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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Apr 16. 2022

여행자의 가방.

여행산문. 여행에세이

"우리가 삶의 길에서 들어야 할 건 마음과 생각의 무게만으로 충분하다."




많은 사람들이 가방을 들고 다닌다. 그 가방이 작든 크든 외출할 때면 들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러다가 어느 날 어떤 계기로 인해 가방 없이 빈손으로 외출하면 몸이 너무나 가볍고 편안한 걸 느끼게 된다. 그런데 그 가뿐한 느낌과 자유로움은 그렇게 아무 가방도 들지 않은 날에서야 느끼게 되는 것이지, 가방을 들고 다니는 평소에는 상상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의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그 안에 들어있는 모든 것이 그날 외출해서 다니는 동안 모두 사용하는 것들일까? 아니면 혹시라도 필요할까봐 챙긴 것들인가?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많은 것을 들고 다니는 걸까. 어깨도 아프고 거추장스러운데 말이다.


오래전 인도에 긴 기간 머무른 경험이 있다. 그때 나는 인도에 가면서 무려 75리터 배낭에 짐을 가득 싸서 등에 매고 떠났다. 당시에는 지금과는 달리 내가 원하는 현지 정보를 충분히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론리플래닛과 시중에 두 권 밖에 없던 인도 여행기를 찾아 읽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나는 인도에 오래 머물기 위해 필요할거라 생각하는 것들을 꼼꼼하게 챙겼다. 고추장과 멸치, 라면, 김 그리고 여분의 옷과 신발, 카메라와 오십 롤 정도의 필름, 가벼운 침낭과 모기장도 잊지 않았다.


나는 보통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코스와는 다르게 델리로 들어가지 않고 캘커타로 들어갔고 코스를 정해서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그때그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할 뿐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크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녔으니 힘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소년 하나를 업고 다닌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시간이 지나자 더운 나라 인도에서 커다란 배낭을 끌고 다니는 내 스스로가 우스꽝스러워 보이기 시작했다. 식료품이 줄어들면서 배낭은 점점 가벼워졌지만 키가 큰 내가 그 배낭을 메고 도미토리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면 많은 여행자들이 나를 히말라야라도 거쳐 온 사람 보듯이 쳐다보는 것 같았다.

식료품은 어디에 가든 시간이 지나면 떨어지게 되어있다. 내가 가져간 라면은 한 달을 넘기지 못했고, 고추장과 멸치를 포함한 모든 한국 식료품이 삼 개월이 되기 전에 배낭에서 사라졌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여행은 한국 음식을 먹지 못해서 고통스러웠을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인도 음식을 맛있게 먹었고 언제 어디서나 현지 음식만 먹는다고 해서 배가 고프거나 피곤하지도 않았다.


