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겅질겅 씹어보는 시의 맛

사춘기, 김행숙, 문학과지성사 (2003)

by 클레어

시집을 읽고 난 후 쓰는 글은 차마 "서평"이라고 붙일 수가 없다. 시는 어렵다. 그래서 초등학교 이후로는 별로 써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독후감"을 쓴다.


더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어서 올해는 시를 천천히 곱씹어가며 읽기로 다짐했다. 올해는 김행숙 시인의 시들을 읽는다. 그녀의 첫 시집은 『사춘기』이다.


각 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시를 하나씩만 인용해 보겠다.


제1부


기억은 몰래 쌓인다


매일 밤 나는 눈을 감지. 그리고 오랫동안 눈을 뜨지 않았네. 어떤 소리가 새어 나갈지 알 수 없었네. 나는 놀러 다녔어. 나는 취미도 개성도 없지.


매일 밤 나는 눈을 감으면서 세상이 감기는 걸 느끼지. 이렇게 간단히 세상이 바뀌는걸 뭐, 하고 중얼거리네. 가로수들이 엎어지고, 길은 혀처럼 도르르 말렸어.


육중한 동물들의 희귀한 교미 장면을 보여주곤 했어도 에로틱해지지 않았네. 뿌옇게 흙먼지만 일었지. 나는 다른 종에게 취미를 느낀 적이 없어. 눈을 감았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느끼는 건 아니야.


애들이 조용히 눈싸움을 했네. 눈은 포장일 뿐이고, 언제나 싸움은 돌멩이를 감추고 있는 법이지. 볼때기가 뻘겋게 부어 터질 듯했어. 새들이 흰 눈밭에 콕, 콕, 콕, 부리를 찍었지만


내리는 눈은 금세 구멍을 메우네. 세상은 여전히 덮여있고, 점점 깊어지지. 매일 밤 나는 눈을 감으면서 세상이 덮이는 걸 느끼지. 그렇게 감춰지고.


나는 오래간만에 눈을 뜨니까 매일 어리둥절해. 그리고 눈곱처럼 떼어놓아야 할 게 있다고 느끼지.


눈을 감으면 세상이 꿈으로 바뀐다. 하지만 눈을 감았다고 해서 나의 본질이,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곳에 눈이 내린다. 돌멩이와 새의 부리는 폭력적이지만, 폭력의 구멍은 금세 메워지고 감춰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꿈속에서도 점점 깊어지고, 꿈을 깨고 난 후에도 꿈은 눈곱처럼 여전히 찌꺼기처럼 내게 매달려있다.


제2부


거짓말을 위해서


그를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 사소해 보이는 말에도 그는 지나치게 집착해서 뼈를 본다.

말은 지붕이지. 지붕의

홈통으로 흘러드는 비가 그대의 스위트홈을 적신 적이 있는지. 나는 거대한 비구름을 동반한 태풍처럼 그대를 강타할 예정에 있다. 세상에 단 하나 있는 집을 위하여 집중호우로 쏟아질 준비가 되어 있다. 비는 뼈다.

그의 말도 지붕인가? 뼈 같은 비, 비 같은 뼈가? 자문할 뿐 나는 반문하지 않았다. 아직 그를 화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소심한 남자는


사소한 말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뼈를 본다. 비극은 사소하게 시작된다. 취중농담처럼. 취중의 힘없는 뼈처럼.

완벽한 거짓말을 위해서 나는 수시로 體位를 바꾸었으며 까불대는 풀처럼 명랑했다. 그는 이미 내 거짓말 앞에서 뼈도 못 추린다. 그는 맹목적인 구름. 맹목적으로

빈집에 내리치는 비가 집을 점령한다. 생각보다 쉬운 여자군, 그는 취해서 말했지만 나는 집 바깥에 있다. 나는 드디어 반문한다. 뼈로 집을 짓는 건 너무 야만적이지 않은가? 당신은 사람을 너무 순진하게 믿은 건 아닌가?


2부에는 관계에 관한 시가 많다고 느꼈는데, 그중 가장 공감이 갔던 시다. 남자와 여자의 미묘한 관계를 이보다 더 세심하고 선명하게, 무엇보다 독창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 이 시는 나를 괜스레 쓸쓸하고 고독하게, 그러면서 동시에 이상한 만족감에 키득키득 웃게 만들었다.


제3부


그가 홀연, 두꺼워졌다


턱을 약간 치켜든 채, 그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마주 앉아 있었지만 그의 바깥만 편안해서 바깥만 보았고 다문 입과 벌린 입 사이에 일어난 변화를 알 수 없었다. 그의 바깥에서


딸랑, 종이 울리고 한 쌍의 남녀가 들어왔다. 여자가 긴 머리채를 흔들자 눈이 떨어졌다. 까페 바깥에 내리는 눈이 아주 조금 까페에서 녹고, 테이블 위의 촛불들은 아무도 장난치지 않는데 깜짝깜짝 놀란다.


어쩌면 사람들은 모두 입을 뻐끔거리며 조금씩 바람을 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비껴간 것을 보았을 뿐, 그가 본 것을 보지 못했다. 내 등 뒤에서 갑자기 불이 났을지도, 불 속에서 기어나오는 아이의 눈빛과 마주쳤을지도, 불붙은 팔에 달린 손이 그를 향해 오그라들고 있었는지도.


죽어가는 거지가 뿌연 유리창에 이마를 뭉개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거지의 붉고 더러운 이마만 투명했을지도 모른다. 벌어진 그의 입 모양이 그가 붙잡힌 세계를 축소해 보여주었으므로, 어떤 음성도 새어나오지 않는


심연을 드러내었으므로 그는 도드라졌다. 그는 여기를 약간 튀어 나갔지만 우리는 모두 바람을 불고 있는 사람일지도,


김행숙의 다른 시들과는 다르게 내레이션이 많은 시다. 초기 시다운 시라고, 그래서 아쉬운 점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 시가 좋았던 것은 카페에 그와 마주 앉아 있는 그 순간에, 우리가 영영 소통할 수 없음을 느낀 그 감상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영 타인이고 그는 아마도 자주 홀연, 두꺼워지겠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을 한다.


제4부


폭풍 속으로


으으으 달릴 뿐이다 입에서 쇠 냄새가 난다 무엇에 대한 맹목 때문인가? 무엇에 대한 공포 때문인가?

무엇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무엇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으으으 느낀다 내 속도는 잡아끄는 머리카락의 힘으로 추정할 수 있다

두피가 힘차게 당겨진다 나는 變身을 도모한다

입에서 입에서 쇠 냄새가 난다 나는 순수해진다 나는 一點으로 수렴될 것이다

집중은 부분적인 마비를 동반한다 심장이 뛰는 속도에 비하면 으으으 내 동작은 슬로우 모션이다 어떤 것도

먼저 멈추지 않겠다 나는 지금 무엇에 대한 直前이다 아직


한 시집의 마지막 시에 걸맞은 느낌이다. 속도가 느껴지고 감정이 느껴지고 어떤 결의도 느껴진다.
시인이 시를 쓸 때 이런 마음이 들었을까? 지금 나도 이런 느낌이 든다. 채 끝마치지 못한 마지막 문장은 마치 화자가 폭풍 속으로 들어가 우리가 그의 말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것만 같다. 나도 아직




김행숙 시인의 시들은 의미를 파악하려 하지 말고 느끼라고 한다. 분석하고 의미의 층위를 따지고 상징을 발굴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정말 어려운 시들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어떤 시를 읽든 공명하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었다. 분명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데 마음이 묘하게 동한다.

나는 그녀의 시를 질겅질겅 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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