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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파카브라와 이상한 이야기

10화

by 뮤즈노트

다음날 독영은 옥상 휴게실에서 기사가 잘려버린 기자를 만났다. 기자는 정장차림이었지만 봄에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양복을 입고 있었다. 키는 독영보다 약간 작았고 피부는 신경질적으로 창백했다. 신입들은 잠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독영은 운행 메커니즘을 설명하며, 첫 스트레이트인데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했다. 경력 기자답게 그는 쿨하게 사과를 받았다.


"취재 내용이 중요한 뉴스였을텐데,.."


독영의 말에 기자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가축 폐사 관련 뉴스였어요. 선배님도 아시다시피 사회부 취재는 경찰서를 통해 정보를 얻어요. 그런데 어제 기사는 취재원에게 전화를 받은 거였어요. 제보 농장주는 가축들이 죽어나가는 데 왜 담당 공무원들은 실태 조사 안 하냐? 한마디로 공무원의 나태함을 고발하는 내용에 가까웠죠. 그런데 확인 차 몇 군데 농장에 연락해 보니 인근 축사도 비슷한 피해가 있다는 걸 확인했죠. 그래서 데스크에는 가축 전염병 방역 실태, 이런 식으로 일단 보고를 올리고 본격 취재에 나섰습니다.”


뭔가 알아낸 게 있냐고 묻자, 기자는 손에 든 커피를 만지작 거리며 말을 이었다.


“글쎄요... 막상 취재를 나가니까 제보한 농장주 말고는 인터뷰나 피해사실을 부인하더군요. 하지만 그런 점은 설명이 돼요. 전염병이 돈다는 말이 새면 역학 조사다 뭐 다해서 귀찮은 일들이 줄줄이 일어나니까요. 살처분 명령이라도 내려지는 날엔, 보상을 받는다 해도 영세한 농장 구조 상 재기가 쉽지 않아요."

"뭔가가 있었군요?"

"다른 부서 선배님께 말씀드리긴 그렇지만..."


기자는 담배를 꺼냈다.


"폐사한 가축이 문제였습니다. 제보 농가에 들렀을 때, 마침 폐사한 송아지를 몰래 매몰하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그 모습이... 끔찍하고 이상했어요.”


기자는 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피가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피가?"

"네. 피를 빼낸 곳으로 생각되는 두 개의 작게 패인 구멍 역시 깨끗했고요. 농장주는 주변에서 못된 장난을 친 것 같다고 하는데... 다혈질이라 이웃과 사이도 틀어져 있으니 그런 피해 의식을 갖는 게 이해도 됐죠.”

“다른 농장도 피해를 입었다면서요?”


독영이 물었다.


“네, 저도 주변 소행이란 의심은 공연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 해코지를 하려 했다 쳐도, 피를 오랜 시간 공들여 뽑아내는 건 불가능해 보였죠. 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질병이나 야생 동물 밖에 없죠. 그렇게 취재를 마무리하고 데스크에 전화했더니 ‘가축 전염병’ 기사는 꺼리더군요. 확실하지 않은 내용이면 여러모로 파장이 크다고요. 시간 조절을 위한 스톡으로 밀렸고, 내용도 관리 허점 같은 걸로 얼버무렸죠. 물론 결국엔 방송도 나가지 못했지만...”


기자가 시계를 보더니, 담배를 눌러 껐다.


"추파카브라?"


독영은 스스로 혼잣말하 듯 내뱉곤 내심 놀랐다. 하지만 더 놀라운 반응은 기자에게서였다.

그는 마치 속마음을 들킨 듯 반가워까지 했다.


"아! 그거. 네. 저도 추파카브라를 잠깐 떠올렸어요.”


기자의 눈빛이 다소 떨렸다. 웃는 얼굴이지만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진짜 그랬어요. 사체가 해외 음모론 다큐에서 본 것과 닮았었거든요.”


그는 다시 웃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독영이 말했다.


“남아메리카에 산다는 흡혈동물, 가축의 피를 남김없이 빨아먹는다는... 저라도 충격적인 광경을 봤다면 뭐라도 떠올렸을 거예요.”

