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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PE Sep 15. 2024

3. 러시아

3-5. 또다시 횡단열차,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를 타자마자 잠이 바로 들었다. 처음 눈을 떴을 때 여러 명의 러시아 여성분들이 조곤조곤 얘기하고 있는 게 보였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앉아있는데 그분들이 어떻게 열차를 타게 됐는지 물어보셨다. 피곤했는지 얼마 안 가 다시 곯아떨어졌고 잠결에 사람들이 왔다갔가 하는 인기척을 느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무뚝뚝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남성분이 보였다. 먼 거리를 이동하는 사람이 많았던 저번과 달리 이번엔 짧은 거리를 이동하며 타고 내리는 사람이 많았다. 잠결에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지 상태에서 자리를 채웠던 그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Kiki와는 종종 기차 안에서 만났다. 만날 때마다 그는 배가 고프다고 했다. KiKi는 키도 작고 말랐지만 엄청난 대식가였기 때문에 열차 안에서 먹은 음식 만으론 배고픔을 달래기 부족했을 것이다. 어떻게 저렇게 조그마한 체구에 음식이 많이 들어가는지. 가지고 있는 빵을 준다고 하면, 싫다고 했다. 빵을 좋아하는 나와 Kiki와 다른 점 한 가지를 더 발견했다.


이미 횡단열차의 생활을 겪어봐서 그런가 두 번째 횡단열차에서 시간은 비교적 빨리 지나간 느낌이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추억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른다.






Kiki는 나를 카우치 서핑의 세계로 입문시켰다. 카우치 서핑이란 여행지에 방문할 일정이 있는 사람이 현지인에게 컨택하여 그 집에 숙박하는 걸 말한다. 여행자는 무료로 숙박을 해결할 수 있고 현지인은 문화를 교류할 수 있기에 서로 윈윈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잘 알지 못하는 상대와 만나는 것은 어느 정도 위험을 수반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자기소개와 카우치 서핑 후에 받는 리뷰가 공개되어 있고, 상대방은 이를 보며 만나도 괜찮은 사람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렇게 하더라도 완벽히 안전하다고 할 수 없긴 하다. 그렇지만 최대한 경비를 절약해 오랫동안 여행을 하기 위해선 카우치 서핑이 꼭 필요했고, 혹시 반대하시면 안 되니 부모님께는 이를 숨겼다.


모스크바를 거쳐 도착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첫 카우치 서핑은 어린 아기가 있는 가정집이었다. 평일은 남편과 아내가 번갈아 가며 출근을 하며 아기를 돌본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맞벌이 부부가 출근 자체를 번갈아 가면서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데 러시아는 육아를 위한 출근 환경이 잘 갖춰져 있나 싶었다. 아기와 함께 놀아주기도 하고 남는 시간엔 주변 관광지를 둘러봤다. 러시아 부부는 호의적인 분들이셔서 크게 불편한 점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언젠가 카우치 서핑을 해야 하지만 막상 실제로 하기 조금 겁이 났었는데, 첫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다음엔 혼자도 잘해봐겠다고 마음먹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기점으로 꽤나 긴 시간을 함께한 KiKi와 헤어지게 되었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KiKi는 기차를 타고 발트 3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러시아에서 한 달간 일정이 끝이 나고, 유럽에서의 다음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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