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조용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빽빽한 건물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 길모퉁이에 쌓인 쓰레기 더미, 바람에 나부끼는 낡은 포스터. 인적이 드문 새벽, 무심코 지나친 지하철역의 텅 빈 플랫폼.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 공간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 순간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걷는다. 그러면 평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다. 눈길을 주지 않으면 스쳐 지나갈 장면들이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진다. 낮에는 무심코 지나친 거리의 풍경이 밤이 되면 전혀 다른 분위기로 다가온다.
어느 날 ,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셔터를 눌렀다. 아파트 단지 안쪽 구석에 놓인 빈 의자가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자전거 한 대가 벽에 기대어 있었다. 전단지가 겹겹이 붙은 낡은 벽, 그 위로 세월의 흔적이 쌓여 있었다. 사람들은 없었지만, 그 공간은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기다림일 수도 있고, 잊혀짐일 수도 있으며, 혹은 그곳을 스쳐 간 누군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자리일 수도 있다.
거리는 끊임없이 변한다. 하지만 동시에, 거리에는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순간들이 존재한다. 문이 굳게 닫힌 오래된 가게, 유리창에 비친 흐릿한 네온사인, 길가에 버려진 신발 한 짝. 그것들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는 쉽게 지나쳐버리지만, 거리의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록이며, 누군가의 삶의 조각이다.
사진을 찍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장면이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거리의 풍경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한 조각이며, 그 안에는 수많은 기억과 감정이 스며들어 있다. 한밤중 불이 꺼진 가게 앞을 지날 때, 나는 문득 그곳에서 오랜 시간 일했을 사람을 떠올린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놓여 있던 테이블에는 어떤 대화가 오갔을까? 길모퉁이에서 마주친 낡은 벤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쉬게 했을까?
우리는 침묵하는 거리를 바라보며 무엇을 느끼는가? 말 없는 공간 속에서도 감정을 읽고, 기억을 떠올린다. 가끔은 어떤 장면이 강렬하게 마음을 흔들어놓기도 한다. 어둠 속에서 홀로 서 있는 가로등,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버려진 맥주 캔, 공원 한편에서 바람에 날리는 신문지. 그 작은 요소들이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도시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사진은 단순히 눈앞의 장면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담아내는 도구이자, 침묵 속에서 존재의 흔적을 발견하는 행위다. 사람들은 지나가지만, 공간은 남는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우리가 미처 듣지 못한 목소리들이 깃들어 있다.
나는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마다 그 침묵을 기록하려 한다. 누군가가 미처 보지 못한 장면을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누군가는 그저 스쳐 지나갈 풍경이지만, 나에게는 시간이 멈춘 한 장면이 된다.
어쩌면 사진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침묵하는 것들 속에서 의미를 찾고, 보이지 않는 이야기들을 포착하는 것. 거리의 순간들은 사라지지만, 사진은 그것을 붙잡는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결국 누군가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갈 것이다.
거리의 침묵 속에서도 사진은 이야기를 발견한다. 그것이 내가 카메라를 드는 이유다.
“거리는 조용하지만, 사진은 그 안에서 이야기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