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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라 Sep 22. 2022

"망할 놈의 세계관"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뼈와피와살 작가의 <합법해적 파르페>

주의: 이 글은 해당 작품의 줄거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합법해적 파르페> 138화. 노란 가발과 모자, 선글라스로 변장하고 에끌레어 미술관에 도착한 파르페. 큐레이터의 으시시한 설명에 속으로 "망할 놈의 세계관"이라 불평하고 있다.

메타 발언은 작가 혹은 어떤 전지적인 목소리가 서사에 개입하여 텍스트 속 허구 층위와 현실 층위 사이의 경계를 일시적으로 허물어뜨리는 기술을 말합니다. 웹툰에서 메타 발언은 재미 요소로 종종 활용되지요 (양혜림, 12쪽). <합법해적 파르페> 138화에서는 메타 발언이 두 번 나옵니다. 주인공인 파르페는 소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에끌레어 미술관에 도착합니다. 그런데 미술관의 큐레이터는 그에게 “미술관은 이곳이 아니에요. 미술관은 바로 그림 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망할 놈의 세계관.” 일단 큐레이터를 따라 그림 속으로 들어가니, 이번에는 그림 속 세계를 훼손하면 죽은 화가 에끌레어가 남겨둔 불안의 화신이 찾아올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듣습니다. “망할 놈의 세계관”! (뼈와피와살, 138화)


<합법해적 파르페>만의 독특한 세계는 아기자기한 동화 같다가도 방심하는 순간 기괴함과 난해함을 당연하다는 듯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세계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인물인 파르페에게도 이 세계의 ‘당연함’들은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긴 모든 현실이 다 당연하게 느껴질 수만은 없겠죠. 모든 리얼리티(reality)가 늘 ‘리얼(real)’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한국 여성 독자들이 살아가는 현실도, 파르페가 살아가는 작품 속 현실도, 때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없을 때가 있습니다.

뼈와피와살 작가의 <합법해적 파르페>는 우락부락하고 거친 공주 파르페가 자신을 성에서 내쫓아버린 여동생에게 복수하고 왕위를 이어가기 위해 시작한 여행을 그립니다. 이 과정에서 파르페는 낯선 사람들, 낯선 장소들과 관계 맺으면서 다양한 사건들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러다 나쁜 해적을 잡아들인다는 '합법해적'으로 취직해 사략선 산딸기호에서 일하게 되지요. 원래의 목표는 흐릿해졌다가, 절박해졌다가, 새로운 목표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새로운 모험 속에서 파르페는 난폭한 들개처럼 으르렁거리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곤경에 빠진 타인을 지나치지 못하는 선한 마음을 증명하기도 하지요. 그는 싸움으로 많은 걸 해결하려 하지만 한편으로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알고(23화), 위험에 처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일말의 고민 없이 달려가며(24화),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은 때에도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지나치지 못합니다(56화). 그래서 그는 언제나 누군가의 조력자로, 누군가의 이해자로 살아있게 됩니다. "나는 친구 같은 거 만들지 않아"라고 말하던 파르페지만 (19화), 홀로 서 있으면서도 늘 남의 아픔에 귀 기울였던 의 곁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서 있지요 (67화).  


다만 이번 글에서 집중하고자 하는 부분은 파르페의 성격과 서사보다는 파르페가 위치한 세계입니다. 그리고 한국 여성 독자들이 파르페의 세계에 몰입하는 경험과 몰입하지 못하는 경험에 관한 내용입니다. 한국이라는 '진짜' 세계보다 도저히 동화(同化)될 수 없을 것 같은 동화(童話) 같은 세계에 더 애착을 느끼게 되는 경험에 대한 글이며, 동시에 이 작품이 어떻게 독자들을 그들이 살아가고 있고 살아내야만 하는 망할 놈의 현실 세계돌려보내는 방법 대한 글입니다.


 우리의 현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세계

<합법해적 파르페> 79화. 파르페가 일하는 산딸기호의 선장 벨이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중이다. 그들의 세계에서 가려는 길이 막혔다고 돌아가는 건 상식 밖의 행동인 모양이다.

