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의 눈으로 본 구조센터 이야기>
뒷다리의 움직임이 불편한 삵(한국에 사는 고양잇과의 야생동물로, ‘살쾡이’라고도 불린다.)이 센터에 입원한 지 한 달이 되어가던 어느 날, 삵이 지내는 입원장 곳곳에 피가 굳어 뭉쳐 있는 덩어리들이 발견되었다. 담요로 삵의 얼굴을 덮고 조심스레 출혈 부위를 확인해 보니 뒷발의 발가락이 무작위로 뜯겨 있었다.
간밤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원장 CCTV를 돌려 보았다. 삵은 몸을 구부려 그루밍을 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숙이고, 이내 무언가를 힘껏 물어뜯듯 고개를 홱 젖히며 등이 바닥에 닿았다. 이어 옆으로 누워 몸을 둥글게 만 채 무언가를 잘근잘근 씹자, 흑백 화면 속 입가가 검게 물들었다. 그는 왜 자기 몸을 뜯을 만큼 고통스러워야 했을까?
며칠 전 뒷다리 신경이 살아있는지 검사하기 위해 뒷발을 꼬집어 보았을 때 삵은 하악-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볼 정도로 통증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제 발가락뼈가 드러날 정도로 살점을 뜯으면서 통증을 느끼지 않았을 리 없다. 이 모순적인 행동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물어뜯는 행동은 가려움이나 통증, 또는 강박 등 여러 가지 원인에서 비롯될 수 있다. 신경 재생 과정에서 민감도가 증가해 가려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자료를 찾자, 환자의 회복을 바라온 수의사로서 이 가능성을 믿고 싶어진다. 그러나, 작은 입원장 안에서 지내면서 받은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제 발을 물어뜯었을 가능성을 고려하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삵의 입장에서는 영문도 모른 채로 좁은 곳에 갇혀 지내면서 자신을 죽일지도 모를 위협적인 존재에게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온 것이다. 사람이 다가오면 고개를 쳐들고 있는 힘껏 날카로운 이빨을 내보였음에도, 어느새 따끔한 것이 허벅지에 꽂히고 이내 제 몸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나라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상황을 제정신으로 견디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살점이 뜯기는 통증은 그 두려움에 비해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삵은 구조 당시 옆으로 누워있기만 했지만, 치료를 받으며 점차 뒷다리를 써서 앉은 자세를 취했고, 자발적으로 배뇨를 하며, 나를 곧 물어버릴 것처럼 확연한 경계 반응도 보였다. 나는 움찔하면서도 기력을 되찾은 그 모습이 반가웠다. 뒷다리 움직임과 통증반응 등은 호전되었지만,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회복이 더디었다. 손상된 신경은 완전 회복이 어렵기에 일정 기간이 지나도 방사할 정도의 회복이 기대되지 않을 경우, 나는 안락사를 결정하기로 몇 차례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해서 이 환자의 회복 가능성에 대한 나의 판단을 확신할 수 없었던 걸까. 혹은 초반에 뚜렷이 기력을 되찾은 삵의 변화가 계속해서 내게 희망을 품게 한 걸까. ‘일주일만 더 지켜보자.’라는 생각은 삵에게 장기 계류로 인한 부작용을 겪도록 했다. 약물 장기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치료하고, 제한된 공간에서 배뇨 조절과 뒷다리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아 생긴 부작용을 치료하는 데에 그때그때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몇 주가 지나 있었다.
처참하게 피로 물든 삵의 발을 마주한 그날, 나는 먼저 통증과 2차 감염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발을 소독하고 포대를 감은 뒤 약물을 주사했다. 이후 경험 많은 수의사의 조언을 구하고 자료를 찾아보니, 발을 물어뜯는 행동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고 더 이상 신경 손상의 예후를 낙관하기 어려운 시점이라는 판단에 이르렀다. 그래서 안락사를 결정했다. 결정을 실행하고자 한 날 아침, 삵의 입원장에는 또 한 번 혈흔이 어지러이 묻어 있고 포대를 감지 않은 반대쪽 발에서는 살점이 너덜거리고 있었다. 나의 판단이 오히려 환자의 고통을 연장한 것은 아닌지, 삵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게 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물었다. 그리고 깊은 미안함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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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대 학생으로서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실습하던 시절, 나는 좋아하는 야생동물을 가까이서 본다는 즐거움보다는 입원해 있는 야생동물이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클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야생동물 입장에서 구조센터란 원치 않는 곳에 갇혀, 포식자를 포함한 다른 동물들의 냄새와 소리에 노출되고, 피할 곳 없는 공간에서 갑작스러운 손길에 붙잡히는 일이 매일 반복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존재로서의 야생동물의 복지를 고려할 때, 과연 구조센터가 그들에게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긍정적인 측면은 죽을 것 같았던 통증이 줄어들고, 운이 좋으면 회복 후 야생으로 돌아가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일 테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은 심한 포획 스트레스가 때로는 죽음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어떤 결과가 더 크게 작용할지는 각 생명마다, 처한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나와는 다른 관점에서 구조센터의 존재를 묻는 이도 있다. “야생동물의 삶에 사람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게 맞을까? 아픈 상태로 야생에서 버티다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더라고, 그것이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순리이고 생태계의 순환 속에 있는 일이지 않을까? 오히려 안락사로 고통을 중단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 또한 결국은 사람 생각 아닐까?” 야생의 삶을 경탄하며 동시에 그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대화를 나누던 상대였기에, 그의 질문 속에는 ‘야생동물의 삶을 삶답게 만드는 것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깔려 있음을 안다.
