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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진 순간, 사진의 윤리

by 박기종

사진은 시간을 멈춘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세계는 한 조각으로 고정된다. 그러나 그 고정된 이미지는 중립이 아니다. 누가 찍고, 무엇을 담고,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 안에는 언제나 선택이 있고, 그 선택에는 윤리가 뒤따른다.

사진가의 눈은 단순한 기록자의 시선을 넘어서기도 한다. 거리에서 마주친 누군가의 고통, 어떤 사건의 현장, 쓰러진 몸, 흐르는 눈물… 그 장면 앞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기록하는가?”
“이 사진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느 날, 나는 도로변에 쓰러진 사람을 보았다. 경찰차와 구급차가 이미 도착해 있었고, 주변에는 군중들이 웅성이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었지만, 이내 멈칫했다. 이 순간을 찍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것이 진실을 알리는 일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단지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것에 불과한가?

사진은 현실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현실을 왜곡하고, 타인을 대상화하며, 상처를 다시 열게 만든다. 특히 고통이나 죽음을 담을 때, 우리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기록은 언제나 누군가를 대신하는 목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존중을 필요로 한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만큼 중요한 것은, “무엇을 찍지 않을 것인가”**다.
사진가의 윤리는 셔터를 누르는 것뿐 아니라, 셔터를 멈추는 선택 속에도 있다.

나는 사진을 찍으며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장면을 찍는 내가, 이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는가?”
“이 사진을 보는 사람은, 이 이미지 너머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까?”

사진은 힘이 있다.
그 힘은 진실을 비추는 데 쓰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데 쓰일 수도 있다. 그래서 사진가에게는 미학뿐 아니라 윤리도 필요하다. 우리는 셔터를 통해 세상을 구성하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한다. 그렇기에 그 순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진은 멈춰진 시간이지만, 그 안에 살아 있는 감정이 있다. 고통을 찍을 때는, 고통을 찍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카메라는 무기이기도 하고, 다정한 손이기도 하다.
그것을 어떻게 들 것인가에 따라, 사진은 세상에 상처를 줄 수도, 작은 연민을 건넬 수도 있다.

사진의 윤리는 결국 존중의 문제다.
세상을 찍는다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 태도는, 사진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마주했는가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멈춰진 순간 속에서 우리가 책임져야 할 것은, 단지 이미지가 아니라, 그 이미지가 품은 타인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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