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뜨는 보금자리의 첫 '뉴문페스티벌' 참여와 영화 '꽃풀소' 감상 후기
저 커다란 눈동자 안에 나는 낯설고 작은 생명체로 비치고 있을까. 5m쯤 거리를 두고 앉아 가만히 머위를 바라본다. 그는 주위를 담은 맑은 눈동자가 동그랗게 보이도록 눈 뜨고 있기를 한참. 어느새 눈꺼풀이 조금씩 내려와 아래로 차분히 늘어진 속눈썹이 눈동자 위로 선명히 보인다. 눈이 완전히 감겨 얼룩과 얼룩이 만난다. 머위가 조금 편안해진 건가 싶어 나는 안도한다. 나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는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졌나 보다.
머위는 양쪽의 뿔이 제각기 굴곡지며 위로 뻗은 홀스타인 소이다. 홀스타인 ¹여성 소는 흔히 말하는 '젖소'로, 임신을 반복하며 제 새끼의 입이 아닌 기계에 젖을 짜이는 삶을 사는 한편, 홀스타인 남성 소는 만 2살이 되기 전에 도축이 된다. 반면, 들풀의 이름을 가진 다섯 홀스타인 소(이하 '꽃풀소')들은 올해 다섯 번째 생일을 맞는다. 며칠 차이로 모두 10월에 탄생한 머위, 메밀, 창포, 엉이, 부들. 축산업에 이용되는 홀스타인 남성 소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생일을 맞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꽃풀소 각각이 탄생한 날을 정확히 알고 기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날이 정해진 채로 태어났기 때문인 듯하다. 농장에서 그들의 탄생일자를 기록한 것은 정해진 시기에 주사를 놓고, 짧은 기간 동안 최대한으로 살을 찌워 고기로 만들기 위한 과정의 시작이었을 테다. 태어날 때부터 예견된 죽음의 날과 훨훨 멀어진 꽃풀소는 그들이 살아내는 시간을 온몸으로 흡수하듯 덩치가 커졌다. 제 덩치를 찾은 그들은 서 있을 때에면 성인이 눈을 맞추기 위해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키가 크다. 국내에서 소를 오래 키워온 농장주도, 오래 치료해 온 대동물 수의사도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함이다. 그럼에도 얼굴의 측면에 달려있어 주위를 여유로이 바라보는 듯한 눈과 긴 속눈썹, 그리고 그들의 느긋한 발걸음의 영향인지 그들의 거대함이 위협적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¹동물권과 관련한 논의에서 인간과 동물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착취 구조를 견고히 해온 사회에 의문을 던지고, 인간도 동물에 속한 하나의 종임을 드러내기 위해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로 칭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동물해방물결은 같은 맥락에서 비인간동물의 성별을 암컷, 수컷이 아닌 여성, 남성으로 칭하고 있다.)
생기 있는 분홍색의 두터운 혀로 제 콧잔등을 휘감아 콧구멍을 스윽- 훔친다. 제 몸에 달라붙는 파리들을 털어내느라 곳곳의 근육이 투르르- 떨린다. 털이 빈약하게 나 있는 긴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턱,턱, 제 몸의 뒷면을 때린다. 꼬리의 움직임도 닿지 않고 근육이 역동적으로 떨리지도 않는 부분에 파리가 모여든다. 간지럽지 않게 솔로 벅벅 긁어주고 싶다. 하지만 그는 이내 익숙하다는 듯 울타리에 설치된 원통형의 긁개(바디브러시)에 다가가 머리의 각도를 틀어가며 까슬한 솔에 피부를 문지른다. 고개를 오르내리며 목의 옆부분이 긁개의 널찍한 면과 마찰하도록 하기도 하고, 긁개의 모서리를 활용하여 귀 사이의 뒤통수, 심지어 귓등까지도 정확하게 긁는다. 소의 얼굴의 양눈 사이에 휘몰아치는 털을 보는 것이 좋다. 이마 한가운데에서 소용돌이가 시작되어 바람이 주위로 퍼져 나가듯 털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당연하게도 소들마다 휘몰아침이 다르다. 메밀이 걸어오는 방향의 울타리 사이로 내 손등을 슬며시 내민다. 메밀이 다가와 내 손의 냄새를 맡는다. 콧김이 훅- 내 손을 스치고, 동심원을 그리며 퍼지는 공기의 흐름이 보이는 것만 같다. 다큐멘터리 영화 '꽃풀소'와 돌보미가 찍은 영상을 통해 몇 년간 꽃풀소를 화면 너머로 봐온 나는 그들에게 친밀감을 느낀다.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그들도 나를 궁금해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일었는지 그들이 내 앞에서 더 머물러 주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곧이어 나는 그들에게 처음 보는 한 명의 낯선 이일 뿐임을 자각한다.
