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건물은 세워지고 허물어지며, 익숙했던 가게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간판들이 들어선다. 거리의 풍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그에 맞춰 바뀐다. 매일같이 누군가는 이 도시를 떠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변화는 너무나 빠르게 일어나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종종 잊힌 존재들을 마주하게 된다.
거리를 걷다 보면 한때 번화했던 가게가 문을 닫고 방치된 채 남아 있는 모습을 보곤 한다. 화려했던 네온사인은 꺼지고, 벽에는 덧발린 포스터들이 시간이 흐른 흔적처럼 겹겹이 쌓여 있다. 언젠가 익숙했던 간판이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이름이 적혀 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지나치는 사람들은 더 이상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기억은 쉽게 덮이고, 사라진다.
나는 이런 도시의 모습 속에서 ‘남겨진 것들’에 집중하게 된다. 세련된 새 건물보다도, 세월이 내려앉은 오래된 공간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느낀다. 빛이 바랜 간판, 녹슨 셔터, 먼지 쌓인 유리창. 그곳에는 누군가의 시간이 머물러 있다.
어느 날, 오래된 동네를 지나며 문이 닫힌 작은 구두 수선점을 보았다. 가게는 한눈에 봐도 오랫동안 방치된 듯했다. 유리창에는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았고, 안을 들여다보니 낡은 구두 한 켤레가 여전히 선반 위에 남아 있었다. 마치 주인이 돌아와 다시 손질할 것처럼. 그러나 그 공간에는 이미 시간이 멈춰 있었다.
그때, 가게 앞을 지나던 한 노인이 걸음을 멈췄다. 그는 천천히 유리창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조용히 서서 한참 동안 안을 바라보았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그 장면을 찍었다. 순간적으로 들려온 그의 목소리.
“여기, 옛날엔 참 장사가 잘 됐는디…”
그의 말은 누구에게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자신에게 하는 혼잣말처럼 들렸다. 기억 속 어딘가에서 떠오른 장면을 되새기는 듯한 표정. 나는 순간 그가 이곳의 단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이곳에서 오래도록 가게 주인과 안부를 나누던 이웃이었을 수도 있다.
그는 유리창을 한 번 더 바라본 뒤,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그의 뒷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보며 나는 다시 셔터를 눌렀다. 그는 단순한 행인이 아니었다. 그는 이곳을 기억하는 사람이었고, 무심한 도시 속에서 남겨진 사람이었다.
사진이란 무엇일까?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사라지는 것들의 흔적을 남기는 행위다. 변화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기억하고, 잊혀가는 존재들을 담아내는 일이다.
도시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너무 쉽게 지나친다. 익숙했던 거리의 풍경이 하루아침에 달라지고, 늘 가던 가게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우리는 그저 새로운 것에 적응하면서 살아가지만, 그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 변화가 하나의 상실이 된다.
우리는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가끔 멈춰 서서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곳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어제를 살고 있다. 익숙했던 가게 앞을 지날 때, 버려진 간판을 볼 때, 오랫동안 닫힌 문을 마주할 때,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나는 카메라를 통해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고 싶다. 사람들이 더 이상 돌아보지 않는 공간, 이름 없이 사라지는 순간, 낡고 버려진 채 남겨진 흔적들. 그것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이다.
도시는 변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 그것이 내가 거리에서 사진을 찍는 이유다.
“도시는 변하지만, 그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