한국 독자들의 현실에선 결코 당연할 수 없는 것이 <합법해적 파르페>의 세계에서는 당연하게 등장합니다. 뱃멀미와 반대로 "육지멀미"를 하는 벨 선장 (8화), “고기가 아닌 해조류를 먹”는 신사적인 상어 (12화), 머리가 등(燈)인 사서와 방방마다 새로운 우주가 펼쳐지는 펜넬 도서관 (13화), 통나무를 동료로 인식하고 자연스레 말을 거는 인물들 (18화), 배의 밑부분에서 피어나는 밀림 (18화). 차라리 모든 신비한 소재들에 그럴싸하게 판타지스러운 이름들을 붙여 아예 독자들의 세계와 단절된 공간이라는 느낌을 줬다면 모를까, 작가는 독자들의 머릿속에 이미 굳건하게 자리 잡은 개념들을 전혀 엉뚱한 데에 적용하고, 갖다 붙이고, 새롭게 의미화합니다. 축적된 사고와 경험이 보장하는 '예측 가능함'은 의도적으로 거부됩니다.


그리고 <합법해적 파르페>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가장 놀라는 지점은 무엇보다 이 작품 속 캐릭터들을 보는 것만으로는 젠더를 특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만화를 볼 때 체형, 머리 길이, 속눈썹 길이, 입는 옷과 액세서리, 말투 등을 보면서 캐릭터의 젠더를 유추해왔습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걸침으로써 젠더 정체성을 수행하고, 미디어는 이러한 외적인 특징들을 다시 철저히 여성스러운 것과 남성스러운 것으로 나눠 재생산하니까요. 그런데 키가 크고 머리가 짧고 근육이 두드려져 보이면 보통 남자이고, 가슴이 크고 목이 얇으면 보통 여자라는 등 미디어를 통해 학습해온 기대 지평이 <합법해적 파르페>에서는 자꾸만 무너집니다. 모험의 시작을 알리는 첫 회차에서, 파르페가 자신을 "백포도 왕국의 숨겨진 공주"라고 소개하기 전까지 나는 파르페가 여자일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1화). 아니, 사실은 번개가 번쩍이며 벌거벗은 파르페를 비출 때 때까지도 그가 여자라는 것을 충분히 믿지 못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여성'임을 특정할 어떤 지표도 주지 않은 여성 캐릭터가 옷을 벗고 정면샷으로 등장한다니, 그런 작품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파르페는 공주이고 여자입니다. 당연하지요. 독자들의 세계에서 당연하지 않던 것이 <합법해적 파르페> 세계에선 당연합니다.

<합법해적 파르페> 1화. 백포도 왕국의 숨겨진 공주 파르페가 자신을 구해준 해군 대위 반에게 자신의 정체(와 알몸)를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뼈와피와살 작가가 분명 의도한 부분입니다. 작가는 1부 후기에서 사회적 여성성의 이미지를 미디어가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현상에 의문을 제기하며 "굳이 나까지 [사회가 여성스럽다고 인정하는] 여성상을 찍어 내야 할까?" 질문하지요(1부 후기). 당연하다 여겨지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인식하고, 평범하지 않은 것을 되려 평범한 것으로 바꿔버릴 때 얻어지는 즐거움을 뼈와피와살 작가는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보통에서 벗어나면 ‘특이’가 되어버리는 건 요상합니다. ‘평범’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평범’이라고 제시하는 세계관은 흥미롭기 그지없잖아요? 어? 이게 보통이고 적당이고 평범이잖아? 오히려 네가 이상한 거 아냐? 넌 도대체 뭐가 문제니? 응?” (뼈와피와살, <여자력> 306쪽)

작가는 한국 사회에선 당연한 젠더 불평등과 스테레오타입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습니다. 이 경우 만화는 리얼리티의 재현이 아니라 리얼리티로부터의 탈출구로 기능하지요. 큰 키와 다부진 체격에 위험한 모험과 육탄전을 서슴지 않으면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가는 캐릭터들은 당연히 남자일 것이라는 기대를 보기 좋게 꺾어버리는  <합법해적 파르페>의 세계관은 독자들을 잠시나마 현실로부터 구출해냅니다.

<합법해적 파르페> 1부 후기 중. 그림 속에서는 엑스트라 캐릭터인 쌍둥이 아가씨들이 해군 대위 반(노란 머리에 안경)에게 함께 파티에 가자며 꼬시고 있다.

