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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도 엄마가 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매주 할머니를 보러 간다.

by 제니

외할머니가 요양병원에 누워만 계신지 벌써 일 년이 흘렀다. 엄마는 일 년 내내 한 주도 빼먹지 않고 할머니 면회를 간다. 이번에는 어버이날을 맞이해 카네이션을 드리고 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고맙다. 예쁘다."라고 화답했다고 한다. 이제 할머니 머릿속에 몇 개 남지 않은 단어들 중 일부다. 엄마는 이 단어들처럼 할머니의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다녀온 날이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느껴진다고 했다. 일 년이 됐는데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거다. "그렇게 정정하던 네 할머니가 엄마 보고 살려달래." 엄마는 또 금세 목이 매였다. 할머니는 이미 응급실만 수차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 당장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 했다. 그런데 엄마가 면회를 갈 때마다 그저 "나 살려줘. 나 내보내줘"라는 말만 반복한다 했다. "할머니가 생에 대한 의지가 남달라서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 같아."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기적을 바라기도 했다. 의지가 저렇게 강하신데, 벌떡 일어나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해보기도 한 것이 내 기억 속 할머니는 누구보다 에너지가 넘쳤다. "아이고 가스나 어쩜 이리 예쁘노." 까랑까랑한 사투리에 큰 목소리. 그리고 할머니는 불과 4년 전까지 노인정에서 동료 노인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쳤다. 10년 전까지는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셨다. 미국, 뉴질랜드, 유럽... 할머니는 그 힘들다는 장거리도 뚝딱 다녀오시곤 했다.


그런 할머니의 지금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몇 달 전, 할머니가 있다는 병실에 들어갔을 때 나는 할머니를 찾지 못했다. 못 알아본 거다. 뼈만 남았다, 이 표현은 비유가 아니었다. 살가죽이 뼈에 달라붙은 채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할머니~"하는 소리에 고개를 스르르 돌리던 할머니. 손녀인 걸 알아본 건지, 아니면 그저 낯선 분위기가 감지돼서 인지, 할머니는 "으으응.." 하는 소리로 답을 했다. 늘 활기 넘치게 바깥을 돌아다니던 할머니의 세상은 이제 침대 하나가 전부였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많이 남는다고 했다. 효도는 해도 해도 모자라다고 말이다. 이제는 할머니가 그저 편하게 떠나시면 좋겠다고 했다. 많이 슬프겠지만, 저렇게 누워있는 할머니 당신이 제일 괴로울 거 라면 서다. 어버이날 저녁, 엄마는 할머니의 안녕을, 나는 엄마의 안녕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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