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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Nov 17. 2024

[아리스토텔레스] 귀납과 연역

유진은 플라톤이 건넨 칼집을 얼떨결에 받아 들었다.


"선생님, 이 칼집은?"


"나와 대등하게 토론을 했으니 약속대로 주는 선물이다. 비판의검과 조합하면 능력이 상승하는 '만약에 칼집'은 이제부터 네 것이다!”


플라톤은 비판의 검을 끼워보라는 듯 눈짓했다. 유진은 칼집에 검을 끼웠다.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한 무지갯 빛이 새어 나와 온몸을 휘감는다. 머리 위로 레벨을 표시하는 숫자가 순식간에 올라간다.


레벨 6 ... 레벨 7... 레벨 8!



"8단계! 집에 갈 수 있는 8단계가 됐다!"


세 단계나 뛴 레벨 업에 놀란 유진은 이제 집으로 갈 수 있는지 확인하듯 물었다. 플라톤은 “물론”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어쩐지 유진은 망설이고 있었다.


"선생님, 하나는 미토스의 숲에 갇혀 있어요. 제가 집에 가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죠?"


"숲의 정령들은 하나를 키워낸 존재들이야. 별 일은 없을게다. 어서 서두르거라. 온몸이 플라스틱으로 변하기 전에 말이야."

"가고... 싶었어... 진짜 세계를... 함께 학교도 다니고.. 친구를 사귀고.. 너와..."


유진은 마지막으로 건넨 하나의 말을 떠올린다.


"하나는 현실 세계로 가길 원해요. 함께 집으로 가는 방법은 없을까요?”


플라톤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전에 말했었지? 레벨 10, 전설의 영웅 단계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하나도 말했어요. 미토스와 로고스를 잇고 이곳과 진짜 세계를 이어준다는 전설이 있다고... 그게 레벨 10의 영웅...?"


"후후. 하지만 아무도 성공한 적이 없다고도 했지."


유진은 망설였다. 자칫하다간 플라스틱 블록 인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의 간절한 소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선생님! 하나를 데리고 가고 싶어요! 하나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조차 없었을 거예요. 제 몸이 플라스틱으로 다 변하기 전까진 시간이 있으니까 꼭 구해서 갈래요!"


"후후. 고집불통의 어린 철학자로구나. 어차피 이곳에 살게 된다면 후계자로 삼으면 되니 내게도 좋은 일이긴 하군. 좋다. 힌트를 주지. 방법은 똑같다. 학문 발전의 원리에 따라 내 주장을 비판하고 나와 겨룰 만큼 위대한 선생님을 찾으면 된다. 알겠지?


플라톤은 호탕하게 웃으며 그대로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유진은 생각의 지도를  바닥에 펼치고 생각에 잠겼다. ‘플라톤과 겨룰 만한 위대한 선생님’이라는 단서를 생각했다. 플라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화와 파르메니데스의 불변을 종합해서 “현실은 변화하지만 이데아는 불변한다”라고 주장했다.


“변증법에선 합이 다시 정으로 되고, 이런 흐름이 순환하며 발전한다고 했지? 플라톤의 합을 이번에는 정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비판한 ‘반’에 해당하는 주장을 찾아야 해. 이데아는 인정하지만, 경험할 수 있는 현상 세계도  중요하다는 철학자를 찾으면 되겠구나!”



생각의 지도에 손바닥을 펼치고 집중하자 길이 뻗어 나오면서 리케이온이라는 학교가 떠올랐다. 철학자 이름은 물음표로 가려져 있었다.

 

‘여긴가 보다. 리케이온.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만큼 멋진 이름의 학교네.’


 

유진은 탈레스의 물을 타고 리케이온으로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번에도 엉덩방아를 찧으며 도착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학교라기보다 아름다운 정원 같았다. 올리브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사람들은 산책을 하며 평화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뒤따르고 있는 무리가 눈에 띄었다. 유진은 슬그머니 무리에 합류해 누구를 따라 걷는 것인지 물었다.


