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라도 나만의 내면의 기쁨을 꼭 찾기로 해
요즘 한번씩 뇌가 이상해진 것 같다. 깜빡깜빡 . 잊어버리는 건 예삿일이고, 며칠전 백화점에 갔을 땐. 왼손에 받은 향수 시향지의 향을 맡기 위해 반대편 손에 든 휴대폰 냄새를 킁킁 맡기도 했다. 또 한번은 언니와 식사메뉴를 고르다가 메뉴판의 먹음직한 돈까스 사진을 가리키며 "우리 냉면먹자"는 말이 갑자기 불쑥 튀어나왔다 . 이쯤되니 치매보험부터 얼른 들어야겠다는 불안함에 콜센터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사는 마치 ai로봇이 말하듯 일정한 톤으로 빠르게 설명했다. 내가 파악한 핵심 내용은 치매 경증 진단에도 천만원을 본인에게 제공하고. 중증 이상일 땐 천만원의 진단금과 함께 매달 백만원의 생활비가 지원된다는 것. 그런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저기... 어차피 치매가 중증 이상이면 보험을 들었다는 사실조차 다 잊어버리지 않나요??"
그러자 상담사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중증 이상이면 당연히 기억을 못할 수 있죠. 그래서 치매보험은 가족을 위해서 드는 거예요~~"
이어진 그녀의 다음 질문을 듣고서 나는 잠시 대화의 방향을 잃었다.
"그래서 혹시 중증 치매로 본인 수령이 어려울 경우엔, 대리인 수령도 가능한데. 미성년자가 아닌 대리인은 누구로 설정하시겠습니까?보통은 남편으로 ... "
"....."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인간이란
누구나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ㅡ양귀자의 '모순'책에서ㅡ
긴 외로움과 침묵의 시간, 그리고 내 기억력에 한몫 했을 그이보다는. 미성년자인 초등아들이 보험 대리 수령인이 되는 그 날까지 난 기다리기로 한다. 그 사이 치매라는 불청객이 나를 찾지 않게 스스로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겠다는 다짐 뿐. 우선 유튜브를 켜고 치매에 안걸리는 법, 뇌의 노화속도를 늦추는 법, 스트레스 덜 받는 법 등 수십개의 영상을 틀었다. 그리고 내가 얻은 최종적인 결론은, 역시 꾸준한 운동, 독서, 글쓰기, 일상대화 나누기, 우울해 하지 않기 등 으로 결론을 내렸는데. 그중에서도 '새로운 활동하기'에 대한 내용이 눈길을 끌었다
다행히 며칠 뒤.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팬미팅이 곧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고로, 난 태어나서 단 한번도 연예인의 팬미팅을 가본적은 없다. 예전에 언론관련 일을 했을 때도 시사회나 간단한 프레스 공연은 갔지만. 결혼을 하고 아줌마가 된 이후에는 연예인에 대한 설렘을 잊었기 때문일까. 하지만 내가 우울할 때마다 들었던 노래 '좋아''를 인연으로 나는 지금도 제이팍을 좋아한다.
(그의 팬미팅 소식을 듣던 날, 5분만에 매진이라는 기사에 별 기대없이 예약대기만 걸어두고 반 포기상태로 기다리던 나에게 어느날 갑자기 띠링~~딱 한자리 좌석이 생겼다는 문자가 온 것이다) 그런데 기쁨과 동시에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가씨도 아닌 초등 아이가 있는 아줌마가, 더군다나 자주 깜빡깜빡하는 기억력을 장착한 채 ktx와 택시를 갈아타며 오직 그를 보기 위해 낯설고도 먼 공연장을 홀로 찾아가려니 당연히 고민될 수밖에.
그렇긴 해도.. 참 신기하다. 팬미팅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갑자기 엔돌핀이 솟는듯 심장이 두근거리고 설레는 느낌은 오랜만이다 ㅎㅎ 남편 아닌 사람에게 '오빠'라고 우렁차게 외칠생각을 하니 잔뜩 움츠러들었던 마음들이 상쾌해지는 것 같다. sexy하면서 holy하고. 매사에 성실근면한 그를 떠올리며. 그동안 웃음을 잃었던 얼굴에 미소가 활짝 만개하는 나를 본다. 그리고 내 손은 어느새 ktx 왕복기차표를 예매한다.
언젠가는 진짜 치매가 찾아 오더라도. 내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를 좋아하는 연예인의 팬미팅에 가는 일. 그 기쁘고도 설레는 과정들은 아마 내 기억에서 가장 또렷한 신경회로를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8월 11일 오후 5시 . 박재범의 팬미팅을 조용히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