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물범

넓고 큰 일렁임

by 안하림


너른 바다 여기저기서 물살이 하얗게 일어났다가 뒤이어 흩어진다. 그런데 사라지지 않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광택이 있다. 점박이물범의 반질반질한 둥근 머리가 햇빛을 받아 빛난다. 검은 코를 하늘로 치켜든 채로 머리만 동동 떠있다. 치켜든 코 아래턱에는 회백색 바탕에 검은 물감을 묻힌 붓으로 턱턱 손 가는 대로 점을 찍은 듯한 무늬가 있다. 코 양옆으로 흰 수염이 주둥이를 따라 아래로 뻗어있고, 눈이 동굴 같이 검게만 보인다. 눈보다 약간 뒤통수 쪽에는 한쪽 콧구멍 크기의 귓구멍이 버엉 뚫려있다. 하늘로 향하던 주둥이를 잠시 수면과 평행하게 하여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본다. 물방울을 거꾸로 한 듯한 모양의 콧구멍 두 개가 아래쪽에서 만나 콧구멍이 열릴 때면 마치 하트처럼 보인다. 바다에 떠 있는 점박이물범에게서 매끄럽고 건실한 몸을 엿보는 것은 물범이 옆으로 곡선을 그리며 물속으로 잠수할 때이다. 그런가 하면 어느 물범은 하늘을 바라본 채로 솟아있던 머리의 뒤통수를 물속으로 굴리며 잠수한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수면 아래에서 물범들의 몸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을까?


썰물 때에 물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겨우 드러난 바위 주위로 물범들이 삼삼오오 모인다. 아주 실한 고구마 같이 가운데가 가장 두터운 몸체가 곧 드러날 것이다. 한 물범이 턱과 가슴팍을 바위 가장자리에 걸치고 양쪽 뒷발을 하나로 모아 꼬리인양 위로 올려 든다. 똥실한 몸 전체에 힘을 주어 튕기며 움직인다. 물살이 바위를 철썩- 때리는 타이밍에 맞춰 또 한 번 온몸을 들썩인다. 둔탁한 움직임으로 바위 안쪽에 안착한 물범은 제법 노련하게 자리를 지킨다. 짧디 짧은 앞발은 몸과 하나가 된 듯 옆구리인지 배인지 모를 곳에 착 붙이고 있다. 바위에 오르기 직전까지 물속을 헤엄치던 물범이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전히 햇빛을 받는 동안에는 수면과 최대한 멀어지려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고구마 양 꼭지처럼 몸에 비해 얄브스름한 머리와 뒷발을 위로 쳐들고 있다. 주위를 서성이던 물범 몇몇은 기회를 노려 바위에 몸뚱이를 얹어보지만 금세 물살에 미끄러져 내리기 일쑤다. 우리 일행은 필드스코프와 쌍안경으로 물범들의 분투를 지켜보며 어느 순간 같이 안타까워하기도 조용한 탄성을 지르기도 한다.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난 바위의 면적이 넓어지고, 우리의 응원을 받은 물범들 일곱 마리가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3년 전에 이곳, 백령도 하늬해변에서 점박이물범들을 처음 만났다. 며칠간 물범들을 관찰하고도 마지막날 나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며 물범들을 다시 보러 오겠노라 스스로 약속했다. 인천항에서 4-5시간 동안 쾌속선을 타고 들어가야 하는 백령도에 가려면 갑자기 날씨가 좋지 않아 배가 뜨지 않을 가능성까지 고려하여 여유 있게 여러 날을 비워놔야 한다. 그렇기에 3년 만에 자체적으로 여름방학을 가지게 된 지금,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백령도 여행을 주도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끌어당긴 걸까?

어느 해양포유류가 바다에서 '살아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전에 없던 감정이 일어난다. 벅차오름, 경이로움과 같이 넓고 큰 감정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반면, 동물원 수족관에 '있는' 해양포유류를 보는 것은 내게 완전히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안타까움, 답답함 등이 차오르면서 머릿속 생각이 복잡해진다. 나는 그들이 쉬고 싶은 때에 몸을 누이고 싶은 곳을 선택하고, 먹고 싶은 먹이를 사냥하고, 가고 싶은 곳으로 헤엄치는 삶을 엿보고 싶다. 그 삶의 일부를 가까이서 선명하게 담은 다큐멘터리를 볼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왜 그들을 멀리서라도 현장에서 만나고 싶었을까?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또한 내게 놀라움과 호기심을 선물한다. 그러나 그들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현장에 찾아가 우연히 그들을 마주칠 때의 감정은 훨씬 더 강렬하고 힘이 세다. 그에는 여러 가지 요소가 작용하는 것 같다. 첫째로, 같은 시공간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과 사람이 대면할 때처럼 눈빛과 체온을 주고받을 수 없고, 숨이 닿는 거리도 아니다. 하지만 서로가 주는 자극에 반응하거나, 혹은 외부의 자극에 각자 다른 방식으로 반응한다. 해변에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많아져 와글거리게 되면 바다에 떠있는 물범들이 더 멀어지는 걸 보고는 소곤소곤 말을 하면서 그들에게 미칠 자극을 최소화하려 애쓴다. 내리쬐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그늘에서 물범들을 관찰하는 사람들과 달리, 물범들은 바위에 올라 온몸을 햇빛에 내맡긴다. 바위에서 쉬던 물범들이 갑자기 하나둘 서둘러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이 감지하지 못한 어떤 자극을 뛰어난 청각으로 들었는지 진동을 느꼈는지는 몰라도 물범들 여럿의 행동을 바꿀 정도로 영향이 큰 자극이 있었던 것이다. 주위 공사장에서 우리는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소음이나 진동이 생긴 걸까 혹은 바닷속에서 다른 물범들이 보내는 신호를 받은 것일까 추측할 뿐이다. 둘째로, 우리의 만남이 어떨지 예측할 수 없이 매번 다르다. 북쪽 나라에서 먼바다를 무사히 헤엄쳐 와 백령도에서 여름을 나기로 선택한 물범들만을 나는 만날 수 있다. 오늘 날씨와 바람에 따라, 그에 더해 가마우지들이 자리를 선점하는지에 따라 물범들이 어느 바위에 올라 쉬어갈지 모른다. 바다의 밀물과 썰물 높이와 때에 따라 사람들의 가시거리에 물범들이 얼마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셋째로, 나의 시선과 앵글로 물범들을 만날 수 있다. 다큐에서 감독이 잠수해서 촬영하는 점박이물범이 다가오는 모습은 분명 인상적이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기억은 한 물범이 바위에 대고 있는 옆구리가 눌린 듯 두터운 몸에 그늘진 선이 생긴 모습이다. 특히 시선이 계속 가던 또 다른 물범은 양쪽 눈 위로 하얗고 굵은 눈썹을 가진 듯한 얼굴이다. 게다가 눈썹인 척하는 그 무늬는 가쪽이 처져있어 울상인 표정을 연상케 한다. 점박이물범을 비롯한 야생동물과 직접 만나고 싶어 하는 욕구를 설명해 보려 애썼지만, 사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더 크게 작용할지도 모르겠다. 단지 마음이 갈 뿐이다.


25.08. 백령도 점박이물범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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