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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의 숲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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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회귀 Mar 03. 2023

나 (+1day)

혼자일 때는 혼자를 모른다.

극심한 우기와 건기만 존재하 어떻게 될까?




익사할 만큼 감정이 차올라 감당할 수 없. 탈진으 허덕일 만큼 메말라 빈 껍데기만 굴러다닌다. 극심한 우기와 건기만 존재하는 마음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하고 있다. '이미 적당한 햇빛과 물을 마시며 충분히 양분도 공급받아 잘 자랐다.' 라고 생각했기에 잠시 휘몰아치는 기상이변에는 숨죽여 버티고 견디면 지나갈거라 믿었다.


착각도 그런 착각이 없다.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음을 인식하던 날 '지금의 나로부터 신을 분리시켜야겠다.'생각 몰려왔다. 언어의 장벽 없이 안전하게 고립되어 혼자 머물 수 있는 피난처. 이것저것 알아보지도 않고 제주도 비행기표와 한달살이 숙소 예약 마치고 1년 무급휴직을 신청했다. 휴직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의아스럽다는 듯 이유를 물었다. "직장생활 20년 차를 맞이해 쉼 없이 달려온 자신에게 주는 안식년입니다."라는 단편적인 대답으로 그들의 부러움 가득한 인사를 받았다.  


딱히 다른 이유가 없기도 하다. 너무 잘 지내기에, 평온한 일상을 보내기에 그들의 눈에도 스스로의 눈에도 휴직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단지, 순간 알아차린 비정상적인 무언가를 발견했을 뿐이다. 힘듦의 무게는 당사자만이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에.


절박함. 1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짐을 들고 나오는 미련 없는 발걸음을 보며 '내가 힘든 게 맞구나!' 확인받는다.


어떤 결정에는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기에 더 완벽한 타이밍인 거다.


"뭐 하면서 보낼 거예요? 계획 있어요?"

"무계획이 계획입니다. 그냥 쉬려고요."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삶,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만들어진 삶, 나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오롯이 자신을 살펴보기 위해 제주도로 왔다. 봄의 기운을 받아 여린 새싹 삐죽이라도 돋아나려면 토양에 뭐가 문제인지 뭐가 부족하고 과한지 천천히 살펴기회가 필요하니.


혼자인 집에서 벗어나 숙소에 혼자 있다. 평소 듣던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신다. 여기가 제주도인지 집인지 다를 바 없는 밤이다. 하루종일 바닷가를 걷고, 낯선 동네를 무턱대고 걸었던 하루다. '걷다 보면 엉켰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되지 않을까.' 하면서 걸었다. 집에 있을 땐 매번 도돌이표처럼 떠나지 않던 생각들이 끝맺음 없이 불쑥불쑥 마음을 휘져어 놓았기에 작심하고 생각하기 위해 선택한 걷기였건만 하루종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소소한 생각조차 없이 텅 빈 마음으로 걸어졌다.

 

똑같이 혼자인 밤, 익숙했던 낯선 단어가 튀어나온다. '혼자', 그동안 혼자여도 혼자임이 이렇게 선명하게 의식되었던 적이 었다. 혼밥을 먹으면서 혼자인 내가 눈에 들어오고 , 풍경 속 그림자 사진을 찍는 카메라를 통해서도 상대적으로 혼자인 내가 보였다. 하루종일 '혼자라는 인식만 했구나!'를 깨닫는다.


온전히 혼자인 익숙한 공간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혼자라는 존재가 낯선 타인들과의 공간 속에서 혼자인 자신이 또렷이 보인다. 옆방에서 유쾌한 듯 대화하는 소리 들리는 찰나, 분명 혼자인 공간이건만 주눅드는 소외감이 느껴진다. 낯설다. 이 소외감이라는 감정 또한.




밤이 되어서야 생각이 많아진 하루사리는 하루가 언제 끝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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