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젝시옹은 혐오의 형식 중 하나이다
*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생각을 담았으며,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으로 분석한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중심으로
I. 들어가며
‘혐오’는 “싫어하고 미워함”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기존에는 ‘혐오 시설’과 같이 비인간 대상에게 쓰였던 이 표현은 2011년을 기점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더 자주 쓰이는 표현이 되었다. 어떠한 범죄에 대해 가해자의 동기에 피해자(혹은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감이 포함되어있을 경우 별도의 범주로 분리되어 ‘혐오 범죄’라는 이름이 붙여지고, 특정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에 대한 혐오감과 불쾌감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혐오 문화가 가시화 및 활성화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혐오와 관련된 논쟁과 갈등이 다양한 방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고 있는 현재, 혐오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현명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혐오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과 시각이 필요하다. 혐오에 대한 연구는 다양한 방면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여성학, 심리학, 정신분석학, 기호학 등이 그 예이다. 여기서 혐오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기호학적 접근은 국내에서는 생소한 관점인데, 이런 관점을 지닌 학자 중 일부는 혐오에 대해 ‘아브젝시옹(abjection, 이하 아브젝시옹)’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설명하고 있다. 아브젝시옹은 그 접근 방식만큼이나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개념이라 이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특히나 타자혐오에 비해 자기혐오에 있어서의 아브젝시옹에 관한 연구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따라 본 글에서는 자기혐오와 아브젝시옹의 관계, 구체적으로는 자기혐오로 인한 아브젝시옹의 발현 방식과 형태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때 현실 세계에서의 자기혐오와 아브젝시옹에 관한 사례를 수집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자기혐오에 대한 사례를 영화로 한정하여, 영화 속에 드러나는 자기혐오와 아브젝시옹를 분석하고자 한다. 즉, 이 글은 ‘영화에서 등장인물의 자기혐오에서 비롯된 아브젝시옹은 어떤 형식과 방법으로 발현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혐오에 대해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을 분석 기준으로 삼아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등장인물의 자기혐오가 어떤 방식과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 자기혐오를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를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할 것이다. 영화 서사와 장면을 분석할 때는 영화의 흐름과는 상관없이 인물의 삶의 흐름에 따라 시간 순으로 정리하였다.
아브젝시옹에 대한 여러 관점 중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을 분석 기준으로 채택하였는데, 그 까닭은 첫째, 국내 아브젝시옹 관련 연구 중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이론이 가장 많이 인용되고 분석되었다는 점이고, 둘째, 아브젝시옹 관련 여러 관점 중 가장 일상생활에 적용하기 적합하며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분석 대상으로 영화를 선정할 때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따랐다. 첫 째, 영화의 서사에 등장인물의 자기혐오가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는가? 둘 째, 영화의 서사와 전개에 등장인물의 인생이 자세하고 직접적으로 묘사되고 있는가? 셋 째, 2000년 이후에 개봉된 영화인가? 위의 기준에 따라 <로렌스 애니웨이, 자비에 돌란, 2013>(이하 <로렌스 애니웨이>)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나카시마 테츠야, 2007>(이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를 선정하였다.
II. 자기혐오와 아브젝시옹
‘자기혐오’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지와 복합적 감정”으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혐오라는 뜨거운 징후 - 이주란의 최근 소설을 중심으로」에서 인아영은 자기혐오란 인물들이 어린 시절부터 조금씩 경험해 온 사소한 폭력, 차별, 무시의 경험들이 내면으로 스며들어 만들어낸 또 다른 폭력과 차별, 무시가 자신을 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자기혐오의 원인이 폭력과 차별, 무시를 생산하는 외부의 기준에서 비롯하기 때문에, 자기혐오자는 끊임없이 그 기준을 의식하며, 사람을 가로지르는 무수한 기준 속에서 이들의 자기혐오가 훈련되고 양성된다고 보았다. 한편 「베시 헤드의 『마루』에 나타난 인종주의와 혐오/자기혐오의 문제」의 저자 최선령은 혐오에 대해 “혐오의 주체와 객체는 결코 이분법적인 것이 아니라 경계가 모호하고 유동적”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 자기혐오란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감정이나, 타인에 의한 혐오와 자의에 의한 혐오는 동일한 구조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타인혐오와 자기혐오는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아브젝시옹’은 이를 연구하는 학자나 접근 방식에 따라 다르게 정의된다. 누군가는 아브젝시옹이 혐오, 비천한 것, 방기, 폐물 등을 의미 한다고 보는 한편, 혹자는 아브젝시옹을 배제를 위한 정치적 경계 짓기 논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브젝시옹에 대한 주요 학자들의 논의는 아브젝트(abject, 이하 아브젝트)를 설정하는 경계의 문제로 집중된다.’ 아브젝시옹의 근본적인 형태이자 아브젝시옹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자주 사용되는 예시는 바로 몸에 대한 것이다. 사람은 밥을 먹으면 배변 활동을 하고, 체했을 때는 구토를 한다. 상처가 나면 피를 흘리기도 한다. 아브젝시옹의 관점에서는 배변 활동, 구토, 피를 흘리는 등의 현상이 사람들이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미래를 암시하는 대상, 즉 배설물과 체액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배출하는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아브젝트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배척해내는 것이 아브젝시옹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이하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제시하는 아브젝시옹은 “‘주체와 객체를 구분 짓는 경계선 중에서 가장 모호한 것’으로 주체에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것을 추방하거나 거부함으로써 모호해져 있는 주체의 경계를 명확히 확립하고자 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쉽게 말해 주체가 안정된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자신에게 이질적이고 위협적인 것들, 즉 아브젝트를 거부하고 추방하려는 심리상태가 아브젝시옹이다.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주체가 온전한 자아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체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설정하고, 지속적으로 주체화에 방해되는 것들을 추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처럼 아브젝시옹은 혐오의 형식 중 하나이다. 그렇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감, 즉 자기혐오 역시 아브젝시옹을 통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개념 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국내의 연구 동향을 살펴보자면 혐오와 자기혐오에 대한 연구는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방법론에 의해 연구되고 분석되어 왔으나, 아브젝시옹, 특히나 자기혐오와 관련된 아브젝시옹에 대해서는 연구 사례가 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본 글과 같이 자기혐오로 인한 아브젝시옹에 대한 이야기가 더 활발히 이뤄져야 할 것 같다.
<다음 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