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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거리, 고독의 얼굴들

by 박기종

비 오는 날, 거리는 평소와 다른 표정을 짓는다. 아스팔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흐릿한 네온사인, 우산 아래 숨어든 사람들. 도시는 바쁘게 돌아가지만, 빗속에서 걸음을 늦춘 사람들의 얼굴에는 고독이 스며 있다. 물웅덩이를 피해 조심스레 걷는 이들, 버스 정류장에서 우산도 없이 서 있는 사람, 커피숍 창가에서 멍하니 빗소리를 듣는 모습. 비는 감정을 더욱 짙게 만든다.

어느 날, 비 오는 거리를 걷다가 한 노인을 보았다. 그는 작은 비닐봉지를 들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 위로 빗물이 흐르고 있었고, 우산을 쓰지 않은 채 그냥 빗속을 걷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셔터를 눌렀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은 마치 비와 하나가 된 듯 보였다. 그것은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라, 세월의 무게가 담긴 고독이었다.

비 오는 날에는 사람들의 감정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연인의 우산 아래에서 나누는 미소, 혼자 걸으며 빗소리를 듣는 이의 표정, 비를 피할 곳을 찾는 노숙인의 손길. 같은 비 속에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 감정들을 조용히 기록한다.

비를 피하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누군가는 알록달록한 우산을 펼치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누군가는 신문지를 머리에 덮고 급하게 뛰어간다. 한편으로는 우산 없이 빗속을 천천히 걸으며, 마치 빗물에 젖는 것이 상관없다는 듯한 사람도 있다. 편의점 처마 아래에 모여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이들, 택시를 잡기 위해 손을 흔드는 직장인, 지하철 역으로 뛰어가는 학생. 비는 모두에게 똑같이 내리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비를 맞이한다.

비는 흔적을 남긴다. 젖은 도로 위에 번진 불빛, 우산 끝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땅에 남은 발자국. 그것들은 곧 사라질 것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강렬하게 존재한다. 사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순간들을 담아두는 것이다. 비와 함께 흩어지는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이 남긴 고독의 얼굴들을.

비 오는 날의 거리를 걷다 보면, 우리는 더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 도시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까? 우산 속에서, 빗속을 걸으며, 우리는 잠시나마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사진은 그런 순간을 붙잡는다. 빗속의 고독과 따뜻함을 동시에 담아내며, 우리가 잊고 있던 감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비는 스쳐 지나가지만, 그 순간의 감정은 사진 속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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