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룰이 생겼다.
전편에서 언급한 내 생일날은 지난여름 이후 두 번째 전쟁이었다. 생일 다음날 아침, 바로 택시를 타고 본가로 향했다. 큰 전쟁을 두 번이나 치러서 익숙해진 걸까. 엄마도 나도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아침을 간단히 먹고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가자며 각자 먹고 싶은 걸 말하고 있었다.
엄마 "오랜만에 중식이 당기네."
나 "어? 나도. 안 그래도 어제부터 짜장면이 생각나더라고. 아니면 순대국밥도 좋아."
엄마 "찌찌뽕. 엄마도 어제 순대국밥 생각났는데."
나 "그럼 그거 먹으러 갈까?"
아빠 "아니, 그건 어제 그래서 먹었어. 아빤 중식에 한 표!"
(참고로 오빠는 원래 아무 생각이 없다.)
그렇게 중식을 먹으러 갔다. 몇 년 만에 간 집 앞 중식 맛집이었다. 엄마는 "이렇게 넷이 이 집 온 게 몇 년 전이야. 한 3년 됐나?"라며 "다시 오니 좋네."라며 운을 띄웠다. "아빠랑도 이야기해 봤는데 엄마아빠가 내린 결론이 있어."라는 거다. "본가에 오는 게 싫은 게 아니고 단지 자는 게 불편해서 안 왔던 거라면, 이렇게 매주 한 끼 이상은 같이 먹으면 어떨까?"
지난 독립 편에서도 한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심리적 독립을 위해서 일부러 가지 않은 적도 있고, 가기 귀찮은 날도 있었고, 무엇보다 본가에서 자는 게 불편했기 때문도 있었다. 잠자리를 많이 가리는 예민한 기질 탓에 자취방이 아닌 곳에서는 편히 잠들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들어 본가에 최근 가지 않곤 했는데, 엄마와 아빠는 내 말을 믿으면서도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다고 했다.
"부모가 가까이 사는데 그냥 귀찮다고 보러 오지 않는 건 부모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도저히 납득이 안돼."라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도 네가 잠을 잘 못 자는 건 원치 않아. 그러니 이렇게 맛집 놀러 온다 생각하고 주말에 약속 없으면 와서 이렇게 밥 먹고 놀자."라고 말하는 거다. 처음에는 부모님도 나도, 집에 오면 무조건 자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주말 중 하루는 온전히 비워야 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부모님이 보고 싶고 본가에서 쉬고 싶은 마음보다 의무감이 크게 느껴졌던 거다.
드디어 '집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에서도 해방된 느낌이었다. 지난주도 본가에 가서 점심으로는 오마카세, 저녁으로는 맛있는 집밥을 먹었다. (오마카세는 내가 샀다. 하하.)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오던 오후에는 나도 모르는 새에 소파에서 낮잠도 푹 잤다. 새해에는 이렇게 조금 더 평화로운 날들이 펼쳐지길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