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전설에 고향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더운 여름이면 납량 특집물로 자주 틀어주던 한국판 고스트 이야기였다. 부모님은 전설의 고향 하는 시간이면 바쁜 일손을 놓고 텔레비전 앞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 그 당시 텔레비전은 보물 일호 정도 되는 귀한 물건이어서 그것을 담아두는 나무궤짝 같은 게 있었다. 드드룩 찬장 문 열듯이 미닫이 문을 옆으로 밀면 화면이 둥그스런 텔레비전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오른쪽 맨 위에 달린 팽이처럼 생긴 것을 돌리면 화면이 바뀌었다. 방송이 나오는 건 세 개였다. 7번 9번 11번 드르륵 돌리며 이 세 개의 방송을 번갈아 돌려보곤 했다. 대부분 찌지 지직 치지직 치지직 거리며 고음대 주파수로 외계인이나 알아들을 수 있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왔다.
엄마는 전설의 고향이 나오는 시간이면 하던 설거지도 뒤로 밀어두었다. 부뚜막에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깔끔한 성격이었던 엄마에게 좀처럼 없는 일이라 전설의 고향이 엄마에게 주는 문화적 전파력은 지금 시대로 말하면 넷플릭스 드라마나 K 컬처 정도 되는 듯했다.
여하튼 드라마는 그렇게 온 가족을 까만 텔레비전 앞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곤많은 것들이 멈춰섰다.
엄마의 설거지 소리도, 사납게 짖어대던 옆집 누렁이도, 늦은밤 돌아오는 경운기 소리도, 뒷집 새댁 아이 울음 소리도, 심지어 시냇물 소리도 온 동네가 조용히 멈춰 섰다.
나는 전설의 고향 앞에 나오던 시그널 음악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결정적 순간에 피어나는 자욱한 안개와 음산한 피리소리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귀신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장면은 그대로 박재되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상한 건 두꺼운 이불 안에서 귀를 막고 있어도 처녀 귀신 웃음소리는 들려왔다.
"엄마 소리 좀 줄여줘 무섭단 말이야"
"이게 뭐가 무서답고 그러니 다 거짓말이야 "
형과 누나는 엄마 옆에서 어른처럼 의젓하게 전설의 고향을 보고 있었다. 난 한 시간 동안 이불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전설의 고향이라는 사슬은 내 몸을 옭아맸다. 보지도 않은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 귀신이 상상 속에 꽈리를 틀기 시작 한 것이다. 그 시절 우리 집은 재래식 화장실이 대문을 열고 스무 발자국 정도 걸어가야 되는 위치에 있었다. 난 저녁이 되면 거기까지 걸어갈 수가 없었다. 가기도 전에 까만 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더운 여름이었다. 수박 한 통을 베어 먹고 초저녁 일찍 잠에 든 나는 오줌이 마려워 눈을 떴다. 옆에 잠든 형을 흔들어 깨웠다. 형은 귀찮다는 듯 혼자 갔다 오라고 화를 냈다. 새벽녘 꿈잠은 어린 나를 놓아주지 않고 그대로 잠들게 해 주었다.
그때였다. 나는 바지 지퍼를 열고 시원하게 오줌을 내갈겼다. 꿈이 아닐 거야 하면서 꿈속에서 생각을 했다. 꿈속에서도 알았던 것 같았다. 꿈이 아니었지만 꿈이었기를 바랐다.
아침, 일찍 엄마는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몇 살인데 아직 오줌을 싸니"
"키 얻고 소금 받아와라"
아직도 난 겁이 많은 편이다.
산길이나 껌껌한 길을 혼자 걷지 않는다. 지금도 하얀 소복 입은 여자를 보면 움찔 움찔 놀라곤 한다. K컬처를 너무 이른 나이에 접한 탓만은 아닐 것이다.
원래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어른이 되었어도 처녀귀신은 늘 내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귀신으로. 귀신 다운 귀신으로 존재해 있다.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귀신이 매년 더운 여름이면 나에게 찾아온다.
드라큘라나 구미호 강시 고스트 이런저런 많은 귀신이 있지만 그 옛날 화장실을 못 가게 만들었던 귀신은 머리를 풀어헤친 처녀귀신뿐이다.
시대가 달라서 일까 !
쌍둥이들은 처녀귀신을 보고 시쿤둥해 한다. 겁은 나처럼 많은듯 한데 처녀귀신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