무리되었다.  

      

***    


회사 식당에서 부서 사람들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약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은 00 대리님? 여기 00 방문센터인데요..  고객님 부부가 찾아와서 대리님 만나게 해달라고 해서요.. 지금 오실 수 있나요?”    


바로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다.    


“아 네.. 지금 점심시간인데..”

“네.. 식사 중이실 텐데 죄송해요.. 저도 전화 안 드리려고 했는데.. 고객이 화가 많이 나서 본인은 밥도 못 먹고 왔다며 당장 담당자를 부르라고 소란을 피워서요..”

“네네, 알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어차피 식욕도 뚝 떨어졌다. 난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부서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났다.

       

상담실에 도착하자 여성 고객은 의자를 3개 연결해 누워있었고, 남성 고객은 팔뚝을 걷어붙인 채 눈에 형형한 광기를 띄고 날 노려보았다.    


여성 고객은 여성질환과 그밖의 만성질환으로 오랫동안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였고, 남성은 그녀의 남편으로 우리 회사와 어떻게든 결판을 짓겠다는 일념으로 온 사람인 듯했다.    


나는 그들에게 정중히 인사하고 안부를 물은 후, 왜 보험금이 지급될 수 없는지를 상세히 안내하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관련 근거자료도 건네주었다.


하지만 그들이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여성 고객은 남편 앞에서 아픈 곳을 호소하며 눈물을 글썽였고 남성 고객은 아픈 자신의 아내를 대신해 극악무도한 회사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점점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누구 맘대로 못 준다는 거야! 돈 줄 때까지 죽어도 못 나가! 여기 사장 나오라 그래!!!!!!!!!”

“흐으윽.. 흑흑흑”    


남편은 나와 언쟁을 벌이다 벌떡 일어나 소리 지르며 의자를 집어던졌고, 아내는 그 모습을 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포악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엉거주춤 일어나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등근육과 머리카락이 쭈뼛서며 심장이 더욱 빠른 속도로 뛰었다. 손바닥이 축축해졌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담당자로서 이들을 끝까지 상대해야만 한다.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자리를 비운 동안 업무가 엄청나게 쌓여있었고, 컴퓨터 화면에는 나의 답변을 바라는 업무용 메신저와 쪽지들이 어지럽게 깜빡이고 있었다.    


서둘러 그것들을 확인하며 하나씩 답장하고 있을 때 K차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알량한 권력과 재력을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고, 후배들을 괴롭힌 후 곁눈으로 그들의 반응을 보며 즐거워하는 인물이었는데, 후배들이 자리를 비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은대리, 어디 갔다 왔어? 자리를 왜 이리 오래 비워?”

“네 차장님, 김 00 고객 부부가 찾아와서 만나고 왔습니다.. 아까 점심시간에 찾아오신 고객님이요”

“아.. 그래?.. 알겠고, 강의안 자료는 다 만들었어?”    


점심시간부터 지금까지 붙잡혀있었는데 만들었겠니.    


“아뇨.. 초안은 완성했지만 아직 세부적인 자료는 만들기 전입니다”


“아니 은대리? 바쁜 건 알겠어~ 근데 이건 팀장님이 직접 지시하신 일이야. 이렇게 속도가 느리며언? 안되지?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거 몰라? 일을 할 때는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해야지”  

  

그는 특유의 말투로 말꼬리를 올렸다 내렸다 징징대며 자기가 지시한 일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닦달하곤 했는데, 오늘따라 그 말투가 귀에 너무나 거슬렸다.


“네.. 오늘 중으로 완성하겠습니다”

난 미미한 두통이 느껴져 손바닥으로 이마와 눈썹 양끝을 마사지하듯 쓸어내렸다.    


그는 등을 돌려 자리로 돌아가다가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돌아와 말했다.


“아참, 급하게 말해서 미안한데에, 내일 오후 부산에서 하는 강의 은대리가 좀 해”

“네? 어떤 강의요?”

“보험약관의 법률적 해석에 대한 현장 강의 있잖아”

“아.. 그건 법률 파트에서 변호사가 와서 강의하던 건데.. 제가 참석을 못해서 그 내용을 모릅니다”

“누군 다 알아서 강의하나아? 이제부터 읽어보면 되지. 은대리 강의 잘하잖아??”

“...”

“으응~ 다 돌아가면서 하는 거야~ 은대리 강의는 만족도 1위잖아, 부탁해애~”

“... 네, 알겠습니다.”    


그는 흥얼거리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요란하게 봉지를 터서 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그는 어릴 적 가난하게 자란 탓에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해 한이 되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사무실에서 과자봉지를 터놓고 혼자서 쩝쩝거리며 먹고는 했다.


남이 가져오는 간식은 ‘맛있겠다~ 치사하게 혼자 먹는 건 아니지?’라고 물으며 기를 쓰고 빼앗아 먹었는데, 자신의 과자는 남에게 나누어주는 법이 없었다.    


물론 그가 주접스럽게 먹는 소리를 들으면 있던 식욕도 달아났기 때문에 먹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나는 서둘러 강의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내일 부산에 가서 할 강의 준비도 해야 할 것이다.   


***    


터덜터덜 집에 도착했다.

