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과 최♧숙 , 두 숙자매는
고등학교 시절 역사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질문을 자주 던지셨다. 선생님은 독특하게도 이름의 한글자만 호명했다. 오늘은 숙자매 가 이야기 해봐라 오늘은 경자매가 이야기 해봐라 어떻게 생각하냐 그게 맞냐 난해한 질문들을 자주 던지셨다. 가끔은 수업 진도는 까맣게 잊어 버린듯 국가니 미래니 우리가 걱정하던 장래 직업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선생님은 소신이 뚜렷한 교육관을 가지고 계셨다. 짙은 눈썹 너머로 아이들을 흩어 보았다. 모든 숙자매들은 서로 눈치를 봐가며 너댓명의 숙자매들은 선생님 질문에 답변 하였다. 지금도 비슷 하겠지만 그당시 한 학급에는 같은 이름도 많았고 끝자리가 같은 여학생들이 많았다. 오죽하면 철수와 영미라는 영화와 노래도 유행 했겠는가
대부분의 이름 끝자가 숙,경,희 였다. 그렇게 이름들은 단조로웠다. 단순미는 먼데 있지 않다.
내 주변에도 이런 숙자매들이 많이 있다. 나의 아내는 장녀이고 두명의 남동생이 있다. 큰 처남댁 이름이 이☆숙이고 작은 처남댁 이름이 최♧숙이다. 같은반 이였다면 숙자매로 역사 선생님께 질문 공세를 받았을 것이다.
두명의 숙자매 즉 두 처남댁은 외모가 비슷하다. 크지 않는 작은키에 작고 아담한 이목구비 뽀얀피부 예쁘장한 얼굴 상냥하고 밝은 성격 지금 까지 우리는 자주 왕래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살고 있다. 두 처남댁 모두 예쁘고 아름다웠다. 큰처남 집하고는 가까운 거리여서 자주 드나들며 식사를 하고 여행을 다닌덕에 오래된 친구처럼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작은처남도 일년에 한두번 볼때면 반갑기는 매 한가지여서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가진다. 지금이야 애낳고 일상에 묻혀 사는지라 자주 모이지는 못하지만 결혼 초반 우리는 자주 모여 놀러 몰려 다녔다.
아내는 따라 다닌지 사년이 지나서야 동생들을 소개 시켜 주었다. 그때 두 동생과 두 처남댁을 처음 보았다. 예쁘고 청순 했다. 잘 보여야 겠다는 생각으로 넙쭉 넙쭉 술잔을 비워갔다. 급기야 새하얀 배갯잎에 누런 침으로 지도를 그려 놓고 그것도 부족해 화장실에서 오바이트까지 하게 되었다. 낯술로 시작해 저녁 늦게 까지 이어진 술자리는 그렇게 첫방문한 처남댁에서 대짜로 뻣고서야 끝이났다. 아침에 일어 났는데도 술이 덜깬듯 헛구역질이 나왔다.
그시절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두 처남댁은 첫애들이 동갑이다. 첫 조카인 채원이는 지금도 딸처럼 편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 여간 다행이 아닌것이 쌍둥이 남자아이를 뒤늦게 낳아 기르고 있는 우리 부부에게는 채원이가 딸노릇을 톡톡히 해주는덕에 딸가진 아빠 부럽지가 않게 되었다.
두 처남댁과 인사를 나눈지도 이십년이 넘어섰다. 나이 먹으면서 기묘하게 느끼는게 있다면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가끔 나는 내 나이가 오십을 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그냥 무덤덤 하다. 그냥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은 그렇쿠나 정도의 생각만 있을뿐이다. 하지만 가끔 두 처남댁을 만나 이야기를 하거나 여자 동창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때면 마음 한켠이 아려옴을 느낀다. 특히 아름답고 발랄했던 여자애들이 얼굴에 주름이 지고 늙어 가는걸 볼때면 슬퍼진다. 내 나이를 떠올리고 서글퍼지는 일은 거의 없지만 처남댁들이 늙어가는걸 보면 슬퍼진다. 한때 소녀같던 두 처남댁들이 나이를 먹어버린 것이 서글프게 다가오는 까닭은 아마도 첫 만남의 뽀얏턴 소녀같은 얼굴이 기억나서 일지도 모른다. 이십대의 청순했던 아름다움이 원숙함과 차분함으로 변하거라고 생각 되다가도 이것만큼 공평하고 또 기가 막힌게 또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아내와 큰처남댁은 갱년기 증상으로 힘들어 한다. 노안으로 가까운데가 흐릿하고 겹쳐 보인다고 이야기 한다. 둘이 앉아 이야기 하다보면 합이 맞는게 많다 보니 풀어 놓다보면 그게 치유가 된다. 타인도 나와 다르지 않음을 느끼는 것만큼 큰 치유도 없을터ᆢ 비슷하게 아이들 교육 문제로도 힘들어 하다보니 동병상련의 정이 남다른듯 하다. 가까운 곳에 그래도 마음 한켠 의지하고 알아줄 사람이 있어 좋아 보인다. 서로가 서로를 보다듬어 주고 위로해준다. 남편이 못한것을 대신해 줄때도 있을거 이다. 때론 남편보다 더 필요한 존재이기도 할것이다. 서로 기댄 모습이 아름답다. 올케 시누이 사이가 이보다 더 좋을수 있을까 주변에선 이해할수 없다는 반응이지만 상관 않는다. 편하고 좋기만 하다. 자주 연락하고 자주 놀러 다닌다. 이주전에도 힘들다며 두여자는 강릉으로 떠났다. 일상은 그렇듯 묘하다. 놓았다가 다시 찾게 된다. 끝없는 반복속에, 그 얕음 속에, 그 깊이 없음에, 겪하게 들뜨기도 하고 상처 받기도 한다.
내곁엔 사랑하는 아내와 늙어감을 공유 할수 있는 두 처남댁이 있다. 세명의 여자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름답게 본인들의 색깔로 익어갔으면 좋겠다. 그렇게 오랜 시간 서로의 늙어감을 낯설어 하지 않고 원숙미가 불러오는 아름다움에 감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사랑하며 살수 있게 되기를 기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