“저분은 플라톤의 제자이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신 아리스토텔레스라네.”


'역시 플라톤 선생님의 제자였구나!'


유진은 ‘아리스토텔레스’란 이름을 기억하며 귀를 쫑긋하고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이데아는 상상 속에 있어서 만지거나 냄새를 맡거나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진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곳 사람에게 이데아는 내가 살던 진짜 세상이지만, 직접 본 사람은 없지. 서로가 자신이 생각한 이데아가 맞다고 주장한다면 누가 맞고 틀렸는지 알 수 없을 듯 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은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라고 했다. 내 지식이 맞는지 실험하고 증명해 볼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지식과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 만들어질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땅을 가리키며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플라톤 스승님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더 사랑합니다.”


순간 유진은 그 모습이 익숙하다고 느꼈다. 예전에 학원에 걸려 있던 그림이었다. 하늘에 있는 이데아를 가리키는 철학자가 플라톤, 땅을 가리키며 우리 세계를 강조한 철학자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유진은 크게 숨을 들이쉰 뒤 용기 있게 손을 번쩍 들었다.


유진 : 질문이 있습니다. 현실 세계를 탐구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은 잘 알겠어요. 그런데 이데아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 진리에 가까운 지식을 얻는 게 가능한가요?  

아리스토텔레스 : 호오 젊은 철학자답게 좋은 질문이구나. 지식을 만드는 특수한 방법을 이용하면 된단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지.

유진 : 지식을 만드는 두 가지 방법이요?

아리스토텔레스 : 그 두 가지는 관찰한 사실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귀납법과 기존에 알던 지식에서 또 다른 지식을 확인하는 연역법이란다.

유진 : 귀납... 연역, 말부터 뭔가 되게 어려워 보여요.

아리스토텔레스 : 그럼 플라톤 선생님처럼 예를 들어볼까? '소크라테스는 죽을까?'

유진 :  모든 사람은 죽어요. 소크라테스 님은 사람이죠. 따라서 소크라테 선생님도 돌아가시겠죠.

아리스토텔레스 : 바로 그거야! 방금 네가 추리한 방법을 삼단 논법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연역법이지. 연역법은 전제가 참이면 언제나 참인 결론이 나오는 생각법이다. 그럼 또 다른 질문을 해보자. 전제였던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어떻게 알게 됐니?

유진 : 그야 경험으로 알게 된 거죠. A라는 사람도 죽었고, B도 죽었고, C... D도... 이렇게 모든 사람은 죽었으니, 사람은 죽는다는 판단을 얻게 된 거죠.

아리스토텔레스 : 그게 귀납법이다. 즉 관찰을 통해 알게 된 여러 개의 사실로 '모든 사람은 죽는다.'란 새로운 지식을 만들게 된 거지.

유진 : 귀납법은 A, B, C... 가 죽는다는 개별적 사실에서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보편적인 지식을 만드는 것이군요. 연역법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보편적 지식에서 '소크라테스도 죽는다.'라는 개별적 사실을 알아내는 방법이고요.

아리스토텔레스 : 보통은 그 정도 이해면 충분하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연역은 전제가 옳으면 결론이 항상 옳다는 것. 귀납은 예외가 하나만 발견돼도 그 지식이 거짓이 된다는 점이다.

유진 : 하긴, 영생하는 사람이 한 명만 발견돼도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귀납적 지식은 틀린 게 되겠군요. 어쩐지 확률 문제같기도 한대요?

아리스토텔레스 : 맞아. 그래서 귀납법은 확률이나 가능성과 관계가 있단다.

유진 : 관찰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귀납법, 귀납적 지식을 이용해서 다른 개별적인 지식을 확인할 수 있는 연역법이라...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지식을 만들고, 예측할 수 있다니 정말 신기하네요.

아리스토텔레스 : 맞아. 이들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 물레방아처럼 순환하면서 지식을 만든단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품에서 반짝이는 깔때기를 꺼냈다.