야생동물 구조는 첩첩산중에서가 아니라, 대개 야생동물과 사람의 행동반경이 겹치는 경계 지역에서 일어난다. 산속에서 담비의 공격을 받은 새끼 노루가 사람의 눈에 띌 가능성은 낮지만, 어미가 풀밭에 숨겨둔 새끼 고라니가 예초기에 심하게 다쳐서 덩달아 놀란 사람에 의해 구조될 확률은 높다. 실제로 전국 야생동물구조센터의 기록을 살펴보면, 구조 원인의 대부분은 차량 충돌, 인공구조물에 의한 고립, 전선 얽힘, 올무나 덫 같은 불법 사냥도구, 농약 중독 등 인간의 편의를 위한 인공물에서 비롯된다. 즉, 구조되는 야생동물의 고통이 시작된 데에는 사람의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다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야생동물이 겪는 고통의 정도와 시간을 줄이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야생동물구조센터다.
무엇보다도 야생동물구조센터의 존재 의의에 대해 내가 깊이 공감하게 된 내용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소속 김봉균 재활관리사의 강연에서였다. 그는 구조 원인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그 기록을 축적해 통계로 환원함으로써 필요한 야생동물 보전 정책을 만드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로 충남센터는 콘크리트 농수로에 고립되어 나오지 못하는 고라니, 너구리 등의 구조 사례를 기록했고, 이를 근거로 농수로에 야생동물이 탈출할 수 있는 경사진 탈출로를 설치할 필요성을 지자체에 제안했다. 그 결과, 특히 농수로 고립 케이스가 많았던 곳부터 실제로 경사로가 설치되었다. 이후 경사로를 이용하는 야생동물들의 모습이 무인카메라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해당 지역의 농수로 고립 구조 건수가 대폭 감소했다.
이처럼 구조센터의 기록은 정책의 근거로 기능할 수 있다. 따라서 구조 원인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기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새끼 야생동물이 아직 생존의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어미 없이 ‘미아’로 구조된 경우를 생각해 보자. 새끼는 어미를 따라가다가 배수로나 농수로에 빠졌을 수도, 갑작스러운 호우로 물살에 떠밀렸을 수도, 둥지가 추락했을 수도 있다. 새끼가 미아가 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더라도 구조 당시 현장 상황과 주위 환경, 환자의 증상과 병변 등을 종합해 추정하여 기록을 남겨둔다면, 향후 그러한 사고를 줄이는 데 유의미한 자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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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하는 행위에 대해 의문을 풀기 위해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동안, 나는 나의 주된 관심사인 ‘야생동물 보전’을 위해 구조센터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현장에서 야생동물이 실제로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를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은 앞으로 사람과 야생동물이 같이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구조센터에서 일하게 된 나는 마음이 급해져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이곤 했다. 야생동물이 본래 서식지에서 본성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엿보는 것을 좋아했기에, 그들이 제한된 환경에서 본성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날을 하루라도 줄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자의 입원 관리에 따른 건강상의 이점과 복지 측면의 손실을 모두 고려하여 입원을 지속하며 상태 변화를 지켜볼지, 다른 처치를 시도할지, 자연으로 방사할지, 혹은 안락사를 결정할지를 ‘시기적절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게 다가왔다.
앞서 삵의 사례에서 보듯,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는 환자의 관리와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매 단계마다 깊은 고민이 뒤따른다. 치료 후 회복 가능성이 있는지, 필요한 처치를 시행할 수 있는 상태인지, 입원으로 인한 부작용을 어떻게 관리할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반려동물 병원에서는 대체로 생명을 살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적극적인 처치와 수술을 택한다. 그러나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는 적극적인 치료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기존 증상은 나아질지 몰라도 장기간 인위적인 환경에서 지내는 동안 다른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겁이 많은 고라니의 경우, 몸이 불편하더라도 사람이 가까이 오면 어떻게든 도망치려 펄쩍 날뛴다. 센터에서는 먹이를 주거나 청소, 약물 주사 등을 위해 사람이 접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형수술 후 운동 제한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혹여 골절된 뼈의 배열을 맞췄더라도 그 배열이 유지되어 잘 회복될 확률이 매우 낮다. 게다가 경계심 강한 야생동물이 사람에게 잡혀 구조될 정도라면, 이미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게 나쁜 경우가 많기에 회복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은 극히 낮다.
나는 최선을 다해 진료를 보아도 그것이 반드시 최고의 방법이 아닐 수 있음을, 때로는 동물의 입장에서 최선이 아닐 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온 정성과 힘을 기울여도 그 결과가 그들에게 가장 좋은 길이 되지 않을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내가 마주한 야생동물 환자에게 그 순간 최선이 되는 선택을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돌아보고, 고민하며,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 노력할 뿐이다. 재활관리사, 수의사, 시민 등 다양한 주체들의 이러한 고민이 모여 언젠가 공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온라인 '생추어리도서관'에 기고한 글입니다.
*표지 사진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의 활동이 담긴 영화 '생츄어리'의 포스터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