어느날, 나는 인도의 동북부 해안 마을인 푸리의 바닷가 카페에서 차이 한 잔과 사모사를 시켜 먹으면서 무겁고 부피만 차지하는 한국 식재료를 괜히 지고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은 내게 필요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그가 나타났다. 인도에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잘 알겠지만 인도 여행에서 주의해야 할 점 중 하나가 사람인데, 사기꾼, 도둑 등을 조심하라는 말을 많이 접하고 떠난 나는 한동안 인도인의 어떤 호의도 의심하고 많은 부분을 경계하고 다녔다. 그렇게 삼개월 정도 지나자 나는 그러한 조심성이 나의 몸과 짐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방심할 때 일어난다. 그는 스스로 의사라고 했다. 이름은 자후바,이며 말레이시아와 인도인의 혼혈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그즈음 인도의 전통 민간요법인 아유르베다에 대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자후바는 자신이 아유르베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나는 혹시라도 그가 사기꾼은 아닐까 의심스러워서 아유르베다 책에 나온 민간요법 하나를 질문해보기로 했다. 내가 질문한 것은 속이 안 좋아서 토할 것 같은 증상이 있을 때는 어떻게 치료해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정답은 공작의 깃털을 태운 가루를 먹는 것이었는데 자후바는 주저하지 않고 정답을 말했다. 그후 나는 어느정도 의심을 거두게 되었고 우리는 남부 첸나이까지 가는 3일간의 기차 여행의 동행이 되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기차 안에서 더위를 견디며 점점 남부로 향하는 동안 자후바는 잠시 화장실을 가거나 할 때 내게 자신의 가방을 맡기기도 했는데, 그 가방 안에는 청진기를 비롯한 몇 가지 의료기구와 보석 같은 것들도 몇 개 들어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러한 행동이 의도적인 것이었는지 아니면 진심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내게 믿음을 주던 자후바가 도둑으로 변한 건 첸나이를 얼마 안 남기고 지명도 모르는 어느 남부 마을에 정차했을 때다. 기차가 어느 역에 멈추자 자후바는 자신이 플랫폼에 나가서 쥬스를 사오겠다며 가방을 봐 달라고 했다. 나는 더위에 지친 목소리로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그것이 내게는 불행의 신호였는지 깨닫지 못했다. 쥬스를 사 온 자후바는 내게 먼저 마시라고 권했다. 쥬스를 마시고 나자 나는 바로 눈 앞이 빙글빙글 돌 정도로 어지러움을 느꼈다.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게도 그 상황을 의심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자후바가 쥬스에 탄 수면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비틀거리면서 화장실에 다녀온 나는 자후바에게 잠시 잠을 자야겠다고 말하고 바로 쓰러졌다. 그리고 나는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현금과 여권이 들어있는 전대까지 자후바에게 맡기고는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툭툭.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역무원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뭔가 잘못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리니 열차 내에는 아무도 없고 나만 누워 있었다. 물론 자후바도 보이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 하자 다리가 풀려서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가까스로 일어난 내 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배낭도 전대도 모두 사라지고 내 몸 하나 홀로 남은 것이다. 나는 자후바가 내게 약을 먹였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고 역무원에게 소리 질렀다. 그 녀석을 잡아야 돼! 도둑놈! 나는 역무원의 부축을 받고 사무실로 갔고 그곳에서 인도 경찰들에게 경위서를 써서 제출해야 했다. 볼펜으로 힘들게 적은 종이를 받아 든 경찰은 내용을 읽어보더니 책상 서랍 속에 서류를 집어넣었다. 텅!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이 거대한 인도 땅에서 그놈을 어떻게 체포한단 말인가. 나는 분노와 체념이 뒤섞인 감정에 부르르 떨었다. 그때 내 주머니에는 1루피 동전 하나 만이 남아있었다.

