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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사랑이 혼란스러울 때

by 비평교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짝사랑에 실패한 후 나는 사랑을 알고 싶어졌다. 옷 스타일을 바꾸거나 외모를 가꾸는 방법도 있었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근본부터 잘못되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겉모습과 내면을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였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바뀌길 원했다.


인간이 이성을 사용하기 전에는 신화가 궁금증을 해결하는 시대였다. 인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내용을 신이나 문학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하였다. 신과 문학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은 이성보다 풍부하다. 하지만 철학이라 부를 수 없다.

그렇다. 진짜 철학은 이성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만물은 물이다.”

탈레스가 한 말이 현대에는 아무런 답을 주지 않지만,


세상의 근본은 무엇인가? (신이 아니라면)
상상력이 아닌 이성을 통해 답을 구한다는 것

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하다.


태초에 가장 중요한 감정은 분노와 공포, 사랑이다. 남에게 먹을 것을 빼앗기거나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화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반대로 호랑이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화를 낸다면 죽을 것이다. 공포가 있기 때문에 도망칠 수 있다. 약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면 보답으로 돌아오고, 공동체가 확대되어 연대하여 더 강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건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집단이 결속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랑이다.


나는 사랑으로 태어났고, 사랑으로 자랐다. 하지만 내가 처음으로 마주한 사랑은 고통이었다. 그 고통은 나에게 심연으로 다가왔다. 심연은 나를 나 자신과 마주하게 만드는 깊은 연못이었다.

나는 그 심연을 외면하지도, 마주하지도 못하였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사랑은 카오스다.

사랑의 신 에로스는 태초부터 존재하였다. 카오스로부터 나온 자식이 아니라 에로스는 생명의 근원으로서 생명 원리를 창조해 냈다. 하지만 카오스를 변화시키거나 없애지는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녀에게 내 마음을 표현하였을 때 현기증이 극심하고 심장이 요동쳤다. 고백을 거절당한 후에도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사랑이 그토록 조화롭고, 아름답고, 서로 융합할 수 있는 거라면 이 혼돈은 대체 어디로부터 시작되는 건가.


사랑을 정의내릴 수 없는 이유는 태초부터 혼돈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느끼는 연유와 기원은 카오스로부터 도래한 것일지 모른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작업일까?


인간은 혼란스러운 자연 속에서 물리법칙을 찾아내는 존재다. 수만 가지 현상을 추상화시킨 후 아름다운 이성을 통해 한 가지 공식을 구하였다. 그것을 F=ma라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부터 시작한다면 저 공식 하나 구하는데 2000년이 걸린 셈이다.

현재는 2025년. 이성을 통해 사랑을 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나는 내 사랑을 이성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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