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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에 매미

by 마루

치르르르르르르르르르 쓰르르르르르르르르르 차르르르쐐애애애애애 싸아아아아아아아

씌오스씌오스스르르를 쓰으으으으으찌이이이이 피오츠츠츠스스스 르르르르르스피이이

외계어가 고막을 흔든다. 장마가 끝나고 시작된 본격적인 여름의 점령군은 단연 매미다. 우렁차다 못해 고막이 울릴 정도로 떼창을 불러 젖히는 말매미들의 폭격에 귀가 얼얼하다. 특히 TV의 화이트 노이즈와 닮은 말매미의 소리는 조금 잠잠해졌다가도 한 마리가 울면 다른 녀석들이 따라 울기 시작한다. 처음 울기 시작한 녀석이 울음을 그치더라도 옆 나무의 녀석들이 아직 울고 있는 통에 처음 운 녀석이 다시 울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다시 운 녀석 때문에 다른 녀석들도 또다시 우는 무한 재생의 지옥에 빠진다. 누군가가 나서서 잠깐 휴전 협정이라도 맺어줬으면 싶다. 해가 뜨고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 일체 다른 소리는 녀석들에게 잡아먹혀 버린다. 아파트 앞 벚나무 길을 점령한 저들 세레나데의 데시벨은 땅속에 묻혀 있었던 시간과 비례하는 것인가 싶다.

창을 닫으려다가 멈칫, 어디선가 작고 가냘픈 소리가 들려온다. 저 드센 말매미들 사이에 듣기에도 소심한 참매미 한 마리가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누군가를 부르고 있다. 매년, 목청 장군 말매미들 사이에 한 마리의 참매미만이 “밈 밈 밈 미” 울고 있다. 단언컨대 한 마리다. 작년에도 그러더니 올해도 그 한 마리의 참매미 소리가 들린다. 반갑다 아직도 살아 있었던 거니? 아니 그럴 리가 있나. 성충이 되어 고작 한 달을 살고 갈 뿐인데, 작년과 재작년의 그 녀석일 리가 없다.

예전 참매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틈을 두며 같은 패턴으로 울었다. 그 소리에는 나름의 기승전결이 있었다. 특히 클라이맥스 부분을 지나면 점점 페이드 아웃되며 잠시 여운을 남기고 숨을 고른다. 그들의 소리를 듣던 사람도 그에 맞춰 심박수가 편안해졌다. 그런데 도시의 매미들은 드세게 울어 젖히다가도 어느 순간에 예고도 없이 울음을 뚝 그쳐 버린다. 제멋대로다. 내 귀에는 그 쇳소리의 잔음이 한동안 남아 먹먹해진다. 이 우세종에 밀려 요즘 참매미는 해뜨기 전의 이른 새벽에도 울고 늦은 밤에도 운다. 한낮에는 자신의 소리가 전달되기 어려울 것 같아 짜낸 지혜인지 모르지만 대체 잠은 언제 자는지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한여름 잠시 사랑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땅속에서 굼벵이로 인고하는 매미를 탈속의 상징으로 보기도 하고, 땅 위로 올라와서 겨우 한 달가량 살다 죽는 그들을 허무의 대상으로 보기도 한다. 또 세월을 견디며 도를 탐구하는 군자에 비유하기도 해서, 조선시대 왕들은 매미 날개 모양이 위로 간 익선관을 쓰고, 신하들은 매미의 양 날개를 옆으로 한 사모를 썼다. 모두 덕치와 정치를 마음에 품었기 때문이다. 저 한 마리의 참매미는 혹시나 땅속에서 도를 닦고 물리를 깨우쳐 장생불사하게 된 것인가. 어떻게 매년 한 마리의 참매미 소리만 내 귀에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올해도 제 짝을 만날 수 있기를, 조금 더 큰소리를 내 보라고 응원하는 나를 보면서 나의 참매미 편애에 웃음이 난다.


모든 생물의 한살이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어가며 생을 마친다. 그런데 매미의 일생은 어쩌면 젊음이 맨 뒤로 간 것이 아닐까. 죽기 한 달 전에 그렇게 정열적으로 사랑을 찾는 것을 보면 매미에게 늙음은 없고 오로지 열정적인 삶과 장엄한 죽음만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매미의 삶을 인생무상이라 측은해할 수 없을 터다. 인간의 삶도 거대한 우주의 삶 앞에서는 매미의 생애처럼 짧디짧고 무상한 것일 뿐인데.

자기 존재 이유를 열성적으로 온 세상에 알리고 떠나는 매미. 여름만 되면 그 소리에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내가 지금껏 살면서 저렇게 정열적이었던 때가 있었나를 생각하게 한다. 이 세상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생기와 열정을 잃어버리는 순간이 죽음이다. 나도 저들처럼 정열을 다해 목청을 돋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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