시간은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 다녀왔습니다”

항상 어서 오라고 대답해주던 시부모님이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신발을 벗고 고개를 들어 시부모님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뭔가 화가 난 듯 소파에 앉아 곁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무슨 일 있으세요?”

“이리 와서 해준이 얼굴 좀 봐라!”    


그들은 핸드폰에 찍은 아이의 얼굴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해준이의 양볼과 눈가, 입가에 멍이 들어있었고, 한쪽에는 모세혈관이 터진 것처럼 작고 붉은 점들이 무수히 찍혀있었다.     


“아.. 무슨 일인가요, 다쳤나요?”

“세상에, 발화 수업 때 애를 말하게 한다고 선생이란 사람이 이렇게 애 얼굴을 만들어놨단다!”    


해준이는 3살 때 자폐성 장애 1급으로 판정을 받은 후 10살이 된 지금까지도 “으으으~”하는 괴성 외에는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했다.


이에 경기도에 유명한 발화치료센터를 약 3개월간 대기한 끝에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곳은 아이들의 발화를 위해 얼굴 근육을 세게 마사지하고 아이가 거부할 경우 다소 강압적으로 수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해 장애아 부모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효과를 보아 말을 텄다는 장애아들도 꽤 많이 있었지만, 독특한 교육방식에 장애아 학대라며 기분 나빠하는 학부모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려 문제가 되기도 했던 곳이었다.  

  

난 그런 내용을 모두 알고 있었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아이가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 감수하고 수업을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니었다.    


“애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놨는데 어디 말 한마디라도 하냐!”


“... 어머님.. 이제 수업을 두 번 했는데 말을 하겠어요.. 당장 보이는 것에 속상해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얼굴 근육을 마사지하다 보면 멍이 들 수도 있겠죠..”


“어떻게 이런 교육이 있을 수가 있냐! 거기 경찰서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 내가 신고하련다!”

“아버님..”


“애를 가지고 이렇게 폭력을 행사하면서 치료 수업이라고 하다니 그 선생 변태인 거 아니냐!!!!”

“...”


“거기 경기도라고 차로 1시간 반 정도 고속도로 운전해서 가는 것도 위험하잖냐, 사고라도 나면 어쩔 거야? 애가 거기 수업으로 정말 말을 한다면, 씨발, 내가 운전해서 가겠다!!!”    


그들은 손주의 얼굴이 멍든 것에 대한 분노를 번갈아가며 쏟아내었다.


아버님은 말을 하는 중간에 추임새처럼 욕설을 넣고는 했는데, 본인은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도 아이의 사진을 보고 놀라고 속상했지만, 아이의 겉모습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발전할 수 있느냐였다. 그동안 수년간 언어치료를 받았지만 아무런 효과를 볼 수 없었고, 아이도 고집이 있어 웬만한 치료사의 말은 따르지 않았다.    


“어머님 아버님.. 저도 아직 고민이 많이 되지만.. 지금까지의 치료로는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잖아요.. 약간은 강압적이더라도 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수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효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하니 좀 더 기다려주세요”    


마치 나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고, 그들만이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만 같았다.


언쟁이 한바탕 가라앉자 난 조용히 냉장고에서 반찬들을 꺼내 밥상을 차렸다.    


“.. 아직 저녁 안 먹었냐?”

어머니가 머쓱하게 물으며 다가와 상차림을 도와주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시금치나물과 두부된장국에 늦은 저녁을 먹었다.

배가 고프다 못해 속이 쓰렸는데 따뜻한 된장국물이 들어가자 속이 찌르르하게 울렸다.    


어머니는 양팔을 머리 위로 올린 채 소파에 눕듯이 기대앉아 TV를 보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너 일하고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오자마자 퍼부어서 미안하다?”


난 조용히 밥을 먹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며느리를 배려해 멋진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콧구멍을 벌름거리며 재밌다는 듯이 입술을 비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정말로 내가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얼굴이 멍든 손주와, 속상한 자신과, 며느리를 배려한 자신만이 있었다.

난 다시 잠자코 밥을 먹었다.        


***    


방에 들어오자 해준이가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었다.

베개에 뭉개진 머리카락, 하얀 피부, 동그란 코, 살짝 벌어진 귀여운 입술..    


“엄마 다녀왔어”

- 응! 엄마 왔어? 보고 싶었어!

“응.. 엄마도 해준이 너무 보고 싶었어”

-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오늘 회사에서 힘들었어?

“응.. 조금”    


그는 여전히 쌕쌕 잠들어있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심히 그의 옆에 모로 누웠다.


아직 겉옷을 벗지 못한 채였다.    


-엄마 사랑해

“엄마도 해준이 너무 사랑해”    


아마도 난 이런 대화는 영원히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허용된 대화는 항상 권위에의 대화뿐이다.


계약해지를 용납할 수 없다는 고객과, 부지급을 인정할 수 없다는 고객과,

자신의 권위를 뽐내며 후배를 괴롭히는 상사와, 그리고 손자가 아프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 시부모님.


그들 각각의 원망과, 욕망과, 갈 곳 없는 분노로 가득 찬 권위에의 대화만이.    


“.. 해준아, 좋은 꿈 꿔”

나는 나지막하게 말하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어떤 하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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