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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Nov 02. 2024

[플라톤] 국가론

덫에 걸리다


유진은 블록 모양으로 변해가는 다리를 몇 번이나 만져본다. 확실히 매끈한 플라스틱이다. 온몸이 떨려온다. 게임 세상에 온 지 너무 오래되었음을 깨닫는다. ‘이대로 있다간 온몸이 블록처럼 변하겠어! 최대한 아이템을 수집해서 레벨업을 해야 돼. 일단 저 칼집 아이템 줍고 생각하자.'


유진은 그대로 벽돌 길을 벗어나 시냇물로 들어갔다. 수면 아래에 영롱하게 빛나는 칼집을 집어든 순간, 몸이 둥실 하늘로 떠오른다. 세상이 거꾸로 보이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칼집을 미끼로 덫을 설치해 둔 것이었다. 유진은 그물에 갇혀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리고 말았다.



얼마 후, '저벅저벅' 절도 있는 발소리가 들린다. 대롱대롱 매달린 채 눈을 떠보니 마을에서 봤던 경비병 군단이었다. 유진은 탈레스의 물 항아리나 비판의 검을 뽑아보려 버둥거렸지만 설상가상으로 카드를 잘못 만지는 바람에 아이템이 모두 냇가로 와르르 쏟아져버렸다. 그때 검은 그림자가 유진의 얼굴에 드리웠다. 번쩍이는 붉은 눈으로 얼굴에 포개듯 살핀다. 경비병이 꽥꽥대는 오리 목소리로 대화한다.  


“이것 좀 봐. 탈레스의 물 항아리로 도망친 녀석이 맞았어.”


“바닥 좀 봐. 진귀한 고급 아이템이 잔뜩 있어. 저 녀석은 놔두고 아이템을 나눠 갖자고!"


유진은 길에서 벗어나지 말란 여신님의 충고를 잊은 걸 후회했다. 이대로라면 힘들게 모은 아이템도 모조리 빼앗길 참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아이템을 훔친 걸 지도자님이 과연 모르실까요?”


“응? 우리 계획을 아는 건 네가 유일하니, 좀비들 먹이로 던져놓으면 그만이지, 안 그래?"


'그렇지.'라고 경비병들이 소리쳤다.


지도자는 똑똑한 분이겠죠? 여러분 옷을 보세요. 그분은 물에 흠뻑 젖은 옷을 보고는 분명 시냇가 덫에 누군가가 걸렸을 거라 생각할 거예요."


"그야... 옷을 말리고 들어가면 돼."


'맞아. 맞아.' 경비병들이 오리처럼 꽥꽥댔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옷을 빨거나 말려도 마찬가지죠. 평소와 다르게 깨끗한 모습 역시 의심받을 거예요. 게다가 그 아이템은 시험을 통과한 사람만 쓸 수 있어서 여러분에겐 아무런 소용도 없다고요.”


“으음……. 하긴, 우리가 지저분하긴 하지. 게다가 지도자님이 뭔가 캐물으시면 꼭 들킨단 말이야. 지도자님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분이니까."


"맞아. 제일 똑똑한 분이지."


주변에서 웅성거리며 경비병들이 맞장구쳤다.


"하지만 아이템이 소용없다는 건 믿을 수 없군.”


유진 앞에서 노려보던 병사 하나가 탈레스의 항아리에 시냇물을 담아 머리에 뒤집어썼다. 하지만 물만 쏟아질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경비병들은 실망한 채 한참을 꽥꽥거렸다. 결국 유진을 밧줄로 꽁꽁 묶어 지도자에게 데리고 가는 걸로 결론이 났다.


이상한 나라의 지도자


털썩! 경비병들이 밧줄에 묶인 유진을 바닥에 던졌다.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났다 사라진다. 콜록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본다. '어?' 확실히 낯익은 오두막이었다. 병사 하나가 몸에 묶인 덩굴을 풀어준다. 유진이 물었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요. 저를 왜 잡아온 거예요?”


병사가 대답했다.


“그야 지도자님 명령 때문이지. 생각하는 자를 모조리 잡아오라고 하셨거든. 미끼로 사용한 칼집 아이템을 탐냈다는 건 비판의 검이 있다는 이야기이고, 그건 생각할 줄 안다는 뜻이지. 그러니 너를 잡아온 것이다.”


오싹한 이야기였지만 한편으론 이 괴팍한 지도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때마침 문이 열린다. 경비병들은 한 줄로 서서 경례를 했다. 지도자가 앞으로 걸어온다. 모래먼지 때문인지 스카프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저 사람이 지도자구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 이게 누구야!”


어깨가 넓은 사람이 다가와 유진을 일으켜준다. 그 사람은 플라톤이었다.


"플, 플라톤 선생님?"


