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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Aug 25. 2021

5. 진리는 어떻게 찾을까?

비판의 검_아낙시만드로스


[숲 속의 전투]

저건 미토스의 유령들이야!

숲 속에서 유령처럼 생긴 그림자가 다가오자 여자아이가 소리치며 용감하게 뛰어나갔어요. 반대로 동하는 겁을 먹고 바위 뒤에 숨어버렸습니다. 유령은 동굴처럼 검은 입을 벌렸고 그 안에서 불꽃이 일렁이며 튀어나왔어요. 여자 아이는 재빨리 몸을 굴려 불길을 피했어요. 그리고 품 안에서 나무로 된 검을 뽑아 유령을 향해 휘둘렀어요.


"와~ 멋지다!" 동하는 입을 벌리고 감탄했어요. 하지만 유령의 몸에 휘두른 검이 그대로 통과해버려서 아무런 피해를 줄 수 없었죠. 유령은 가소롭다는 듯이 기괴한 웃음을 웃으며 불을 뿜었어요. 외투로 불을 막는 데 성공했지만 수풀에 옮겨 붙은 불꽃에 다치고 말았어요.



"아앗!" 여자 아이의 목소리에 놀란 동하는 용기를 냈어요. '어떻게 하지? 아! 맞다! 불을 끄는 건 물이니까 탈레스 선생님이 준 항아리 안의 물을 소환해야겠다.' 동하는 주근깨 카드를 들고 항아리 물을 쏟았어요. 물은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거센 물줄기에 올라탄 동하는 유령을 피해 재빨리 여자아이를 구해 깊은 숲 속으로 미끄러져 내려갔어요.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멀미가 날 것 같았어요. '아아아~ 대체 어떻게 멈추는 거지?', 동하의 말에 여자아이가 탈레스 선생님처럼 항아리를 추켜올리라고 했어요. 동하가 항아리를 하늘 위로 들어 올리자 물이 다시 쏙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어요. 덕분에 두 사람은 풀밭에 쿵하고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미토스의 유령 vs. 로고스의 인간]


"괜찮아? 안 다쳤어?" 동하는 불에 그을린 여자 아이의 외투를 들어 올리며 걱정스럽게 물었어요. 여자아이는 괜찮다고 말하며 동하의 손을 뿌리치고는 재빨리 다친 팔을 외투로 덮었어요. 동하는 걱정이 됐지만 화를 낼 것 같아 묻지 않기로 했어요. 그때 여자아이가 말했어요.


"아까 본 유령들은 숲 속에 사는 미토스(mythos)의 정령들이야. 미토스는 신 또는 신화란 뜻으로 이 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이곳을 저 미토스의 신들이 다스린다고 생각하지. 번개가 쳐도 신이 한 일이고, 사과가 떨어지는 것도 신이 한 일이고... 그러다 보니 미토스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질문도, 생각도 하지 않아. 심지어 어둠의 숲을 향해 제사도 지내고 물건도 가져다 바치고 말이야."


"응. 불도 뿜는 걸 보니 정말 신이 맞는 것 같아."


동하의 말에 여자애가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어요. 동하는 주눅이 들었어요. 그리고 변명하듯 말했어요. "불을 뿜는 유령이나 신을 무슨 수로 이겨! 더 센 아이템이 있다면 모를까..."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미토스를 이기는 건 바로 로고스! 로고스는 이치에 맞는 생각이란 뜻이란다.
생각을 갈고닦는다면 언제든 이길 수 있지."


동하와 여자아이가 소리 나는 곳을 쳐다보자 탈레스 선생님과 비슷한 옷을 입은 사람이 숲 속에서 등장했어요.



[진리를 찾는 방법]


아낙시만드로스 : 안녕, 친구들. 나는 탈레스의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라고 한단다. 물 항아리를 들고 있는 걸 보니 탈레스 님을 이미 만났나 보구나.


동하 : 네. 세상의 근원이 물이라고 하시며 주신 아이템이에요. 그런데 도망갈 땐 아주 쓸모가 있는데 미토스를 무찌르는 공격용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아낙... 아낙네? 아낙시만두? 아무튼 선생님! 공격용 아이템 주시면 안 될까요? 로고스인가 뭔가요.


아낙시만드로스 : 내 이름은 아낙시만드로스! 에헴. 이름이 좀 어렵긴 하지. 아무튼 로고스는 미토스를 이기는 힘을 지니고 있지. 그 힘은 누구나 갖고 있단다.


대신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단다. 탈레스 선생님은 세상의 근원이 물이라는 주장과 함께 그 근거를 말해서 깨달음을 주셨지. 그런데 탈레스 선생님의 주장과 근거가 맞다고 생각하니?


