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언제나 철학을 동반한다.
나는 왜 철학으로 사랑을 말하나?
철학은 모든 것을 처음으로 되돌린다. 근본적인 이해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알려면 처음부터 되돌아가야 한다. 사랑이 어려울수록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엉킨 실을 푸는 방법은 처음 출발한 실과 마지막에 도착하는 끝 실을 찾은 후 차근차근 풀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중간에 있는 엉킨 실부터 풀고자 한다. 왜냐하면 문제는 결국 엉킨 곳에 있다고 믿으니까. 그리고 포기한다.
원래부터 안 되는 거니까.
처음 누군가에게 고백한 적이 있었다. 고백을 거절당했다. 어렸을 때라 그런지 그 충격이 사뭇 남달랐다.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내 인생이 잘못되었다고 믿었다. 내 인생은 원래부터 안 되는 것이고, 내 인생은 앞으로도 잘 해결될 리 없다고 생각하였다. 토가 나올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정신은 물질로 승화되지 않았다.
모든 걸 쏟아내도 마음이 비워지지 않았다. 사랑은 나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희망에 찰수록 고통스러웠다. 아주 먼 미래에라도 그녀와 잘 되기를 빌었다. 그건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신앙심이었다. 사랑이 정말 이루어지려면 이성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철학이 중요한 건 우리를 처음으로 되돌린다는 점이다.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이 우리에게 건넨 첫 번째 질문이다.
사랑이 무엇인가?
사랑은 수수께끼다. 사랑은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을 안다고 믿는다. 사랑을 하면서도 사랑을 모른다. 내 언어 바깥에 있는 무언가로 느껴진다. 철학은 우리에게 사랑이란 걸 언어로 표현해 주길 원한다. 사랑은 아무도 모르는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만족시키는 답일 수 없다.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사유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태어났을 때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은 동물 중에 유일하게 사랑 없이 자랄 수 없는 동물이다. 모든 동물은 태어나자마자 직립보행이 가능하고 젖을 먹을 수 있지만, 아기는 누군가가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죽는다. 내가 살아 있다는 건 누군가의 사랑이 있었다는 증거다. 사랑을 받아본 적 있었지만, 사랑을 준 적이 없었다. 사랑을 보답한 적 있었지만, 사랑을 나눠본 적이 없다. 사랑을 주는 게 이렇게 고통스러운 줄 미처 알지 못하였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행복하다고 한다. 주는 것은 물질적 손해를 낳지만 그 빈자리에 정신적 만족을 채워준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내 사랑이 누군가에게 불편이 된다는 걸 생각하지 못하였다.
사랑과 철학은 닮았다. 고통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에서. 그 고통의 의미를 다시 묻기 위해 우리를 처음으로 되돌려 놓는다. 사랑을 근본적으로 되묻고, 사랑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 철학을 거치지 않고서는 첫 번째 질문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사랑은 언제나 철학을 동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