“핫하하. 이거 참 미안하게 됐구나. 불편한 점은 없었니? 아니, 밧줄로 묶여왔으니 불편했겠구나. 조심히 모셔오라 해도 경비병들이 말을 잘 안 듣거든."


플라톤의 말에 경비병들은 잘못을 알기나 하는지 뒷머리를 하릴없이 긁적였다.


"칼집을 미끼로 삼아서 사람을 잡아들이다니 너무하셨어요."


"이건 비판의 검을 넣는 사고의 칼집,일명  만약에 칼집이라고도 하지. 이걸 미끼로 사용한 이유는 비판의 검을 넣고 다니면 검의 능력치가 최대로 상승하기 때문이지. 생각하는 사람을 유혹하는 미끼로 딱이랄까?”

 

플라톤은 칼집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듯 천천히 훑어보더니 유진의 검을 칼집에 넣는다. 그러자 검 전체가 다이아몬드처럼 환하게 빛났다. 확실히 엄청난 아이템 조합이었다.



"그런데 생각하는 사람을 찾으려는 이유가 뭐죠?"


"후계자를 찾기 위함이지."


"후계자? 이 나라를 선생님 대신 다스릴 사람이요?"


"여기는 내가 사고 실험을 통해 만든 이상적인 국가란다."


"사고 실험?"


"만약 ~라면, 이란 상상으로 깨달음을 얻어내는 방법이란다. 예를 들어, 가장 이상적인 국가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야 역사책을 보면서 이상적인 국가를 찾거나 모든 나라의 국민이 행복한지를 인터뷰해 보면 되겠죠?"


"그런데 역사책을 본다 해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거다. 기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지. 게다가 인터뷰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서 대화해야 하니 불가능하지. 그럴 때에 '만약 이상적인 국가가 있다면?'이라고 상상해 보면서 그 조건을 하나씩 그려보는 게 사고 실험이란다."


"그러니까 논리적인 상상이군요? 복잡한 실험 장비가 없어도 되니 편리하겠어요. 논리 구조도 단순하게 드러나니 이해도 쉽고요."


"맞아. 사고 실험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부터 네가 사는 현대 세계의 과학자들까지 애용하는 방법이지. 어때, 나랑 사고 실험을 해보지 않겠니? 만약 나와 대등하게 대화한다면 이 사고의 칼집을 주마. 레벨 업을 금방해서 집에 갈 수 있지."


"만약 불합격하면요? 저는 플라톤님의 후계자가 되는 건가요?" 


플라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이상한 게임 나라의 후계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하나를 구하고 집에 돌아갈 방법은 이것뿐이란 생각에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 : 좋아요. 어차피 플라톤 선생님을 찾아가던 길이었으니까요.

플라톤 : 나를? 욕심이 많구나. 짧은 시간에 네가 얻은 엄청난 아이템들. 예를 들어 물항아리, 비판의 검, 변화의 불, 생각의 지도 아이템 정도로는 부족했단 거냐?

유진 : 하나가 미토스 정령들에게 잡혀가고, 길을 잃었거든요. 그때 생각의 지도로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와 파르메니데스의 불변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한 게 플라톤 선생님이란 걸 깨달았어요. 현실 세계는 변화하지만, 이데아는 불변한다... 이런 식으로 모순을 극복하고 종합하셨죠. 선생님이라면 하나를 구출하고 빨리 레벨업을 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시리라 생각했죠.

플라톤 : 허허. 이렇게 성장하다니 과연 내 후계자감이다.

유진 : 그런데 선생님은 철학자인데, 왜 정치인처럼 나라를 통치한단 거예요?

플라톤 : 사람들은 똑똑하다고 착각하지만 자신이 동굴에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지. 지도자는 많은 사람을 이끄는 자이니, 무릇 가장 현명한 자여야 한다. 이성의 눈으로 진리를 깨닫고, 이데아의 태양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게 당연하지. 이 말을 줄여서 철인왕(철학자 왕)또는 철인정치라고 한단다. 좋은 나라는 그런 철인왕이 다스리는 나라다.  

유진 : 지도자가 지혜롭고 지식이 많아야 하는 건 맞아요. 하지만 첫째, 누가 가장 현명한 지 일치된 의견을 모으긴 어려워요. 모두 자신의 기준에서 똑똑하다고 주장을 하며 지도자가 되려 할테니까요.

플라톤 : 내가 쓴 <국가>에서 계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이유지. 먼저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교육을 시켜서 그중 건강하고 똑똑한 사람을 공정한 시험을 통해 선발한단다. 그 뒤에도 교육과 평가의 엄격한 과정을 거쳐 수호자 계급을 만들게 되지. 만약 수호자가 될만큼 지혜롭진 않지만, 용기를 가진 사람은 군인 계급을 시키면 되고, 나머지는 절제하는 시민이 되어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하면 되겠지?