“귀여운 깔때기다!”


유진의 말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건 귀납법과 연역법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귀연 깔때기’란 아이템이다. 물론 귀여워서 붙인 이름이기도 하지. 이 깔때기를 머리에 뒤집어쓰면 지식을 만들고 넓힐 수 있단다. 어쩐지 네게 꼭 필요할 것 같구나.”


깔때기를 받아든 유진은 급한 마음에 바로 머리에 뒤집어 썼다.



철학은 소크라테스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에서 출발하여 진리를 찾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진리를 주장할 때는 근거를 명확히 대야 하고, 그 주장은 비판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며 진리에 가까워진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플라톤은 진리를 찾을 때는 감각에 의지하기보다는 이성을 통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진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에 있지 않고 이성의 힘으로만 알 수 있는 이데아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주장은 이상합니다. 어떤 사람이 플라톤의 동굴 밖에서 진리이데아를 보고 왔다고 주장해도 근거를 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철학자 몇 사람만 진리를 알아보고 평범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알아볼 수 없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플라톤의 말대로라면 우리가 사는 곳은 동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을 이용해 진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우리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세계, 즉 동굴을 탐구해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굴의 구조, 목적, 그림자 세상의 원인을 투명하게 이해한다면, 동굴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게임 세상이 코딩 언어로 이뤄졌음을 밝힌다면, 그 너머의 진짜 세계가 드러나는 원리입니다. 당연히 감각으로 가득한 동굴은 무시할 세계가 아니라 탐구대상이 됩니다.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경험주의 과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된 논리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계를 탐구하여 지식을 만들어내는 도구로서 귀납과 연역을 고안해 냅니다. 귀납은 관찰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알아내는 데 사용됩니다. 연역은 그 지식을 이용해 결과를 예측하고 지식을 확장하게 해 줍니다.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 결과를 예측하게 만드는 귀납과 연역은 과학이 지식을 생산하는 핵심 방법이 됩니다. 아래 그림처럼 과학은 귀납과 연역의 원리로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며 지식을 만듭니다.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년~기원전 322년)는 그리스 북부 지역인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활동한 플라톤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400여 권의 책을 썼으며, 지금 존재하는 많은 1) 학문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는 경험 불가능한 이데아보다 관찰이 가능한 세계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경험과 관찰에서 앎을 이끌어내고 주장의 근거가 옳고 그른지를 2) 추론하려면 귀납과 연역이 필요합니다. 3) 귀납과 연역의 정의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아래 정의를 사용합니다. 



그가 세운 학교의 전통은 스승인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와도 달랐습니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가 완벽한 이데아를 닮은 수학을 중시했다면, 4) 리케이온은 자연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과학에 집중했습니다.

1 학문 : 지식을 모아놓은 체계. 공부를 하는 것은 곧 학문을 배운다는 뜻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을 기상학, 수사학, 시학, 논리학, 물리학, 정치학, 경제학, 심리학, 윤리학 등으로 세세하게 구분하여 연구했습니다. 이 이름들은 지금까지도 해당 학문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2 추론 : 미루어 생각한다는 뜻으로, 이미 아는 정보나 앎을 근거로 새로운 판단을 이끌어내는 것을 뜻합니다.

 3. 귀납과 연역의 정의 : 표준국어대사전의 일반적 정의와 논리학계의 정의가 다릅니다. 중고등학교에서는 사전에 나온 일반적 정의를 중심으로 배웁니다. 그 이유는 관찰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알아내고(귀납), 그 지식을 이론으로 세워(연역), 지식의 경계를 넓히는 학문적 과정을 잘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과학적 연구방법론에서도 귀납과 연역의 일반적 정의를 이용해 지식이 만들어지는 순환적 과정을 설명합니다.   

4 리케이온 : 이곳은 원래 학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장소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에서 자연을 산책하며 제자들을 가르치곤 했습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르는 학자들을 슬슬 돌아다닌다는 뜻의 ‘소요’를 써서 소요학파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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