동하 : 음... 선생님 말씀에 반대하고 싶진 않지만... 만약 세상의 근본이 모두 물로 되어 있다면, 아까 미토스가 쏜 불도 물로 되어있다는 소린데... 그건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물에서 불이 나오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아낙시만드로스 : 오! 나와 생각이 똑같구먼. 나는 세상을 쪼개고 쪼개면 근본 물질이 있을 거라는 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조차 물에서 만들어진다는 건 받아들이기 어려워. 게다가 세계가 평평한 모양으로 바닷물 위에 떠 있다는 생각도 의심했지. 세계를 물이 떠받치고 있다면, 그 물은 무엇이 떠받치고 있는 거지? 다시 땅이 떠받치고 또 물이 있고... 끝도 없이 반복되겠지.  


동하 : 음. 그러니까 스승님의 말씀 중에 맞는 생각은 받아들이고, 옳지 않은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군요.


아낙시만드로스 : 오호! 무척 똘똘한 녀석이로구나. 누구나 주장을 하고 근거와 이유를 말할 수 있지. 하지만 그런 주장을 몽땅 믿어버려선 안돼. 누구나 잘못된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맞는 근거는 받아들이고, 맞지 않는 근거는 비판하고 고쳐나가야 한단다. 그래야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거든. 나는 그래서 세상의 근원이 무한자라고 하는 에너지 비슷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제자인 아낙시메네스는 나를 비판하면서 세상이 공기로 되어 있다는 거야. 나 원 참!


동하 : 제자 이름이 아낙시... 낚시 집이요?


아낙시만드로스 : 에잉!


[비판의 검]


아낙시만드로스 선생님은 동하가 이름을 자꾸 틀리게 말하자 '에잉!' 하며 좀 삐친 것 같았어요. 하지만 품에서 번쩍이는 멋진 칼을 꺼내셨죠. 동하에게 주면서 말씀하셨어요. "이건 로고스의 정신이 담긴 비판의 검이란다." 스승님의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비판할 수 있어야 해. 우리는 인간이고 결코 완벽할 수는 없거든."


동하는 비판의 검을 잡고 이리저리 휘둘러봤어요. 아낙시만드로스 선생님이 덧붙였어요. "그 칼을 들고 있으면 상대방의 허점을 찔러 무찌를 수 있지. 하지만 생각 없이 휘두른다면 나무칼보다 못한 아이템이란다. 기억해 둬라. 검을 휘두르기 전에 반드시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걸!"


동하는 새로운 아이템을 얻은 게 신이 났어요. 칼을 허리춤에 차려다가 여자아이를 바라봤어요.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이름도 모르고 정체도 모른 채 함께 숲 속을 헤매고 있었으니까요. 동하는 조심스럽게 여자아이에게 이름을 물어봤어요. 여자아이는 동하를 물끄러미 바라봤어요. 그리고는 대답 대신, 아까 다친 팔을 보여줬어요. 여자 아이의 팔 매끈한 플라스틱이었요. 마치 게임 세계 레고 모양 캐릭터의 팔 같았죠. 동하의 눈이 휘둥그레 졌어요.


[아낙시만드로스의 가르침]


 1. 아낙시만드로스 : 탈레스의 제자로 알려진 철학자입니다. 최초로 지도를 만들려 했던 과학자이기도 했고, 세계가 공기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 아낙시메네스의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세계의 근원 물질이 있다는 건 인정했지만, 물이 근원이라는 생각에는 반대했어요.

2. 미토스와 로고스 :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과 세상을 신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토스(신화)에 길들여져 있었어요. 하지만 철학자들은 생각을 통해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진리를 찾는 로고스(생각과 이성)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3. 비판을 통한 진리탐구 : 주근깨 카드는 기본적인 철학의 방법이지만, 주장만 있고 비판이 없다면 엉뚱한 진리에 도달하고 말아요. 그래서 상대방의 주장과 근거를 따져보고 비판을 통해 더 나은 진리를 찾아야 해요. 이 생각법은 철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진리탐구의 방법이고 밀레토스 학파가 처음으로 그 방법을 보여줬어요.  

4. 밀레토스 학파 :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모두 지금의 터키 해변인 밀레토스 지역에서 활동해서 밀레토스 학파라고 불러요. 탈레스가 최초의 철학자로 불리듯 밀레토스 학파는 서로의 주장과 근거를 비판하며 토론해가는 진리 탐구의 방법을 잘 보여줬어요.


[엄마 아빠를 위한 팁]


동하의 주근깨 카드처럼 주장과 근거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게 철학입니다. 하지만 사실 일상생활에서 생각하는 과정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즉 철학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우리가 평상시에 하는 합리적인 사고의 과정이 바로 철학을 하는 것이지요. 철학 공부란 올바른 생각의 길을 배우는 과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올바른 생각의 길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우기기만 하고 작은 비판에도 참지 못하고 화를 냅니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발전시켜보지 못한 사람, 철학 공부를 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런 과정이 익숙하지 않고 모욕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주장과 근거 그리고 비판, 다시 그에 따른 의견 절충은 간단해 보이지만 논리학과 논술에 있어 핵심적인 모든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져 보고 잘못된 점을 찾아보라고 하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아빠는 모든 사람이 집에서 새를 키우도록 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 이유는 새는 아름답고 귀엽고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말이야. 네 생각은 어때? 아빠 생각이 잘못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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