다섯 얼룩소가 거주하는 보금자리와 이를 품은 신월리 달뜨는 마을에 사는 모든 생명들이 안녕하기를 기원하는 의식으로 고사를 지냈다. 고사상에는 익숙한 사과와 배뿐만 아니라 소들이 좋아하는 오이와 당근, 그리고 눈길을 끄는 화려한 수박이 있다. 훌라를 출 때에 목과 머리에 꽃을 찬란하게 두르듯, 생기 있는 꽃과 잎으로 장식된 수박도 곧 춤을 출 것만 같다. 뒤이어 훌라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공연자들이 양손을 위로 향하게 하여 부드러운 바람에 몸을 맡기듯 움직일 때였다. 내내 흐리던 하늘에서 구름이 걷히면서 사위가 밝아진다. 햇빛이 무대를 감싸며 공연자들의 환한 웃음을 더 빛나게 해 준다.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 내 앞에 앉은 꽃풀소 돌보미를 비롯한 활동가들의 등에 쓰인 문구이다. 검은 티셔츠에 하얀 볼드체로 쓰인 이 외침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이들이다. 무대 위의 연사를 촬영하는 활동가 또한 이 외침을 입고 형형색색의 모자를 쓰고 있다. 그와 대비되는 단조로운 색의 정장 차림에 희끗한 머리칼을 지닌 이가 무대 위에서 "범상치 않은" 젊은이들과의 만남에 대해 말하고 있다. 활동가들에게 여러 번 "좋은 사람이 있"다며 꽃풀소 보금자리를 꾸리는 데에 도움을 줄 만한 이들을 소개해주신 DMZ 평화생명동산의 정성헌 이사장이다. 당신의 입으로 '연대'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고도 누구보다 설득력 있게 당신의 삶을 통해 연결의 힘을 퍼뜨린다. 그는 "범상치 않은 젊은이들이 범상치 않은 일을 해냈"다고 말하는데, 이 주어와 목적어 사이에 있는 "마을 사람들과"라는 수식어는 동사를 가능하게 하는 데에 분명하게 큰 역할을 했다. 그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수십 년에 걸쳐 쌓아 온 인적, 물적, 지적 자원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어, 저기 '좋은 사람'이에요!"
푸근하고 듬직한 인상, 영화 '꽃풀소'에서 소들의 임시 거처를 제공해 주신 농장주를 발견했다. 영화 '꽃풀소'는 동물해방물결 활동가들이 얼룩소들의 구조 단계부터 시작해 소들을 돌보는 보금자리를 기획하고 축산업을 주로 하는 마을 사람들과 협업하면서 소 살림에서 나아가 마을 살림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담았다. 그 농장주 분에게 다가가 아는 체를 하니 몸을 오므리며 쑥스러워하신다. 신월리 청년회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이지연 활동가는 개관식 축사에서 감사한 이들의 성함을 차례로 부르다가, 그 농장주 분의 성함을 말하는 동시에 눈물을 터뜨렸다. 너무도 감사하기에 터져 나오는 울음. 불법 개농장에서 구조하려는 소들이 지낼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채로, 개농장 철거 시일은 앞당겨지고, 당장 소들을 옮기지 않으면 도축장으로 소를 떠나보내야 하는 상황. 그 막막한 시기에 기꺼이 제 농장의 일부 공간을 이 소들에게 내어주신 분이다. 이미 소들의 구조를 위한 펀딩을 진행하여 많은 이들의 응원을 받은 상황에서 활동가들은 얼마나 무거운 책임감과 부담감을 이고 매일을 마음 졸이며 지냈을까. 그러던 중 처음 만난 이의 넉넉한 베풂에 몸의 긴장이 탁 풀리며 숨이 쉬어졌을 것 같다.