"그냥 농담으로 생각해 주세요. 뉴스에 안 나간 건... 어차피 갈팡질팡하다가 엉망인 기사가 돼버렸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사과까지 하실 필요도 없었는데, 시시콜콜한 취재 이야기까지 해버렸네요."


독영 역시 대화를 마무리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때 기자가 몸을 숙이며 말했다.


"그런데 한 가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독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기자는 어제 입고한 자신의 기사 영상을 구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취재 영상은 편집실 서버에 남아 있을 텐데 굳이 부탁하는 이유를 묻자 기자가 답했다.


"그게... 편집실에서 아카이브로 넘어가는 도중에 삭제돼서 찾지를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방송이 안 됐더라도 제 기사는 포트폴리오로 쓸 겸, 보관하자는 주의라서요. 어딘 가에라도 혹시 기사가 남아있으면 좀..."


독영은 기자가 호감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찾아보겠노라고 답했다. 사무실로 돌아가기 전, 주조정실에 들렀다. 어제 시끄러웠던 사건 직후, 운행 담당자인 독영이 나타나자 긴장감이 흘렀다. 따지고 보면 업무 분장상 주조정실 엔지니어의 잘못이 명백했다. 그러니 징계 심의를 위한 사고 보고서를 요구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독영은 낯익은 VTR(영상) 근무자에게 짧게 인사하고 '어제 잘린 기사'에 대해 물었다. 처음엔 일을 키우려나 싶어 눈치 보던 엔지니어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화색이 돌았다. 당장 찾아드리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 어... 이상하다. 분명 시스템에 남아 있을 텐데... 다른 건 다 그대 론데 그 기사만 없는데요? 뭔 일이지?"


VTR 근무자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그때 상급자인 기술 감독이 송출 화면을 주시한 채 말했다.


"요즘 서버랑 회선 늘린다고 온통 뒤집어 놨잖아."


독영은 기자의 영상을 찾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뒤돌아 나오려는 데 기술 감독이 말을 이었다.


"디지털이 늘 좋은 줄 알지? 하지만 아날로그처럼 손에 딱 들어오는 맛은 흉내 낼 수 없지."

"...?"

"스톡용 파일 있는 곳 찾아봐. 어제 느낌이 싸~해서 라이브로 나가는 뉴스 영상은 따로 복사해 놨거든."


영상 근무자는 파일을 찾아냈다. 독영은 엔지니어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제야 기술 감독은 화면에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창문도 없는 곳에서 하루 종일 화면만 보다 보니 엔지니어들이 예민하고 편협해져. 그래도 사고 있을 때마다 우리가 올리는 보고서 좋게 고쳐줘서 징계 없이 넘어가도록 해준 거 다 알아.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독영은 꾸벅 인사하고 파일이 담긴 외장하드를 들고 사무실로 올라와서 FD에게 용량을 줄여 USB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어느덧 퇴근 시간 무렵이 되었다. 지나가 말한 대로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졌다. 그리고 지나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잊지 않으셨죠? 차는 레스토랑 100미터 거리 공영 주차장."

"어쩐지 오시는 분에게 미안하네요. 비가 이렇게 오는데 테스트 상대로 이용하는 것 같아서..."

"맛있는 거 많이 사주시고 즐거운 시간 보내면 되죠."

"어차피 사귀는 건 곤란하지 않나요? 제가 그분과 운 좋게 사귀게 되면 지나 씨는 헛수고 한 셈이 되니까."

"혼자서도 엄청 진도가 빠르시네요. 문자로 애프터 한번 받으시더니 아주 자신감이 충만해졌어요! 좋아요! 괜찮다 싶으면 사귀셔도 돼요. 대신 비 지정 연애로 계약하시고 관리받으면 되죠. 하지만..."

"잠깐만요."


독영은 FD에게 변환이 끝난 파일을 USB로 넘겨받았다. 영상을 첨부해서 기자 인트라넷 메일로 보내줬고, USB는 윗주머니에 넣은 뒤 말을 이었다.


"미안해요. 급하게 뭣 좀 보내느라... 하지만... 다음에 뭐라고 하셨죠?"


지나의 목소리가 전화로 울렸다.


"하지만..."


빗소리를 뚫고 선명한 말이 꽂혔다.


"독영씨가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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