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애니웨이>
소설가이자 교사인 로렌스는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이를 자신의 생일날 연인인 프레드에게 고백한다.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앞으로의 인생은 여성으로 살고 싶다고 말이다. 로렌스의 고백은 그와 주변 사람들에게 큰 파장을 불러왔다. 화장한 얼굴에 치마를 입고 학교에 왔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하고, 부모님과 연인과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심지어는 모르는 사람에게 폭행을 당한 적도 있다. 하지만 로렌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로렌스 애니웨이>에서 나타난 자기혐오는 로렌스의 성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로렌스의 자기혐오는 자신이 더 이상 남성으로 살고 싶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부터 시작된다. 생물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남성의 모습을 하고 남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로렌스에게는 아브젝트로 작용하였고, 영화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남성 로렌스’라는 자아정체성에 대한 로렌스의 아브젝시옹을 묘사하고 있다.
S1.은 로렌스가 처음으로 타인에게 성정체성으로 인한 갈등을 고백하는 순간이다. 여기서 “난... 죽을거야”라는 로렌스의 대사는 남성으로 살아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아브젝시옹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때 로렌스가 겪고 있는 갈등의 원인이 성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라는 것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이는 다음 장면인 S2.에서 로렌스의 대사를 통해 나타난다. 로렌스와 프레드의 대화가 이뤄지는 곳은 자동 세차 중인 차 안인데, 늦은 시각인데다가 기계 안에 있는 만큼 배경이 두 인물의 실루엣만 보일 만큼 어둡게 처리된다. 어두운 배경은 성정체성에 대한 갈등으로 인해 혼란스러운 로렌스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둘의 대화가 끝나면 자동 세차 기계의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프레드가 걸어 나온다. 이는 곧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함으로써 앞으로 새 삶을 살아갈 로렌스의 미래를 암시한다.
차에서 프레드에게 자신의 갈등을 고백한 이후 로렌스는 조금 더 적극적이고 노골적으로 남성 로렌스에 대한 혐오감을 표현한다. 그는 사회적으로 남성성을 상징하는 ‘알통’과 ‘남근’을 가리키며 그것들이 전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또한 여성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자신이 생물학적 남성의 몸을 갖고 사는 것은 또 다른 자신, 즉 ‘여성 로렌스’의 삶을 통째로 훔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이 대사를 통해 로렌스는 생물학적 남성의 몸을 하고 있는 자아와 여성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자아를 구분 짓고 있으며, 전자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감을 드러내고 있다.
로렌스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고백한 이후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다. 그리고 프레드의 응원에 힘입어 본격적으로 여성 로렌스로 살아갈 준비를 한다. 가장 처음 시도한 것은 화장이다. 물론 이전부터 프레드의 속옷이나 셔츠를 입어보거나 여성복을 사는 등의 시도를 해왔지만 모두 일회성으로 그쳤으며 다른 이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여성으로 살아가고자 결심한 후에는 화장을 하면서 점차 남성 로렌스의 모습을 지우고자 한다. 로렌스에게는 ‘화장’이라는 행위 역시 하나의 아브젝시옹인 것이다. 그러나 화장만으로는 완전히 남성 로렌스를 지워낼 수 없기 때문에 아직까지 자신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없어 거울 보는 것을 피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영화 중반부에서는 로렌스가 자신감을 갖고 여성으로 살아가는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시선으로 인해 고통 받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준다. S4. 이전에 로렌스는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해고를 당한 뒤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바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가 한 남성에 의해서 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성정체성을 고백한 뒤 오랫동안 찾지 않았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만나달라고 하는데, 로렌스의 엄마는 로렌스에게 남편을 돌봐야하기 때문에 만날 수 없으며 먼저 연락을 끊었으면서 왜 이제야 연락을 하냐고 매정하게 얘기한다. 그러자 로렌스가 사진 속 대사를 말한다. S4.는 로렌스의 자기혐오가 단순히 남성 로렌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로렌스가 성정체성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갈등을 겪고 있는 그 상황 자체에서도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때 폭행으로 인해 로렌스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어 있는 상태인데, 혈액은 가장 근본적인 형태라고 여겨지는 몸에 대한 아브젝시옹에서의 아브젝트 중 하나이다. 이는 로렌스의 자기혐오로 인한 아브젝시옹을 강렬한 색채로 시각화하여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자기혐오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로렌스가 아브젝시옹에 성공한 과정과 그 결과 여성으로 살아가는 로렌스의 모습은 담지 않았다. 하지만 로렌스는 갖은 노력 끝에 결국 여성으로 사는 데에도, 작가로서 커리어를 쌓는 데에도 성공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에서 로렌스가 자신에 대한 혐오감을 극복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 째, 자신이 혐오하는 자아정체성을 인지한 후에, 둘 째, 자신이 원하는 자아정체성 확고하게 정했다. 그리고 셋 째, 자신이 원하는 자아에 도달하고자 화장, 옷차림 변화, 성전환 수술 등의 노력을 보였다. 넷 째,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고민을 연인 프레드나 엄마, 친구들 등의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였고, 다섯 째, 화장한 얼굴에 치마 차림으로 학교에 출근하거나 길을 누비는 등 자아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이렇듯 로렌스는 수많은 아브젝시옹과 자기혐오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남성 로렌스라는 아브젝트를 자신에게서 완전히 몰아내고 여성이라는 온전한 자아를 정립하는 데 성공하였다.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