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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Apr 21. 2022

공원의 파노라마

여행산문. 여행에세이

"천천히 오후가 지나가고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도, 너와 나 사이에도."




"공원에서 만나."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신기하게도 공원이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말하든지 영어로 말하든지 그 발음이나 억양이 사랑스럽게 고백하는 것만 같은 것이다. 파리는 내가 가 본 어느 나라 어느 도시보다 공원에 다니기 좋은 곳이다. 시내 전체에 걸쳐서 크고 작은 공원이 많아서 어디에 어느 공원이 있는지 알지 못해도 그저 조금만 걷다 보면 쉽게 마주칠 수 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쉬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나는 그렇게 어김없이 만나는 공원들을 볼 때마다 이 도시는 복잡함과 소음에 지친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든 회복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공원을 배치해 놓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혼자 다니는 시간이 많은 나는 사실 누군가와 공원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적이 없다. 홀로 공원을 산책하는  언제나 내게 좋은 시간이지만 나도 가끔은 누군가와 공원에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나는 뤽상부르 공원의 어떤 입구 앞에서 들어가지는 않고 괜히 서성거렸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나오는 사람들이  앞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기다리는 느낌을 느끼고 싶었나 보. 그렇게 있다 보니 왠지 정말로 누군가 손을 흔들며 내게 나타날 것만 같았다. 공원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특별한 설렘이 있다.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대는  느꼈지만 누군가  앞에 다가오더라도 내게 가볍게 인사만   모두  남겨둔  공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디서든 남겨지는  떠나는 것보다 외로운 일이다. 나는 지나는 햇빛을 불러 세워 시간을 물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햇빛은 대답이 없고 슬며시 나를 위해 공원 문을 열어주었다. 고개를 들어야 끝을   있는  나무들이 나를 반겼다.  공원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가득해서 좋다. 나는  나무들과 카펫처럼 펼쳐진 잔디 지나 공원 깊숙이 들어갔다. 그리고 자주 앉는 벤치에 앉아서 나뭇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보았다.


사람들이 오래전에 왔던 곳을 다시 찾는 이유는 그곳에서 있었던 일이나 그곳에서 느꼈던 마음 등을 기억하기 때문 아닐까. 우린 어떤 장소에 백 년 넘게 건물이 존재하거나 어떤 나무가 수백 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위로를 받는다. 나는 뤽상부르 공원의 어느 느티나무 아래 묻어놓은 너의 웃음소리 앞에서 오래된 기억을 나무에 던졌다. 휙, 툭, 데구루루. 던져도 던져도 나무는 고무공 같은 기억을 다시 내게 던진다. 굴러오는 지난날이 낙엽 무덤처럼 쌓이는 오후였다.

공원이 좋은 이유는 천천히 산책하고 벤치에 앉아서 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그렇게 산책하고 앉아서 쉬는 동안 우리는 생각이라는 걸 하기 때문에 공원이 의미 있는 것 아닐까. 사람은 의도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생각하는 존재기 때문에 무심히 걷거나 무감하게 앉아 있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는 걸으면서 또는 앉아 있으면서 수많은 상념에 사로잡힌다. 기억하고, 추억하고, 고뇌하고, 상상하며 쓰지 않는 수많은 단어들을 마음에 새긴다. 공원의 벤치에 앉아 오십 년 전에는 여기 어떤 사람들이 앉았었을까 생각하노라면 손바닥에 묻어나는 먼지들이 "이건 비밀인데"라며 속삭이기 시작한다. 나는 그런 시간을 즐긴다. 그러므로 공원에 가는 건 내게 즐거운 일이다. 어느 날의 공원 산책은 내게 쓸쓸했더라도 나는 그 쓸쓸함조차 사랑한다. 사유와 사색 속에서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쓸쓸한 것, 그게 사람 사는 모습이니까. 그러므로 공원은 그 크기가 작든 크든 그 안에 커다란 파노라마를 품고 있는 것이다.


공원이 좋은 이유 중에는 조용하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 커다란 나무에 숨은 새들이 노래하는 소리, 천천히 걷는 내 발자국 소리는 주변이 조용해야 비로소 들린다. 공원에 가면 그동안 나를 지치게 했던 도시와 관계의 소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고, 텅 빈 고요와 그 안을 지나는 바람소리, 나뭇가지 소리, 새소리, 발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몇 개의 작은 소리만 남았을 때 우리는 평화로움을 느낀다. 그러므로 공원 안에는 스피커를 통해 듣는 방송도 버스킹을 하는 악사도 휴대폰 알림 소리도 없어야 한다. 주위가 조용할수록 사람들은 스스로 말을 줄이고 더 마음속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그랬을 때 어떤 이름은 보다 선명해지고 어떤 이름은 안개처럼 희미해진다. 나는 오늘도 그런 이름을 벤치에 새기고 나무 밑에 묻는다.


다음 날도 나는 꽃비가 내리는 공원 입구에서 너를 기다렸다. 그날도 너는 오지 않았고 나는 홀로 공원을 산책했다. 큰 나무들 사이로 달리기 하는 남자와 유모차를 끄는 여인이 스쳐 지나갔다.

천천히 오후가 지나가고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도, 너와 나 사이에도.


/ 글, 사진, 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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