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의 흔적: 안녕을 바라는 마음

새들의 드라마를 상상하는 일

by 안하림

눈앞에 보이는 알은 청동색의 바탕에 불규칙한 모양의 갈색의 점들이 모이거나 흩어진 무늬가 있다. 메추리알만 한 크기와 형태를 가지고 있다. 알의 한 측면은 금이 가 있고 깨져있다. 알을 뒤집으니 우리가 깨진 알 껍질의 반절만을 보고 있음을 알게 된다. 반듯하지 않게 깨진 경계면은 삶은 메추리알을 깔 때의 느낌을 연상케 한다. 껍질이 잘게 조각나지만 그 조각들이 하나의 막에 붙어있어 연이어 껍질이 까지는 느낌이랄까. 훤히 보이는 알의 내부에 어린 선홍빛은 직전까지 생명을 품었을 것이라 짐작케 한다. 하나의 굵은 핏줄에서 뻗어져 나온 듯한 여러 개의 얇은 실핏줄이 사방으로 퍼져있다.


멀리서 봤을 때엔 알 껍질일 것이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몇 분 전에 봤던 쪽동백나무의 열매와 비슷한 크기라고 생각했다. 어느 새가 부리에 물고 온 구 형태의 그것에서 열매 외의 무언가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열매이겠거니 하고 지나치지 않은 것은 새가 그것을 물고 와서 보인 일련의 행동들에 의문이 생겼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은 차분한 회색의 등에 발랄한 주황색의 옆구리와 부리를 가진 되지빠귀 수컷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얕은 물이 있는 도랑에서 참방 대며 목욕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전체적으로 회갈색 빛의 몸에 목과 가슴에 짙은 점박이 무늬를 지닌 되지빠귀 암컷 한 마리가 날아왔다. 그녀는 부리를 쩍 벌려야 잡을 수 있을 법한 크기의 둥근 무언가를 물고 왔다. 그녀는 도랑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위에 그것을 내려놓고는 순식간에 도랑에 있던 수컷을 위협하듯 그의 머리 위로 접근했다. 수컷은 도망치듯 덤불 속으로 사라졌다. 암컷은 정체 모를 무언가를 돌다리 위에 떡하니 두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먹이를 물고 온 것이라면 왜 챙겨 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갑자기 왜 수컷에게 성을 낸 걸까? 그다음에 머리가 완전히 검지 않고 희끗한 어린 물까치가 돌다리에 앉았다. 정체를 확인하고 싶은 그 무언가를 물까치가 가지고 가지 않기를 바랐고, 물까치는 다행히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우리는 호기심을 품고 찾아간 돌다리에서 되지빠귀의 알 껍질을 마주했다. 이 근처에서 갓 태어난 되지빠귀 새끼가 있나 보구나.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온 흔적을 없앰으로써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의 행동이었구나. 앞으로 어미는 쉴 새 없이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 나르며 키우느라 또 다른 고됨을 겪겠구나. 알 껍질을 바라보며 우리가 내뱉은 감탄사에는 신기함 뿐만 아니라 작은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는 환한 웃음이 들어있었다. 부디 안녕하기를. 탐조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서울의새' 선생님과 나는 되지빠귀 그네들의 이야기를 추측해 보았다. 되지빠귀 암컷이 눈에 잘 띄는 매끄러운 돌다리 위에 깨진 알 껍질을 버리려 의도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버리러 가는 도중에 둥지 근처에서 우연히 모르는 되지빠귀 수컷을 마주쳐 여기 서성대지 말라고 경고한 걸까? 아니면 만약 우리가 본 되지빠귀 암컷과 수컷이 짝꿍이라면, 새끼들이 태어나는 중대한 상황에 주위에서 경쟁자나 포식자가 오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어야 할 수컷이 혼자 유유자적 목욕이나 하고 있는 걸 들켜 구박을 받은 걸까? 관찰하는 새들 간의 관계를 추측하고 그들의 드라마를 상상하는 것은 역시 즐겁다.


25.07.14. 푸른수목원 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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