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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서 Apr 01. 2022

길 밖의 사람

여행산문. 여행에세이

"눈에 보이는 길만이 길이 아님을 알 때, 숲 속에 생긴 동물들의 오솔길도 멋진 길임을 깨달을 때, 모두가 뛰어간 저 길을 나까지 꼭 따라서 달려갈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이다."




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파리의 공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파리에는 많은 크고 작은 공원들이 시내에 펼쳐져 있고 도시의 양측 끝에는 볼로뉴와 뱅센느라는 커다란 숲도 있으니 이토록 공원만 보아도 가히 아름다운 도시라 할 만하다. 커다란 나무가 있는 공원을 거닐다 보면 천천히 걷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무릎에 누운 애인의 머리를 쓰다듬는 연인 등 하나같이 사랑스러운 모습들로 가득하다. 그렇게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다 보면 걸어가든 뛰어가든 산책로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잔디밭에 들어가거나 나무들 틈으로 사라지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곱슬머리인 내게 머리 좀 빗고 다니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에게 참다못해 짜증을 낸 적이 있다. 난 곱슬인데 왜 남들과 똑같은 머리를 하라는 건지. 자라면서 내가 그림에 빠져있을 때 어머니는 화가는 굶는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이후 음악을 할 때 어머니는 오늘도 딴따라 만나러 가냐고 하셨다. 어른이 된 후 어느 날, 내가 어느 문예지 시상식장에서 수상소감을 발표할 때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셨다. 난 그것이 그제야 어머니가 나를 이해하는 눈물이구나 생각했지만, 그날 이후 어머니가 내게 바라신 건 시가 아니라 무엇을 하든 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길 바라시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급격히 힘들어진 집안 형편 탓에 어머니는 내가 크면 돈을 잘 벌기를 바라셨다. 그리고 어머니가 생각하기에 돈을 잘 버는 방법은 다른 사람들처럼 큰 회사에 취직을 하고 안정적인 월급을 받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늘 걱정의 말을 해주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게 그것은 걱정이었을까. 어쩌면 그 많은 걱정의 소리들이 내 삶을 방해해온 건 아닐까.


길 밖으로 걷는 것을 좋아하는 소년이 있었다. 길 밖을 걸으면 바람소리도 풀냄새도 나무 그림자도, 맨발에 닿는 자갈의 느낌도 좋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길 밖으로 걷는 아이에게 어서 길 안으로 들어오라며, 길 밖은 발이 아프고 힘들다며 걱정의 손짓을 했다. 그러다 마지못해 길 위로 소년이 올라오면, 길 위를 걷던 사람들은 길 밖의 소년을 구했다며 스스로 뿌듯해했다. 그리고 소년이 길 위에서 남들보다 빨리 걸어서 그 길의 끝에 제일 먼저 도달하기를 바라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소년은 길 위를 걷는다. 자신을 사랑하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수많은 걱정과 응원의 소리에 미안해서라도 남들처럼 걷고 또 걷는다. 하지만 가다 보면 길 밖 저만치 바람에 흔들리는 꽃이 보이고, 자귀나무를 둘러싸고 춤을 추는 나비들이 보였다. 한걸음만 옆으로 걸으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소년은 안타까웠다. 소년은 걸음을 멈춘다. 그렇게 멍하니 길 밖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함께 걷던 사람들이 다시 외친다. 정신 차리라고, 멈추면 큰 일 난다고, 남들보다 뒤처지면 창피하다고, 늦게 걸으면 결국 밥을 먹지 못할 거라고. 다 너를 위한 말이라고, 다 너를 위한 말이라고. 소년은 다시 걷는다. 그러나 걸으면 걸을수록 길 위를 걷는 자신이 싫었다. 그렇게 반 이상 길을 걷고 나서야 자신을 걱정해주는 많은 목소리들이 실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고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재능과 천성이 다르다. 그런데 왜 모두 같은 모습으로 행복해지길 바라고 기원해주는 걸까. 나는 가족과 친구 등 주위의 이와 같은 걱정의 말을 "걱정이라는 이름의 방해."라고 칭하고 싶다. 

우리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선배라는 이름으로, 동료라는 이름으로, 심지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걱정이라는 이유를 대며 사랑하는 사람이 진짜 가야 할 길을 막고 있을 때가 많다. 지금 당신은 환쟁이는 가난하다며, 딴따라는 천대받는다며, 글쟁이는 굶는다며 당신이 아끼는 사람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는가. 때로는 우리의 작은 걱정과 관심조차 어떤 사람의 인생에게는 커다란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길 위를 걷기를 바라는 가족과 친구와 동료와 선배들에게 길 밖에 서서 “도와줘”라고 얘기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도와줄 테니 “어서 길 위로 올라와.”라는 대답뿐일 때 길 밖의 사람은 좌절한다.


눈에 보이는 길만이 길이 아님을 알 때, 숲 속에 생긴 동물들의 오솔길도 멋진 길임을 깨달을 때, 모두가 뛰어간 저 길을 나까지 꼭 따라서 달려갈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워질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살지만 정작 그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더 많이 먹기 위해, 더 많이 인정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다른 사람을 밟고 보다 빨리 같은 길의 끝에 도달하려고 애쓰고 있지 않은가천재로 태어나 점차 평범한 사람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이 시대는 성장이라 부르고 있다.


공원 구석에서 길 밖을 걷는 소년을 보았다. 소년은 나무를 만지기도 하고 걸어가는 공작새를 따라 뛰기도 했다. 소년이 연못에 다가가자 오리 한 무리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소년이 남들과 같은 길 위를 걸었다면 날아오르는 오리의 날개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 글, 사진. 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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