비인간동물을 돌보는 일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같이 하는 일이다. 활동가들은 연령대가 높아져만 가던 인제의 신월리 달뜨는 마을에 찾아가 축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해 오신 어르신들과 만났다. 겉에서 보면 고기를 먹지 않고 동물의 해방을 외치는 비건 청년들과 적극적인 방식으로 고기를 생산하는 어르신들 사이에 서로 적대감이 있지 않을까 할 수도 있다.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걱정이 몸집을 불려 만남을 시작하는 것조차 두려워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섣불리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측해서 거리를 두고는 하니까. 하지만 그들은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마음을 내어준다. 콩고기를 구워 먹으며 소주잔을 기울인다. 활동가들은 육우를 키우는 농장주로부터 소에게 어떤 먹이를 줘야 하고, 무얼 조심해야 하는지 등 소의 돌봄에 대해 조언을 받는다. 어르신들은 비건, 콩고기, 생추어리 등 새로운 실천적 개념을 신기해하며 동물들과 잘 살아보겠다고 눈을 반짝이는 청년들을 기특해하고, 마을에 청년들과 어린이가 오가며 활기가 도는 걸 반가워하신다. 만나지 않으면 오해를 풀 길이 없다.
축제가 열리는 잔디밭에는 마을 주민들이 키운 농작물을 파는 부스와 청년들이 운영하는 리사이클링 브랜드 부스, 비건 음식을 파는 부스가 늘어서 있다. 옥수수를 갓 삶았다고 맛있다며 홍보하시는 분의 얼굴이 익숙하다. 꽃풀소와 활동가들이 신월리에 정착하기 이전에는 평균 연령이 65세를 넘었던 마을에서 사무장을 맡고 있는 중년의 여성 주민이다. 영화 '꽃풀소'에서 그녀는 이웃 어르신들의 죽음이 가까워져 올 때 슬픔과 동시에 홀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소멸 위기에 처한 시골 마을'을 뉴스로 접할 때에는 옅은 안타까움을 느낄 뿐이었지만, 그 마을에 실제로 살고 있는 개인의 상황에 나를 대입하여 상상하니 완전히 다른 감정을 느꼈다. 이웃의 사별을 겪으며 슬픔을 함께 하는 내 옆의 사람들도 머지않아 떠날 수 있다는 감각. 새로운 만남과 탄생 없이 이별과 상실만이 이어질 것만 같은 불안. 지난 3년여간 마을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내 앞의 사무장님에게 그러한 감정이 사그라들었기를 바랐다. '마을 살림'은 단지 인구가 많아지고 경제가 활성화되는 수치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 사는 개개인들의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고 이곳에 계속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게 하는 일임을 실감했다.
부평초등학교 신월분교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복합문화공간 '풀무질'과 운동장에는 과거에 학교였음을 연상시키는 요소들이 이곳저곳에 있다. 운동장의 앞쪽에 구령대가 있었을 법한 중앙에 위치한 큰 무대는 활기차게 축제를 알리고 있는데, 그와 동시에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그 옆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황동색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다. 문화공간 복도에 있는 짙은 녹색의 널찍한 칠판 위에 하얀 궁서체로 쓰인 '월중행사', '재적현황'은 손가락으로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분필을 하나씩 움켜쥐고 칠판에 방명록을 남긴다. 내 앞의 아이는 한 자 한 자 공들여 '동물들아 잘 살아'라고 쓰고는, 뒤에 그린 하트 안을 붉게 칠해 가득 찬 하트를 남긴다. 담벼락에는 꽃풀소의 희고 검은 얼룩을 연상시키는 무늬에 들풀이 떠오르는 생기발랄한 연두색과 달의 옅은 노란색, 그리고 이 색들을 따듯하게 아우르는 연보라색이 더해져 조화를 이룬다. 마포에 있는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님이 먼 길을 와서 함께 색색이 칠한 담장이다. 잔디가 펼쳐진 운동장에는 아이부터 청년,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각기 원하는 방식으로 앉거나 눕거나 뛰고 있다. 무대 위에서는 밴드의 리허설 연주가 이어지고, 잔디밭 위 많은 이들이 연주에 맞춰 몸을 들썩인다. 어느 아이들은 원반 던지기를 하다가 무대 위로 원반이 날아가자 우렁차게 "죄송합니다!" 외친다. 또 다른 아이와 엄마는 맨발로 잔디밭 위를 뛰어다니며 잡기 놀이를 한다. 발랄하게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여럿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어떤 생명에게는 일생 동안 뜀이 허락되지 않는다. 꽃풀소에게 뜀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마음과 돈이 모여야 했는지를 생각한다. 