유진 : 하지만 수호자도 사람이니까 권력을 이용해 재산을 모으려는 유혹에 빠질 거예요. 또 나랑 친한 사람, 가족들이나 연인에겐 더 좋은 혜택을 주고 싶을 거고요.

플라톤 :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지도자로 선발되면 사유재산 금지에 가족도 가질 수 없도록 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유진 : 와... 사고 실험이라 해도 매정해 보이네요. 좋아요. 셋째, 아무리 적성에 맞게 계급을 나눴다고 해도 불만이 생길 거예요. 저도 게임할 때 사냥꾼으로 시작했지만 마법사로 캐릭터를 바꾸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플라톤 : 그럴 땐 <국가>란 책에 쓴 것처럼 금속의 신화를 퍼뜨릴 생각이다. 예를 들어 수호자 계급은 황금으로 만들어진 종족이고, 군인은 은, 일반 시민 계급은 동이 나 철로 만들어진 종족이라고 하는 거야. 사람들은 처음엔 믿지 않겠지만 반복해 말하다 보면 나중엔 믿게 되고 계급은 유지가 되겠지.

유진 :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거짓말로 사람을 속이는 건 나쁘다고 생각해요. 거짓말로 만든 신화는 나쁜 지도자가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플라톤 : 좋다. 그렇다면 네 생각엔 어떻게 해야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유진 : 똑똑한 몇 명의 결정보다는 국민이 합의한 법에 따라 결정하고 다 같이 책임지는 민주주의가 좋다고 생각해요.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직업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하죠.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지도자는 투표로 선발하고, 그런 지도자가 큰 잘못이 있다면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플라톤은 '끙'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생각에 잠겼다. 유진은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플라톤은 엄숙한 얼굴 대신 갑자기 활짝 웃으며 칼집을 유진에게 건넸다.



플라톤의 가르침
: 사고 실험으로 논리를 만들자

학습 키워드
: 국가론 / 계급 / 금속의 신화

앞에서 배운 플라톤의 핵심 사상인 이데아 론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등의 모순을 극복하고 장점을 종합해 나온 결과라고 볼 수 있죠. 다시 말해 이데아 론은 헤라클레이토스가 주장한 ‘현실의 세계는 끝없이 변화한다’는 생각과 파르메니데스가 주장한 ‘불변하는 세계’를 조화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변화하는 현실 세계가 있지만 그 너머에는 불변하는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는 이론은 기존 생각의 단점과 모순은 버리고 장점을 취하면서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학문의 과정을 잘 보여줍니다.

또 하나,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배울 수 있는 생각법이 있습니다. 바로 사고실험입니다. '만약 ~라면'이라고 상상해 보란 것입니다. '만약 이상적인 국가가 있다면?'이라고 상상하면, 누가 지도자가 되어야 하는지, 국민들의 직업은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지, 교육제도는 어떤 게 좋은 지 등에 대한 기준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일단 기준이 만들어지면, 그것에 대해 비판하고 다듬어서 현실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고 실험은 과학과 윤리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만약 자유낙하하는 상자 안의 사람과 무중력의 우주에 있는 상자 안의 사람이 있다면?'이란 사고 실험으로 아인슈타인은 중력과 가속이 같은 효과를 지닌다는 등가원리, 더 나아가 상대성 이론을 밝혀냅니다.


임마누엘 칸트는 '만약 모두가 이렇게 행동 한다면?'이란 보편화 시험을 거친 뒤 행동해야 윤리적이라고 말합니다. '만약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면?'이라고 상상해 본 사회는 불신으로 가득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칸트는 윤리는 도덕적 상상력임을 강조합니다.


결국 주장을 하고 논리로 근거를 만들고 결론을 내세우는 논술의 과정은 사고실험, 즉 상상력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있는〈국가〉를 보면 이데아 론과 함께 이상적인 국가는 무엇인지에 대한 사고 실험이 등장합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1) 민주주의가 위대한 철학자인 소크라테스를 사형시킬 만큼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깨달은 철인왕(철학자 왕)이 지혜롭게 통치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어떤 모습일지 사고(생각) 실험을 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그의 말대로 정치 지식과 이성의 눈을 가진 철학자가 왕이 되는 세상, 즉 철인이 통치하는 나라는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후에 독재, 혹은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를 앞세우는 전체주의와 비슷하게 여겨져 비판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국가>는 이상적인 나라를 위한 조건을 제시해 사람들로 하여금 깊은 생각과 토론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1) 민주주의 :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갖고, 그 권리를 자유롭고 평등하게 행사하는 정치제도를 뜻합니다. 인간의 존엄, 자유, 평등을 기본 정신으로 하며, 대화와 토론을 거쳐 양보와 타협, 관용과 비판적 태도로 결정한 일을 실천하는 정치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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