또 <합법해적 파르페>에서는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치들이 숨어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을 의식하여 옳은 방향으로 향하는 선택을 지속하자고 조언합니다: "운명은 정해져 있어요. 최대한 나쁜 쪽으로. 그것을 바꾸는 것은 지금의 당신입니다" (74화). 당연한 관습이고 혹은 유행이라는 이유로 맹목적으로 남들을 그저 따라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경고하기도 하지요: "다수가 모든 무해함을 증명하나요?" (83화), "남의 인생에 편입되지 말고 네 인생을 살아" (126화). 이들은 새로운 사실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난해한 철학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들이 하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은 인물들이 보여주는 삶의 태도를 동경하면서도, 각자의 현실 속에서 그렇게 살기를 포기하거나 주저했던 기억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들이 하는 얘기는 너무나 옳기 때문에 되려 낯설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이들의 삶의 방식을 실천하기엔 너무나 박하고 못돼 보이지요. 말풍선 속에 담긴 당연한 진리는 우리의 리얼리티에서 실천하기엔 너무나 어렵고, 당연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작품은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린 파도에 휩쓸린 모래알이잖아. 모래알이 바보라서 휩쓸린 게 아니잖아. 다른 선택을 동경해볼 틈은 있었어?" (96화). 작가는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이 수반하는 공포, 불안, 피로감이 우리 존재의 소중함을 파도에 휩쓸려 흩어지게 하고 있음을 알고 있고, 바로 그렇기에 '괜찮나요?'라고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현실 속에선 너무 이상적이고 낭만적이라는 평을 들을 법한 가치들이 당연하게 녹아 있는 세계를 보여주면서요. <합법해적 파르페>의 세계는 정갈하고도 찬란한 색 배합과 디자인으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 동시에, 여성들이 자신의 존재, 욕망, 개성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장소이기에 심미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장소입니다.

<합법해적 파르페> 53화. "내 삶은 또 뭐람?"이라고 생각하는 파르페의 머리 위로 그가 겪었던 모험들이 별자리처럼 수놓아져 있다.

한국이라는 세계

한국이라는 나의 리얼리티보다 작품 속 대안 세계에 더 애착을 느낄 때쯤, 나는 역으로 내가 살아 있는 장소로부터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이 장소 속에 실존하고 장소와 관계 맺는 양상을 연구한 인본주의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에 의하면, 자신이 속한 장소와의 관계가 인간의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합니다 (렐프, 116쪽).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세상을 내다보는 안전지대를 가지는 것이며, 사물의 질서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확고하게 파악하는 것이며, 그리고 특정한 어딘가에 의미 있는 정신적이고 심리적 애착을 가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렐프, 95쪽). 그런데 많은 한국 여성들은 한국, 더 좁게는 그들이 속한 가족, 학교, 도시에 애착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과 공포를 느낍니다. 여성들에게 한국은 안전한 장소가 아닙니다.* 여성들은 한국 사회 어느 장소에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지요. 그들은 장소 속에 실존하지만, 장소는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습니다. 여기에 존재하지만, 바로 그 '여기'로부터 거절당하고 있습니다. 렐프는 이러한 상태를 "실존적 외부성(existential outsideness)," 즉 자신이 속한 장소로부터 소외당하고 소속감을 상실한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119쪽).


내가 <합법해적 파르페>의 세계를 사랑하게 되는 마음은 내가 한국 사회로부터 보호받고 있지 다는 자각과 비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독자들이 나와 같진 않을 것입니다. 작품 속 세계가 유토피아라는 주장도 아닙니다. 작품 속 세계에도 엄연히 절망과 실망이, 위험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품 속 리얼리티에서 형성될 나의 정체성을 작품 밖 한국이라는 리얼리티에서 형성된 지금의 정체성보다 더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누가 봐도 이상하고 누가 봐도 비현실적인 <합법해적 파르페>의 세계관 속에선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타자화되거나 죽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글과 그림을 통해 나를 충분히 납득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합법해적 파르페>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지만, 그 세계를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깊이 마음에 남는 관계 맺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장소 경험은 대리적 내부성(vicarious insideness)이라고 하지요:

간접적이거나 대리적인 방식으로 장소를 경험할 수 있다. 즉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깊이 마음에 남는 관계맺음을 경험할 수 있다. 예술가나 시인이 장소를 묘사하는 목적의 하나는 거기에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이며, 그 장소에 대한 느낌을 전해주는 것이다. (렐프, 122-23쪽)

