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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백련강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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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정 Nov 16. 2022

오후만 있던 일요일

[산문]백련강 - No. 7

    부르튼 입술을 비집고 희뿌연 입김이 새어 나왔다. 영하로 들어선 날씨 탓에 벌겋게 부운 귓불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나는 황량한 눈으로 코앞에 가게를 바라봤다. 추운 날씨임에도 짙게 늘어선 대기줄.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화려한 네온 간판과 모던한 건물 디자인. 새로 생긴 붕어빵 프랜차이즈 지점이었다. 요즘 따라 지역 곳곳에서 붕어빵 가게들이 생겨나는가 싶더니, 결국 이곳까지 붕어빵 전문 가게가 생겨 버렸다. 나는 골목 구석에 쓸쓸하게 덮여 있는 내 포장마차를 바라봤다. 천막 위에 눈이 소복하게 쌓인 것이, 곧 철거를 앞둔 낡은 조각상을 덮어둔 것처럼 보였다. 붕어빵 가게가 생겼다고 단순히 포장마차를 옮기면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강화된 단속을 피해 골목길에서 간신히 하루벌이하며 버텼는데, 그마저도 불분명해졌다. 포장마차로 나올 때까지만 해도 붕어빵 신메뉴를 시도해볼 생각에 들떴었다. 나는 묵직한 한숨을 뱉어내며 몸을 돌렸다. 포장마차가 있는 골목길 구석으로 터덜터덜 걸었다. 한기를 잔뜩 머금은 칼바람이 불어왔다. 옷깃 사이로 파고든 냉기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는 옷깃을 여매며 몸을 움츠렸다.

    어제 남은 슈크림 덩어리가 단단히 굳어 있었다. 나는 슈크림 덩어리를 포장마차 테이블에 내리치며 주물렀다. 단단하고 묽은 것이 짐승의 기름 덩어리처럼 보였다. 평소대로면 내가 붕어빵을 팔기 시작했는지 확인하러 오는 단골손님들이 있을 시간이었지만, 오늘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일요일이라서 사람들이 게으름을 피우며 아직 나오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 봐도, 머릿속에선 새로 생긴 붕어빵 가게가 맴돌았다. 그때, 뒷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진동을 흘렸다. 엄마였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수화기를 귀로 가져다 댔다. 너 요새도 붕어빵 만든다고 길바닥에 나앉아 있는 거 아니지? 요즘 같은 날씨에는 얼어 죽을 수도 있어. 엄마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야. 나 베이커리에 취직했다니깐, 사진 또 보내줘? 나는 태연하게 대답하며 휴대폰에 있는 사진첩을 뒤지기 시작했다. 대학 생활하면서 만든 빵들을 거짓으로 하도 많이 보낸 탓에, 어떤 게 보내지 않은 사진인지 헷갈렸다. 제빵인지 뭔지 그거 해서 붕어빵이나 굽다가 얼어 죽을 거면 가게로 돌아와서 생선이나 다듬어. 엄마가 말했다. 생선 비린내가 일 년 내내 진동하는 곳. 대가리를 내려치면 흐르는 피 덕분에 손끝에 시큼한 냄새가 배는 건 일상인 생선 가게였다. 제빵사가 되기 위해 홀로 서울에 올라온 이상,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싫어,라고 짧게 내뱉고는 전화를 끊었다. 미끈거리는 생선을 다듬을 바에는 언젠가는 올 손님을 생각하며 붕어빵 굽는 게 훨씬 좋았다.


    오전이 다 가도록 손님은 오지 않았다. 나는 죽은 새처럼 몸을 웅크린 채 남은 반죽으로 만든 밀가루 덩어리를 씹었다. 포장마차를 비웠을 때 손님이 올 수도 있으니 허기를 때우려면 이거라도 씹어야 했다. 저 멀리 보이는 붕어빵 가게 손님들은 줄어들 생각을 안 했다. 붕어빵 얼마예요? 별안간 찾아온 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붕어빵 가게를 쳐다보고 있던 눈을 돌려 손님을 바라봤다. 손님은 다짜고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내밀었다. 간만에 온 손님에 벅찬 기분이 들었다. 나는 원래 개수보다 덤으로 더 붕어빵을 담았다. 이렇게나 많이 줘요? 손님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말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손님은 내게 붕어빵이 가득 든 봉투를 받아 들었다. 손님이 봉투에 든 붕어빵 한 개를 꺼내 덥석 물었다. 앙금 팥을 꽉 채워 만든 붕어빵이었다. 나는 옅은 미소를 띠며 손님을 바라봤다. 많이 주는 것 외에는 별 거 없는 가게 같네요. 손님이 중얼거리며 몸을 돌렸다. 나는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손님은 붕어빵이 담긴 봉투를 들고 새로 생긴 붕어빵 가게를 향해 걸어갔다.

    한나절이 지나가도록 찾아온 손님은 고작 두세 명이 전부였다. 이 정도 돈이면 붕어빵 장사를 접고 아르바이트라도 하는 게 맞는 거 같았다. 문득, 아까 전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생선이나 다듬어라. 차라리 엄마 가게로 내려가 생선을 만지작거리는 게 맞는 선택 같았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제과점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카운터 아르바이트는 널려 있어도 빵을 만드는 일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스크롤을 내리던 중 낯익은 가게 이름에 손을 멈칫했다. 오늘 새로 생긴 붕어빵 가게에서 제빵 자격증 소지자를 뽑는다는 공고였다. 나는 새로 생긴 가게가 있는 쪽을 돌아봤다. 기다리는 줄은 줄었지만 손님들이 가게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지원하겠냐는 어플의 문구를 들여다보다, 휴대폰 화면을 꺼 버렸다.


    산등성이 아래로 해가 저물어 갔다. 낮에 만들어 둔 붕어빵이 돌처럼 굳었다. 나는 남은 재료들을 평소보다 일찍 정리했다. 어차피 더 만들어도 손님은 올 것 같지 않았다. 차갑게 식어버린 붕어빵이 왠지 눈에 걸렸다. 나는 차가운 붕어빵을 입에 물었다. 팥 알갱이가 버석하게 씹혔다. 달달한 팥 맛보다는 씁쓸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딱딱한 붕어빵을 오물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느새 하루가 지나가고 밤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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