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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를 보고 있을까?

by 박기종

거리를 걷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마주친다. 매일 스치는 얼굴들, 붐비는 지하철 속 수많은 사람들, 신호등 앞에 함께 멈춰 선 낯선 이들. 하지만 그 얼굴들을 우리는 정말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는 정말 서로를 보고 있을까? 아니면 단지 서로를 스쳐 지나가고 있을 뿐일까?

어느 날, 오후 햇살이 비추는 골목길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어가는 한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허리가 구부러진 채로 작은 손수레를 끌고 있는 모습이었다.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었고, 손수레 안에는 고철과 종이박스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그녀가 나를 보지 못하는 틈을 타 셔터를 눌렀다. 렌즈를 통해 본 그녀의 모습은 피로와 담담함이 공존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셔터를 누른 직후, 마음 한구석에 찜찜함이 남았다. “이렇게 찍어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당황했지만 곧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할머니, 저기... 방금 사진을 찍었는데요. 괜찮으실까요?”

할머니는 약간 놀란 듯했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에이, 괜찮어. 뭐 나라고 별 거 있간디.”

그 말에 안도하며 나는 다시 그녀와 마주보았다.

“그래도 먼저 여쭤봤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할머니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괜찮다니께. 나야 뭐 ~.”

사진을 찍은 뒤, 나는 할머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종일 거리에서 고철을 주워 모아야 겨우 하루 먹고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그녀의 목소리에는 서글픔보다는 담담함이 묻어났다.

“아따, 인자 늙어서 이 짓도 힘들어. 그래도 뭐 어쩌겄어. 먹고 살아야제.”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마음이 먹먹해졌다. 단순히 사진 한 장으로는 담을 수 없는 그녀의 삶의 무게가 느껴졌다.

며칠 후, 나는 그날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다시 그 골목을 찾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손수레를 끌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사진을 건넸다.

“할머니, 그날 찍은 사진이에요. 한번 보실래요?”

할머니는 사진을 들여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나 이렇게 나왔네잉? 그래도 뭐 괜찮네라. 젊었을 때 생각나부러.”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사진을 제가 개인적으로 써도 될까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괘안해 맘대로 해 누가 봐줄랑가는 몰라도. 근디 너무 못나게 나오면 안 돼잉?”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사진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누군가의 존재를 인정하는 도구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사진을 SNS에 올리며 나는 짧은 글을 남겼다.
“도시의 한켠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가 쉽게 스쳐 지나가는 이들의 얼굴 속에도 깊은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곧 댓글이 달렸다.
“이런 사진 좀 그만 찍으세요. 힘든 사람들 이용해서 감성팔이 하는 거 아닌가요?”

그 댓글을 읽으며 다시 생각했다.
나는 정말 ‘이용’한 걸까?
사진이란 무엇일까?
사진이 그저 아름다운 순간만을 담는 것이라면, 내가 하는 일은 틀린 걸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도 찾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순간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바라보았고, 그녀 역시 나를 바라봐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서로를 보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외면한 현실, 무심코 지나친 장면들, 그리고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바라보는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사진은 그 순간을 붙잡아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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