렐프의 대리적 내부성 개념은 한국 여성들이 작품 속 세계관에 애착을 느끼고 소속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치유하는 일이 가능함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만화라는 텍스트 속 세계관과 관계 맺음으로써 현실의 장소가 제공해주지 못했던 새로운 안정감과 통찰을 누리며 참된 삶을 살아가는 일에 대해 재고하게 되지요. <웹툰의 서사공간>은 학교라는 공간을 예시로 들어 웹툰을 읽는 독자의 대리적 내부성을 설명합니다. 학교는 현실 속 한국에서는 학생들의 욕구를 소외시키고 그들을 무한 경쟁으로 밀어 넣는 억압적인 공간이지만, 여러 판타지 웹툰 속에서는 종종 "경쟁보다 공감을, 획일화보다 개성을, 강압적으로 축적된 지식보다 자발적으로 단련된 신체를 미덕으로 인정해주는 공간"으로 변신해왔습니다 (양혜림, 67쪽). 이렇게 한때 실존적 외부성을 경험하게 하는 무의미하고 때로 공포스러웠던 공간인 학교가 주인공의 애착 공간으로 변하는 모습은 독자가 "이야기-공간에 대리적 내부성을 느끼게 함으로써 서사에 대한 이입을 강화"하지요 (67쪽). <합법해적 파르페>가 한국 여성 독자들을 사로잡는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은 처음부터 여성이 소외되기는커녕 여성이 주인공인 세계, 여성이 스스로의 미래를 개척하고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세계에 매료됩니다. 웹툰을 읽는 경험은 다른 세계에의 방문이 되고, 그 세계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세계지요.  


그렇다면 독자들은 자신들을 소외시키는 한국 사회로부터 도망쳐 <합법해적 파르페>의 세계관으로 들어가야 할까요? 대리적 내부성을 느끼는 것으로 충분한 걸까요? 도망쳐 들어가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가짜 세계를 발견하고도 다시 절망이 가득한 진짜 세계로 돌아갈 용기는 어디서 얻는 걸까요? 이러한 딜레마를 고민해보기 위해 주인공인 파르페와 반이 자각몽 속을 모험하는 에피소드에 대해 생각해보려 합니다.


꿈꾸는 보니의 세계

<합법해적 파르페> 36화. 반의 뒤로 꿈꾸는 보니의 세계로 향하는 문이 빛나고 있다.

자각몽 속에서 서로를 만난 파르페와 반. 그런데 기억을 먹어버린다는 꿈거미의 습격으로 파르페가 11살의 정신 상태로 돌아가고 맙니다. 반은 파르페의 기억을 되찾아주기 위해 꿈을 만들고 전달해주는 '꿈꾸는 보니'의 꿈 공장을 헤매지요. 하지만 반의 노력으로 파르페가 막 기억을 되찾았을 때, 두 사람은 그만 꿈꾸는 보니에게 발각되어 꿀꺽 먹혀 버립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반은 따스하고 눈부시게 빛나는 '꿈꾸는 보니의 세계'를 보지요:

이곳은 고통도 슬픔도 없는 영원한 만족의 세계. 행복에 질리거나 적응하는 감각이 없다. 그저 황홀감뿐인 꿈꾸는 보니의 세계. 죽음 없이 태어나고 끝없이 시작한다. ... 무엇이든 나눌수록 배가 되고 선행은 반드시 보답받는다. 모든 불안과 우울은 입김 한 번에 백 리를 날아가고 건강은 제 발로 걸어 찾아온다. ... 이곳의 존재들은 누구나 그저 '존재'가 된다. (뼈와피와살, <합법해적 파르페> 36화)

"누구나 그저 '존재'가 된다"는 평등하고 따뜻한 공존이 가능한 세계. 꿈꾸는 보니는 반과 파르페를 이토록 완벽한 세계에 초대합니다. 반은 그 세계로 손을 뻗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파르페가 반을 붙잡으며 외칩니다: "싫습니다! 돌려보내 주세요! 우리는 우리가 사는 진짜 세계가 있습니다! 저런 가짜 세계가 아니라!" (36화) 기묘한 장면입니다. 만화 텍스트 속 가짜 세상에 살고 있는 파르페가 가짜 세상을 말하고 있네요.

<합법해적 파르페> 36화. 반과 파르페. 파르페가 꿈꾸는 보니에게 자신들을 '진짜 세계'로 돌려보내 달라고 항의하고 있다.

