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의미로 '잊을 수 없는 생일'이 되었다.
얼마 전은 내 생일이었다. 가족과 점심을 함께 먹고 남자친구와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 자취방에서 쉬고 있을 때였다. 가족이 집에 잘 도착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혹시 약속 갔니?"라고 묻는 엄마의 목소리에는 지침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네 아빠하고 오빠하고 한바탕 했잖아. 미치겠어~"라며 엄마는 무슨 상황인지 한참 설명했다.
몇 분을 털어놨을까 엄마는 아차 싶었는지 "약속 가야 하지? 아이고, 엄마가 너무 오래 붙잡았다."라고 날 보내려고 했다. 이때 그냥 끊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겐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아빠 눈치 보랴, 오빠 눈치 보랴 중간에서 등 터지는 엄마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래서 계속 통화해도 된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그냥 엄마가 말할 곳이 없어서 전화했어"라며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데이트 잘하고 일찍 일찍 들어가고 너무 붙어지내지 말고 그러다가 사고 치는 거야."라는 거다.
오빠와 아빠가 싸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뜬금없는 남자친구 잔소리에 임신 걱정이라니. "엄마 또 그런다~"라며 넘어가려는데, 엄마는 갑자기 목소리를 깔더니 "너 엄마가 남자친구랑 자주 만나고 붙어지내는 거 대충 예상하고 있었어. 그래서 요즘 본가에 안 온 거지?"라고 말하는 거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사실이지만, 무엇이 사실인지는 엄마한테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내 목소리는 높아졌고 결국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 마음 좀 편하게 해 주면 안 되냐"라고 빌기도 했다. "대체 내가 어디까지 엄마를 안심시켜줘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라고 화도 냈다. "언제 언제 보는지 그리고 몇 시에 집에 갔는지 보고를 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거냐"라고 악도 질렀다. 그러자 엄마는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걱정도 하지 말라고 하는 네가 너무하다, 대체 너한테 엄마는 뭐냐"며 같이 울기 시작했다. 내 눈치 보느라 여태까지 그리고 지금도 참고 있는 이야기가 많다는 거다. "엄마가 딸 눈치를 이렇게 보는 게 말이 되냐"라고 화를 내기도 했다. 남자친구가 생긴 후로 엄마의 불어나는 걱정에 일부러 더 세게 뚝뚝 말을 끊어냈던 게 엄마한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고 했다.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날 본가를 가기로 해서 그냥 "내일 이야기하자."하고 끊은 것 같다. 퉁퉁 부은 눈으로 남자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엄마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또 울었다. 엄마한테 상처 준 건 준 것대로 미안하면서도 여전히 야속했다. 남자친구는 "지나가는 과정일 테니 너무 아파하지 말라"라고 달래줬다. 이렇게 지낸 지 반년이 지나가는데, 새해에는 조금 다를까?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