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대로 국어사전
판단이나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알맞다
가해(加害)와 피해(被害)는 동일한 변수를 취하지 않으므로 상호 소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에 어둠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이 암흑이
언젠가, 어디선가, 어떤 선량한 사람을 향했던
나로 말미암았던 가해에 대한 온당한 처우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처진 어깨, 숙인 고개
나는 언제나 죄인이었고, 가해자였다.
세상을 향해 뻗어내지 못한 가시들이
안으로만 파고드니 마음이 성할 날이 없었지만,
그것조차 마땅하다며 자신에 대한 판결문을 되새겼다.
긴 시간 동안 타인의 상처에 전전긍긍하고, 그 상처를 돌보느라 나는 몰랐다.
정작, 내가
얼마나 다쳐 있었는지,
얼마나 닫혀 있었는지.
그러다 파고들다 못한 가시가 나를 뚫고 나와 누군가를 찌르게 되는 걸 보게 됐다.
그건 부당했다.
어느 날 내가 입었던 상처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아픔이 되는 건.
정말 안될 일이었다.
용서를 구하는 것에 서툴러서 네가 좋아한다고 했던 것들로 대신 사과를 건넸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마음 무겁게 지내며 스스로를 더 깊은 심연으로 끌고 들어갔다.
현재는 변수고, 과거는 상수라,
결국 이 모든 게 너에게 끼친 피해를 소거시키지 못한다고 해도,
고통에 성실하기라도 하면 신이 이를 가엾게 여겨 방정식의 해(解)를 던져주지 않을까
'솔직히 너도 상처받았잖아. 이제는 스스로를 그만 갉아먹어.'
친구가 걱정 어린 말을 해줘도 듣지 않았다.
그 말에 의탁해서 해(害)의 시소가 기울어지고
끝내 나도 수긍해 버리게 될까 봐
나 역시도 타인에게는 거짓투성이라 네 말이 진실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라 쉽사리 믿어버린 걸지도 모르겠지만
너는 '이제 괜찮다'라고 말했다.
다행이다.
너의 세계가 온전해서 정말 다행이다.
이제 나는 너를 뒤로 하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겠다.
며칠이 지나고, 한 친구가 물었다.
올 한 해 어땠냐고.
남몰래 혼자 울던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았지만,
너무 힘들고, 버겁고, 슬펐다는 말을
참 많이 배웠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러자 친구는 이제 다 끝났다고 말해주었다.
에두른 나의 대답, 잘못된 것 같은 친구의 응답,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도 적절한 대화였다.
참 이상하지.
나는 너를 통해 나를 돌봐야 함을 깨달았다.
충분히 아팠고, 용서도 받았으니,
이제 쭈뼛쭈뼛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어색하게 서있는 상처받은 나를 마주한다.
돋아난 가시를 빼주려는 호의인지,
가시로 자신을 찌르려는 해악인지,
알 수 없어 두려워하는 두 눈을 바라보고 말한다.
아플 거야,
하지만 나을 거야.
사진: Unsplash의 Antoine Daut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