파르페의 대사는 그 자체로 메타 발언은 아닙니다. 파르페가 말하는 '진짜 세계'는 독자의 현실이 아닌 픽션 속 세계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현재 위치한 공간을 '가짜'라고 인지하고 있는 파르페를 보며, 독자들은 역으로 자신들이 파르페의 진짜 세상은 가짜라는 "불신을 유보함으로써" 만화를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워, 53쪽.) 파르페가 진짜 세계와 가짜 세계를 나누어 생각하는 것을 보며, 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진짜 세계와 가짜 세계 역시 사고하도록 유도됩니다. 그리고 파르페가 그의 진짜 세계로 돌아가듯, 스크롤을 내리고 내려 마침내 독자들의 진짜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지요.


만화를 읽을 때 우리는 만화 속 세상이 가짜라는 것을 분명 알고는 있지만, 그 인식을 미뤄둡니다. 그래야 그 세상과 모험과 서사에 더 몰입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메타 발언은 우리가 유보하고 있던 현실 감각을 다시 끄집어냄으로써 대안 세계에의 몰입을 방해합니다. "우리의 '현실' 세계가 결코 소설의 '현실' 세계일 수 없다는 것을 재인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지요 (53쪽). 진짜 메타 발언인 "망할 놈의 세계관"이라는 대사를 읽는 순간 독자들은 망할 놈의 세계관에서 '망할 놈의 현실'로 밀려납니다 (뼈와피와살, 138화). 애착과 소속감을 느끼던 대안 세계에서 여성혐오와 타자화가 일상적인 현실 세계로 밀려납니다. 작가는 그렇게 자꾸만 독자들을 망할 놈의 현실로 돌려보냅니다. 36화의 파르페처럼요.


하지만 뼈와피와살 작가가 우리를 현실로 돌려보내는 이유는 현실이 우리를 소외시키는 공간임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그는 현실 세계를 얕잡아 보지 않아요. 파르페의 '진짜 세상'도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지요. 당연합니다. 우리의 당찬 공주님에게도 그곳은 "망할 놈의 세계관"인걸요 (138화). 가족으로부터 버려지고 완벽히 홀로 남은 젊은 공주는 자신이 속한 세상과 계속해서 불화하고 세상에 복수하고 싶어 합니다: "세상은 나를 왜 이렇게 미워하는 걸까? ... 세상은 어디지? 어디에 있는 녀석이지?" (65화) 그런데도 파르페는 자신을 미워하는 세상으로 돌아가겠다 합니다. 환희와 시작만 있는 세상이 아니라 절망과 끝이 있는 세상으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끝이 없는 것은 시작이라고 하지 않아요! 죽음이 없는 것은 삶이라고 하지 않아요! 돌려보내 주세요!"라고 외치면서요 (36화).


<합법해적 파르페> 36화. 오른쪽의 거대한 봉제 인형을 닮은 존재가 꿈 공장의 공장장 꿈꾸는 보니다.

끝이 있기에 시작이 소중하고, 죽음이 있기에 삶이 아름답다는 시시한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 세계의 무시무시함을 무릅쓰고 그 세계를 온전히 살아내야 하는 이유는 그 누구도 완벽하게 설명해주지 못했습니다. 나의 존재를 소외시키고 정체성을 부정하고 나의 생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 "망할 놈의 세계관"으로 "돌려보내 주세요!"라고 외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실의 세계로 돌아옵니다. 여기에 대단한 진리 같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역설만이 자리합니다. 도망치기 위해 들어갔던 세계가 사실은 우리에게 도망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는 역설. 우리는 파르페의 세계로 언제든 도망칠 수 있지만, 결국 그 세계가 우리에게 쥐어줄 수 있는 건 우리의 진짜 세계의 두려움과 맞설 용기라는 사실 말입니다.

<합법해적 파르페> 78화. 다른 에피소드, 다른 맥락이지만, 파르페는 언제나 용감하게 현실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다.

