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바이칼 호수
들판을 달리고 물을 가로질러 알혼섬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져있었다. 미니밴은 섬에 있는 숙소들을 차례로 들렀다. 벤이 니키타하우스에 서자 얼른 짐을 챙겨서 내렸다. 아늑한 느낌의 통나무집이었는데,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깊숙한 곳에서 길을 헤매다 만난 반가운 인적 같은 숙소였다.
체크인을 하는데 스텝분이 말을 걸었다.
"마침 너랑 비슷한 또래의 친구가 여기 왔더라고. 둘이 친구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룸메이트로 배정해 줬어"
방에 들어오니 룸메이트는 없고 그의 짐만 놓여 있었다. 내 짐도 옆에 풀어두고 샤워를 하기 위해 샤워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무도 쓰고 있지 않아 바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횡단열차를 타고나서부터 씻지 못했던 거니 4일 만에 하는 샤워인 셈이었다. 따스한 물이 하루동안 묵혀온 추위를 싹 날려주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숙소를 고를 땐 다른 건 다 부족해도 따뜻한 물 하나는 잘 나오는지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끼익-
살짝 긴장된 마음으로 방문을 여니 룸메이트가 침대에 앉아있었다. 이름은 Kiki, 대만에서 온 친구였다. 우리 둘은 나이도 그렇고 모험을 떠나 정처 없는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인 점이 비슷했다. 앞으로 일정에 대해 Kiki 가 묻길래 바이칼 호수를 보고 다시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갈 거라고 했다. 혹시 함께해도 되냐고 묻길래 그러자고 했다.
다음날, Kiki와 함께 바이칼 호수 투어에 참여했다. 알혼섬에 왔을 때 탔던 미니밴 같은 차에 우리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탔다. 미니밴이 정차하는 곳마다 내려서 바이칼 호수의 여러 모습을 엿보았다.
날씨가 흐린 탓인지 호수의 물도 탁한 푸른빛을 띠었다. 바이칼 호수는 너무 커서 마치 바다 같았다. 거대한 호수의 일렁이는 물결을 멍하니 바라봤다. 광활한 호수의 잔잔한 물결을 따라 나 역시 잔잔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호수 옆으론 가을 무렵의 시들시들한 풀들이 나있었다. 그 무렵 호수는 오기 전 상상했던 활기찬 모습은 아니었는데 성수기를 훌쩍 지난 계절의 영향 때문인 듯했다.
Kiki는 내리는 곳마다 사진을 부탁했다. 어떠한 각도에서 어떻게 찍어주면 좋겠다며 자세한 설명도 잊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주고 보니 나도 찍고 싶어져 Kiki에게 똑같이 해달라고 부탁했다. 혼자 다니기 때문에 나의 모습은 많이 못 담을 것 같았는데 덕분에 여러 장 괜찮은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Kiki는 마음에 드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렸고 이를 보고 오는 연락에 답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비슷하게 여행을 떠났지만 현실에서 아예 멀어지고 싶었던 나와는 다르다고 느끼는 부분이었다.
바이칼 호수 투어는 끝났지만 모스크바로 가는 횡단열차를 타기 전까진 하루가 남아있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KiKi와 함께 알혼 섬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마을 군데군데 나무로 만든 집들이 서 있었고 대부분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위한 곳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길 위를 둘만 걷다가 마을 우체국에서 주민들을 발견하고 알혼 섬도 사람이 사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문을 닫은 가게들 사이로 불이 켜진 한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해결했다. 알혼 섬은 바이칼 호수 외에 할만한 다른 게 없는 것 같다. 비수기라 그랬으려나.
무료한 하루를 보내고 다시 이르쿠츠쿠로 가는 미니밴을 탑승했다. 도착하자마자 그날 밤에 모스크바로 가는 횡단열차를 탔다. 열차 안에서 이번엔 누구를 만나게 될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