곧, 역장이 나를 찾아왔다. 역장은 내게 다음 역까지 무임승차할 수 있도록 서신을 적어 주었고, 나는 역장의 사인이 있는 그 종이를 주머니에 구겨넣고 다음 열차에 올라탔다. 인도에 와서 처음 배낭을 매지 않은 채 열차 객실에 앉은 것이었다. 차창 밖으로 별 빛이 수 없이 반짝이고 있었고 기차는 밤의 평야를 가로질렀다. 배낭이 없으니 화장실에도 자유롭게 갈 수 있었고 그다지 긴장이 되지도 않았다. 단지 믿었던 사람에게 당했다는 사실이 분했을 뿐이다.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어 나는 목적지인 첸나이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몸이었던 나는 역에 있는 노숙자들에게 바닷가가 어느 쪽인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들이 알려 준 방향으로 걸었고 한 시간 넘게 걷고 나서야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걸어가면서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했다. 카메라, 옷, 침낭, 무엇보다 그간 찍은 필름들을 모두 도둑 맞은 게 제일 화가 났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인도의 바닷가에 도착한 나는 모래사장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곧 해가 뜰 것 같았다. 바닷가에서 노숙자들이 얇은 블랑켓으로 몸을 감싼 채 자고 있는 모습이 바다표범 같았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그들 틈에 앉았다. 잠시 후 그들 중 한 명이 일어나서 나를 바라보았지만 내가 가진 것이 없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지 내게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그에게 혹시 담배가 있는지 물어보았고 그는 내게 인도의 서민 담배라 할 수 있는 비디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와 담배를 나누어 피면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수평선이 붉게 달아오르더니 곧 황금색으로 넘실거렸다. 갈매기들이 공중에서 원을 그렸다. 날이 밝아오니 주변에서 잠을 자던 노숙자들이 하나 둘 깨기 시작했다. 나는 십여 명의 노숙자 틈에 앉아서 동쪽 바다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때 나는 아주 이상한 걸 느끼고 있었다. 언제나 경계하고 거리를 두던 노숙자들이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내 곁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그들이 오래전부터 알던 친구 같았다. 나는 그런 감정이 든 이유를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내가 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줄 것도 뺏길 것도 없으니 긴장감도 초조함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그 상태 그대로 자유롭고 평화로웠다. 모든 것을 잃었는데 모든 것을 가지고 있던 어떤 시간보다 편안했던 것이다. 아마도 내가 75리터 배낭을 멘 채 첸나이의 바닷가에 도착했다면 그들 틈에 앉기는커녕 사람들을 경계 하느라 해 뜨는 바다를 제대로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후 나는 한국에서 송금을 받아서 여행을 계속했다. 옷은 필요할  사서 입었으며, 카메라가 없으니 마음에 담기 위해 눈으로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침낭이 없어도 잠을 자는데 아무 불편함이 없었고 고추장이 없다고 끼니를 거르지도 않았다. 나의 짐은 상당히 간소해져 있었다.  많던 것을  잃어버렸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아무 가방도 들지 않은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해 보니 내게는 여권과 현금 외에는 반드시 필요한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 떠나있을 일이 생기더라도 아주 간단한 가방 외에는 들고 가지 않는다. 어떨 때는 장기 여행일지라도 숄더백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들지 않고 집을 나설 때도 있다. 나는 항상 내게 더 필요한 게 없을까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나 더 뺄 건 없을까라고 스스로 질문한다.


사람들이 무언가 계속 소유하려고 하는 욕망은 시기와 질투, 자랑하고 싶은 마음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비롯되지만 그 중에 하나는 불안감이다. 외출하기 위해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화장품 하나를 안 챙겼다는 걸 알았을 때, 왠지 불안한 마음이 발길을 돌려 세울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런 사소한 불안감들이 가방의 부피와 무게를 늘린다. 그렇다면 하루를 보낸 후 집에 돌아와서 오늘 들고 나갔던 가방을 뒤집어 쏟아보자. 그 중에 가지고 나가긴 했지만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 즉시 빼버리고 내일은 그것 없이 외출해도 된다. 행여 그 물건을 치울 때 ‘오늘은 안 썼지만 내일은 필요할지도 몰라.‘라는 마음을 가지는 건 끝없이 스스로를 속박하는 행동일 뿐이다. 그렇게 하나를 빼고, 다음날 무언가 안 쓴 물건이 또 생기면 가방에서 역시 제외시킨다. 그렇게 하나 둘 빼다 보면 결국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정말 일상에 필요한 물건들이다. 여행 또한 일상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짐이 적을 수록 여행길이 아름다워 진다. 사람들은 무거운 것을 드는 걸 싫어하고 어깨가 가벼운 것을 좋아하면서도 스스로 무거운 짐을 만들어 들고 다닌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무도 강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짐을 늘려 자신의 몸을 피곤하게 만들고 또 그것을 잃어버릴까봐 불안해 한다.


나는 다음 여행에는 제일 작은 숄더백 하나만 들고 떠나려고 한다. 그 안에는 노트북, 카메라, 두 벌의 옷, 그리고 충전기 같은 필수품 외에는 넣을 것이 없다. 여행자의 가방은 작을수록 또 가벼울수록 좋다. 공항에서 수하물을 보내고 찾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고, 비행기에 누구보다 쉽게 스윽 탔다가 누구보다 편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가벼운 짐은 여행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준다.

우리가 삶의 길에서 들어야 할 건 마음과 생각의 무게만으로 충분하다.


/ 글, 사진. 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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