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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Apr 23. 2022

확고하다는 확고한 단어

여행산문. 여행에세이


짧은 런던 방문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왔다. 이번 런던 행에서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내게 남은 건 테이트 모던 미술관뿐이다. 이상하게도 런던의 거리나 음식점 등은 내게 인상적인 곳이 없다. 하지만 테이트 모던 미술관 만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다. 미술관은 당연히 전시를 보러 가는 곳이지만 테이트 모던은 좋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물론 그 건축물 자체도 거대한 미술품처럼 느껴진다. 나는 공장을 개조해서 만든 그 미술관이 좋았다. 건축을 좋아해서 그런지 그 안에서 내부의 벽이나 바닥 등의 재질, 계단, 난간, 창틀 등의 디테일을 보는 것도 전시를 감상하는 것만큼 좋았다. 테이트 모던은 한마디로 단단한 느낌이 있다. 거대한 콘크리트 매스 하나가 툭 놓여있는 느낌. 무겁고 견고해서 결코 가벼운 이벤트 같은 건 취급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좋았다.


식어버린 파리의 방에서 담요를 덮고 책을 보다가 노트북에서 오래된 영화 파일을 발견했다. 요시토모 나라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나는 그날 오후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보았던 요시토모 나라의 포스터가 생각났다. 아마도 그건 그저 복사해서 인쇄한 후 싸구려 액자에 끼워 팔고 있는 걸 것이다. 작가는 존재조차 모르는 수많은 불법 카피들이 지구 곳곳에 돌아다니겠지. 난 이미 보았던 영화지만 오늘 밤은 이 영화를 다시 보고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영화를 다 보고 나니 가슴이 뛰고 많은 생각이 들어 불을 모두 꺼도 잠이 드는 게 쉽지 않았다. 난 그의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 영화에 나온 많은 여성 팬들처럼 열광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그가 몇 살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궁금한 적이 없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요시토모의 말들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의 생각의 핵심은 바로 ‘난 지금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수 십 배 높게 평가되어 있어 과분하다는 것, 그리고 이젠 예전만큼 확고하지 않고 여러 가지에 휘둘린다고 느낀다는 것. 그래서 보다 주변이 아닌 자신에게 확고해야겠다고 자꾸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난 바로 그가 말하는 '확고함'이라는 단어에서 숨이 턱 막혔다. 나는 과연 나 자신에게 확고한 적이 있었나. 좌절과 번민을 수도 없이 느끼면서도 결국 나는 나 자신에게 끝없는 타협을 하며 걸어오지 않았던가. 모든 관계와 일상의 조건에 무감한 채 그저 확고하게 작업에만 몰입한 시간은 한순간도 없지 않았을까.


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의 진심이 무엇이며 무엇을 가장 갈망하는지도 그의 목소리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이 원하는, 자신이 만족할만한 그림을 그리는 것. 그저 그것 하나뿐인 것이다. 그로 인해 가족이, 친구가 힘들어지고 자신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멀어져 간다 해도 말이다.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리들의 의지를 가족과 친구와 연인을 위해 스스로 꺾고 있지 않은가. 나의 삶은 누구를 위한 삶인지, 진정 나를 위한 삶인지 진지하게 돌아본 시간조차 없었지 않을까.


다큐멘터리에는 인터뷰어가 요시토모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터뷰어는 요시토모가 독일에서 공부했다는 얘기를 꺼내면서 그의 교수 이름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당신은 그 지도 교수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나요?"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난 그 장면이 이 다큐멘터리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요시토모는 인터뷰어의 질문을 듣자마자 너무나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인터뷰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요시토모는 당신 같은 사람 지겹다는 투로 대답을 한다. "나는 교수로부터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았습니다." 얼핏 들으면 마치 학창 시절에 공부를 등한시했거나 교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인터뷰어들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눈치챘는지 질문을 이어가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순간적으로 질문이 유치했음을 깨닫고 많이 창피했던 것 같다. 사실 이런 일은 요시토모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 아 그 교수 제자 구만!, 누구누구 교수님은 아는가? 등 일단 학연부터 묻는다. 어떤 사람이 어떤 대학에서 어떤 교수의 수업을 들었든지 그것이 작가의 작품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우린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나는 그것이 마치 작품보다 액자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렇게 교수, 갤러리 관장이나 편집자, 출판사 사장과의 인연이 자신의 작업을 하는 것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그렇기에 "보다 주변이 아닌 자신에게 확고해야겠다고 자꾸만 생각하고 있다"는 요시토모의 말이 나는 너무나 이해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반적 환경에서 사람이 자신과 자신의 작업과만   일이 되어 몰입한다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확고해야 한다는 것을 더라도 대다수 사람들은 오늘도 자신과 마주 앉아 포커판을 펼치고 있을 뿐이다. ", 타협은 그만하고 이쯤에서 카드를 내려놓으시지."


/ 글, 사진. 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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