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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같은 이야기: 오픈월드 [해빙기]

by 길고영

말을 삼킨다.

삼킨 말은 내 안에서 천천히 녹아 퍼지고, 상상으로 번진다.


게임을 자주 하진 않지만, 다시 취미가 될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중고로 플레이스테이션을 샀다.

게임기가 생기자 게임이 필요해졌고, 여러 신작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내가 게임을 좋아하던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오픈 월드'라는 개념이 있다는 걸.


오픈 월드가 없던 시절의 게임을 떠올려 본다.

'게임북'이 유행하던 때였다.

그 책을 펼치면 나는 주인공이 된다.

첫 장에서 단서를 얻고, "60페이지로 가세요", "32페이지로 가세요"라는 안내에 따라간다.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한 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또 한 번 같은 세계를 반복한다.


게임북처럼 예측 가능한 결말은 안정감을 준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 아쉽다.

그래서 오픈 월드가 답이 아닐까 생각했다가, 곧 멈췄다.


오픈 월드에는 게임북에는 없는 절망의 가능성도 있으니까.


안전한 경계가 있는 관계와

아슬아슬한 가능성이 있는 관계.


99%의 확률로 100달러를 선택하는 것과,

10%의 확률로 1,000달러를 선택하는 것 사이의 고민.

재미있는 건 한국인만 유독 10%의 확률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말을 목젖에 올린 순간, 나는 오픈 월드의 초입에 서 있었다.


정해진 루트로만 움직이면 안전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결말은 그 길 위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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