<합법해적 파르페>의 메타 발언은 그 세계관이 가진 비진실성을 드러냄으로써 독자의 환상을 깨지만, 바로 그럼으로써 우리의 현실이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를 끊임없이 소외시키는 공간임을 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혹자는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 세계관이 "현실에 존재하는 성차별의 가림막으로 작용"하는 것을 걱정하지만 (백설희-홍수민, 158쪽), <합법해적 파르페>의 메타 발언은 그 가림막을 애초에 걷어 버립니다. 마치 '여긴 우리의 진짜 세계가 아니야. 진짜 세계는 화면 너머에 있어. 무시무시하지만 그 세계를 살아내야 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합법해적 파르페>의 독자들은 작품 밖 한국의 리얼리티를 똑바로 직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합법해적 파르페>의 세계를 알기에 진짜 세계와 파르페의 세계를 비교하고,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부당한지를 예민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애당초 결혼은 구시대의 잔재예요"라고 말하는 인물을 보며 (뼈와피와살, 40화) 한국이라는 현실이 여성들에게 강제하는 결혼이 얼마나 "구닥다리"인지 생각하기도 하고(ID 운, 40화 댓글), 작중 여성 군주를 '여왕'이 아니라 '왕'이라고 표기하는 것을 보며 언어에서조차 모든 것의 규범을 남성에 맞춘 현실의 부당함을 눈치채기도 하지요 (ID Beeowls, 57화 댓글; ID 13152, 57화 댓글). 엑스트라로 잠깐 등장했을 뿐인 휠체어를 타는 해군을 보고 "합해파 세계관은 거동이 불편한 자도 움직일 수 있게 수동 엘리베이터가 준비되어 있네요. 우리 사회도 어서 그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독자들은 (ID 표스범부르크, 137화 댓글) 그들이 이 작품을 맹목적인 도피처가 아니라 사회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경유지로 여기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합법해적 파르페>의 세계로 도망칠 수 있지만, 그곳에서 얻어내는 것은 우리의 망할 놈의 세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망했는지를 날카롭게 직시할 수 있는 통찰력이자, 그런 망할 놈의 현실을 마주할 용기입니다. 그 용기를 안고 우리는 다시 돌아오게 되지요.


"내 바람은 그게 다야"


<합법해적 파르페> 76화. 모든 것이 쉽게 사라지고 쉽게 잊히는 세상이지만 정신 차리고 살아남으라는 전지적 화자. 신발끈을 질끈 묶는 파르페의 손이 보인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로망을 아주 잃어버릴 수는 없을 겁니다. "한국인들 절반 이상은 보니 만나면 다 보니의 세계로 가지 않을까...?" (ID 마, 36화 댓글). '꿈꾸는 보니의 세계' 회차에서 7700명의 좋아요를 받은 베스트 댓글입니다. 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정말 보니의 세계로, 아니 파르페의 세계로라도 갈 수만 있다면! 하지만 독자도 결국 현실 세계의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려 이 댓글을 썼을 테지요. 파르페가 보니의 세계에 남지 않기 때문에, 독자 역시 파르페의 세계에 남지 않습니다. 가혹하고 절망이 기다리는 세계로 돌아오는 파르페처럼 독자도 두렵고 외로운 한국이라는 세계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기 때문에 파르페도, 독자들도, 더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나를 미워하고 국가는 나를 보호해주지 않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척하고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르지요. 우리가 <합법해적 파르페>의 대안 세계와 관계 맺음으로써 자신을 돌보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언제나 우리의 현실 세계가 여성의 실존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여성혐오적 사회임을 분명히 아는 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뼈와피와살 작가는 현실과 판타지의 괴리를 잊을 만하면 상기시키며 우리가 우리의 현실을 직시할 것을 요청합니다. 평범하지 않은 것을 평범이라고 내세우는 세계의 즐거움은 역으로 그것이 왜 현실에선 평범하지 않은지를 자문하게 만드니까요. 작가는 우리가 "바람에 백 번 쓰러지더라도 세상의 당연함에 몸을 맡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99화). 동경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세계를 그려놓고도 메타 발언을 써서라도 우리를 망할 놈의 세계로 돌려보내는 뼈와피와살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는 사랑은 그런 것 같습니다. 망할 놈의 세계지만,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는 파르페를 보여주면서 독자들 역시 그렇게 살아남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말입니다.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729036&weekday=

참고문헌

렐프, 에드워드. <장소와 장소상실>. 김덕현-김현주-심승희 번역, 논형, 2005.

백설희, 홍수민. <마법소녀는 왜 세상을 구하지 못했을까?: 소녀가 소비하는 문화, 그 알려지지 않은 이면 이해하기> 들녘,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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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인용

ID 마. <합법해적 파르페> 36화 댓글, 2020.3.12 작성.

ID 운. <합법해적 파르페> 40화 댓글, 2020.4.9 작성.

ID 표스범부르크. <합법해적 파르페> 137화 댓글, 2022.5.29 작성.

ID Beeowls. <합법해적 파르페> 57화 댓글, 2020.9.18 작성.

ID 13152. <합법해적 파르페> 57화 댓글, 2020.8.28 작성.


- 작품에 대해 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뼈와피와살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 <합법해적 파르페>는 현재 네이버웹툰에서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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