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수캐마냥 인생이라는 삶이라는 길을 걷고 있다 보면 문득 지나간 옛 여인이 떠오릅니다. ‘네, 맞아요.’ 첫사랑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그 순간에는 첫사랑이라 부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저 그런 흔한 연애를 한 상대였는데 젊은 날에 낭만을 속삭이며 푸르던 하늘 바다 산 들 바람을 찾던 보양식 같은 사랑이었죠 하지만 그 당시 그 보양식 같은 연인과 사랑을 할 때 첫사랑이라 부르던 마음 한편에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문득 우연히 지나던 골목길이 카페가 레스토랑이 바다가 등등등 우연히 동선이 겹칠 때 가슴한켠에 있던 첫사랑이 삐리리 하고 저주파 안마기처럼 자극될 때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자연스럽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평범’이라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말이 아닌 뼈가 저리도록 알정도 되었을 때 세상에 풋풋한 모든 것들을 볼 때면 지나간 옛 여인들과 했던 추억들이 생각이 많이 납니다. 신기한 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랑이 아니었고 사랑이 아니었다고 생각한 것이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진실을 알 수 있는 것은 은은 한 고통 속에서만 알 수 있나 봅니다.
어렸을 적 어른한 분이 늙으면 추억으로 먹고 산다며 바보 같은 짓 멍청한 짓을 해서라도 추억을 많이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도 막연하게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겉으로는 네~네라고 했지만 속으로 욕 아닌 욕을 했더랬죠. ‘그걸 누가 몰라 그럽니까 추억 쌓다 늙어 고생하면 책임질 거예요.’라고 말이죠
양갈래길에 서있는 기분이 참으로 묘합니다. 차라리 양갈래 길이에 서있다는 것을 알 수만이라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두 눈에 똑바로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매번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나에 길만 있다고 생각한 체 뒤도안 돌아보고 뛰고 걷고 뒹굴고 하다 어쩌다 뒤돌아 보면 내가 왔던 길 말고도 또 다른 많은 길이 있었다는 걸요,
애매하게 내리는 비 꾸역꾸역 비에 젖지 않게 노라 애매하게 우산을 쓰며 길을 걷다 보면 애매하게 옷이 젖어 찝찝하게 걷게 됩니다. 그러다 우연히 값비싼 차에서 밖을 바라보는 내 나이 또래에 사람을 보며 어쩐지 먼가 기분이 더 이상해집니다. 그 아이를 빤히 쳐다보다 보니 그 아이가 유심히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아 그것이 무엇인지 시선을 따라 쳐다보는 쪽을 봐라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한 아이가 옷이 홀딱 젖은 채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주위에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옷이 더럽혀지든 말든 상관없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에 반응은 각기 달랐습니다. 누구는 웃고 누구는 인상을 찌푸리고 누구는 구경하고 누구는 도망 같습니다. 문득 차에 타고 있던 아이에 표정이 궁금해졌습니다. 표정을 보며 알다가도 모르는 게 인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대단한 사람 같습니다. 세상에는 개나 소나 할 수 있는 말들 중에 세상을 관통한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말들이 많습니다. 딱 그것만 지켜줘도 세상을 거저 먹을 정도로 쉽게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반대로 쓸데없는 철학 또한 많다는 게 함정입니다. 맞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틀리고 틀린 것 같지만 맞는 말들도 많습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고 지금은 맞지만 그때는 틀린 말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어지럽고... 어지러운 것 같습니다.
“넌 참 이상한 것 같아”
“왜?”
“정작 꼬르륵 소리가 날 때는 음식에 대한 어떤 말을 하지 않으면서 배 터져 죽을 지경인 순간에만 이것도 저것도 먹소 싶다고 이야기하니깐 말이야”
“그건 배고플 때는 이것도 저것도 먹을 수 있지만 배 터지기 일부직전이 지금 이 순간에는 이것도 저것도 못 먹으니 그렇지”
난 은둔형 외톨이였다. 원룸에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하늘만 보였다. 난 그래서 좋았다. 세상에 간접적으로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세상을 볼일이 없어 종말이 왔는지 그 누구보다 늦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