잔디밭에서 문화공간 건물을 지나 언덕을 걸어 올라가면 다섯 얼룩소들이 축사 안 혹은 축사와 이어진 경사진 운동장에 띄엄띄엄 자리를 잡고 앉아 되새김질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워낙 몸집이 거대한 홀스타인 소 다섯이 지내는 공간은 그들에게 충분하지 않은 듯 느껴진다. 운동장에서 그들이 힘차게 뛰는 큰 보폭으로 스무 걸음 정도 뛸 수 있을까. 동시에 이 제한된 자유조차 누리지 못하는 수많은 생명들을 떠올린다. 짧은 일생 동안 풀을 밟는 감각을 모를 이들. 저와 제 친구들의 발걸음으로 다져진 길을 선택해 움직일 수 없는 이들. 비좁은 축사 바깥의 삶을 보지도 듣지도 못한 그들은 들판에서 뛰어다니고 마음에 드는 풀을 뜯어먹고 싶다는 욕구를 가질 수 있을까. 생추어리, 보금자리. 그곳은 거주동물이 사람의 목적에 의해 이용당하지 않고 제 모습대로 나이 들어갈 수 있도록 돌보는 곳.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리라 기대할 수 있지만, 막상 실제로 마주할 때 감탄이 나오는 낭만적인 곳은 아니다. 다만, 겉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주목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일반 축사와 물리적인 면적의 차이보다도 그곳에서 돌봄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돌봄을 받는 소들은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축사에 가까이 가도 거부감이 드는 똥 냄새가 나지 않았다. 심지어 내 앞에서 소가 똥 싸는 광경을 관찰했음에도 불구하고 똥 냄새가 역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축산업에서는 단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윤을 남기기 위해 비육사료를 사용한다. 그런데 꽃풀소들은 비육사료가 아니라 알팔파, 티모시와 같은 건초를 먹고, 종종 특별 간식으로 과일이나 들풀을 먹는다. 식이가 똥 냄새에 영향을 주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낀다고 내 옆의 꽃풀소 돌보미는 말했다. 축사 내부에서 치운 똥은 한 켠의 퇴비사에 모아 건초 부스러기와 톱밥을 섞어 자연의 분해자에게 맡김으로써 시간이 흘러 비옥한 흙이 된다. 흙의 부드러운 촉감은 소들이 앉아있기를 좋아하는 폭신한 쉼터를 제공해 주고, 흙에 풍부한 영양분은 거름으로서 소가 먹을 식물을 쑥쑥 자라게 한다. 흙에서 자란 식물은 흙을 밟는 생명을 먹여 살리고, 그 생명이 배설한 것은 흙으로 돌아가 다시 생명을 키워낸다. 순환이 이루어지는 곳에서는 배설물이 물을 오염시키지도 않고, 주위에 사는 인간동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도 않는다. 냄새가 지독한 똥이 쌓인 곳을 밟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들끓는 파리 떼의 공격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는 꽃풀소들의 삶의 질 또한 대다수의 소들과 분명히 다를 것이다.
꽃풀소 보금자리에는 돌보미를 비롯한 활동가들의 고민과 공부와 노동이 켜켜이 쌓여 꽃풀소의 일상 속 선택지가 다채로워지고 있다. 경사진 운동장에는 돌이 쌓인 둑이 여기저기에 얕게 솟아있고, 기다란 둑을 따라 초록 들풀이 늘어서 있다. 몇 개월 전 활동가들이 ²물살이의 비늘처럼 아래로 약간 둥글게 굽어 있는 모양으로 땅을 파고, 이 굽은 선을 따라 돌을 쌓고 씨앗을 심음으로써 경사면에서도 빗물이 고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빗물에 의해 경사면의 흙이 소실되지 않는 것에 더해 빗물이 고인 부분에 식물이 잘 자라나는 효과가 있다. 운동장에 색깔을 더하는 들풀은 소들이 마음대로 원할 때에 뜯어먹는 간식이 되기도 한다. 일상에 선택지가 생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제한적이나마 쉬고 싶은 자리를 선택하고, 먹고 싶은 풀을 선택하는 그 시간은 소들의 매일을 조금씩 다른 하루로 만든다. 그런 하루하루가 모여 이루는 그들의 삶은 '고기가 되지 않는 소들의 삶'이 아니라 창포의 삶, 엉이의 삶, 부들의 삶, 메밀의 삶, 머위의 삶이 되고 있다. 그들 모두 다르게 뻗은 뿔처럼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고유한 삶을 살고 있고, 살아갈 테다. 그들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과 다른 종의 개별적인 얼굴을 들여다보고 성격을 헤아려보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리라 기대한다. 꽃풀소 보금자리를 조성하고 기틀을 마련하는 데에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이지연 활동가의 말처럼 "모든 것은 만남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니까.
(²동물권 관련 논의에서는 '물고기' 대신에 물에 사는 생명이라는 뜻을 가진 '물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25.10. 살리미 안하림 씀.
*온라인 '생추어리 도서관'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