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인가 알아보기 위해 희선이 있는 곳으로 나도 빠른 걸음으로 향한다.
“희선아 무슨 일이 있느냐? “
“네 오라버니, 개경 궁궐의 승선이 이곳에서 머물고자 한다는데 언제쯤 올지 확신이 없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머물고는 싶은데, 날짜를 확신할 수가 없다라니? 농이더냐?”
“이보게 자네는 누구로부터 이 말을 들었는가?”
“항구에서 일을 보는 중에 승선 댁의 집사가 와서 그리 이야기했습니다”
“그 머슴은 승선 댁의 머슴이 맞답니까?”
“행색이 그리 초라해보지 않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그런 것 같습니다.”
“이리로 데려오시지요, 제가 직접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호객 일꾼을 돌려보내 승선의 집사라는 자를 데려오라 했다.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자 호객 일꾼과 함께 승선의 집사, 노비 몇 명이 함께 이리로 도착했다.
“그대가 이곳의 객주인가?”
서로의 인사도 없이 다짜고짜 묻는 그의 언행에 기분이 나빴지만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며 답을 건넸다.
“그렇습니다. 한데 날짜를 정하지 않으시고 이곳에 머문다는 승선의 말씀이 이해가 가지를 않습니다.”
“말 그대로이네. 승선께서는 이곳의 소문을 듣고 며칠간 묵어보고 싶다고 하셨다. 하지만 궁궐의 업무가 바빠 그 날짜를 정할 수가 없다고 하시는구나 “
“그렇다면 방하나를 하릴없이 비워둬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 “
“저곳을 보십시오. 이곳에서 묵기 위해 다른 곳에 숙소를 잡고 며칠씩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내가 알바가 아니다. “
“희선아! 객들의 숙박일지를 가지고 이리로 와보거라 “
곧. 숙박일지를 가져온 희선이 옆에 앉아 내용을 살펴준다.
“손님들이 꽉 차있어 아무리 빨라도 이번 달 말은 되어야 방이 하나 나올 것 같습니다. “
“들으셨습니까? 집사께서는 얼른 돌아가서 이번 달 말까지 이곳으로 오셔야 한다고 승선께 전해드리기를 바랍니다. “
“그럴 수 없다. 승선께서는 시간이 되시는 데로 올터이니 방을 비워내거라! “
“거. 너무 막무가내 아닙니까? 이미 묵고 있는 이들은 어찌하라 말입니까? “
중기가 잔뜩 화가 난 눈으로 집사에게 쏘아붙였다.
“그것은 승선께서 상관할 일이 아니니 너희가 알아서 하면될 일이다. 쫓아내든 뭘 하든, 나는 이미 승선의 말씀을 전했으니 그리 할 거라 생각하며 돌아가겠다. 승선께서 언제고 오셨을 때 큰 불편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
집사는 마치 전쟁이라도 선포하듯이 냉랭하게 자기의 말만을 전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큰일이다. 승선이라 하면 가장 왕의 측근이 아닌가? 그의 말에 왕의 마음이 바뀔 수도 있다고 한다. 만약 방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큰일이니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중기의 근심스러운 말에 희선이 팔짱을 끼고 씩씩거리며 말을 꺼낸다.
“중기 오라버니는 덩치는 산만하신 분이 어찌 그리 간이 콩알만 하오? 승선인지 뭔지 모르지만 이곳을 먼저 오는 사람이 먼저 묵고 가는 곳이오! 아무리 큰 벼슬아치라도 그 순서를 어긋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오! “
“승선이 이곳을 어찌할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닌가? 나라고 어찌 화나지 않겠느냐? 이 누각을 먼저 생각해야 하지 않겠니? “
“……“
중기의 말에 희선은 말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
“중기의 말이 옳고, 희선의 말도 옳다. “
“그게 무슨 말입니까? 어찌하겠다는 말입니까? 오라버니“
“지금부터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나라고 뾰족한 수가 없으니.. “
확신이 없는 말을 남겨두고 나는 바닷가를 향해 걸어갔다. 철썩거리는 파도 롤 보며 생각해 보려 했지만 도저히 답이 나오지를 않는다.
문득 민주 누이가 생각이 났다.
‘그래 민주 누이라면 뭔가 답을 알 수도 있지도 않을까?’
민주 누이가 있는 원을 향해 바삐 달려갔다. 멀리서 봐도 분주히 움직이는 원의 일꾼들은 내가 일할 때보다 더욱 활기가 넘치는 것 같다.
“안녕하신가? 자네 누각이 아주 잘 운영된다고 하더구먼, 그곳에서 방을 얻지 못하는 이가 이곳에 와서 묵으며 어찌나 누각 이야기를 하든지 귀에 딱지가 앉는 것 같았다. 하하하하 “
“에이. 아닙니다. 어르신께서는 건강하시지요? “
“그럼 네놈의 누각 때문에 배가 조금 아프지만 다른 곳을 멀쩡하다. 하하하하 “
원에서 모셨던 객주 어르신과 인사를 나누고 민주 누이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누이 안녕하셨습니까? “
“오랜만이구나. 야심한 시각에 이곳에 온 것을 보니 무슨 문제가 생겼나 보구나? “
“그렇습니다. 승선이라는 귀족이 누각에서 묵고자 하는데 그 날짜를 정하지 않습니다. 아무 때나 자기가 오고 싶을 때 올 터이니 방을 만들어내라 하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
“하. 언제나 그렇듯이 저 귀족 놈들은 자기밖에 모르는구나 “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민주 누이는 귀족들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아니 증오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어찌하여 그런 일이 발생할지 예상하지 못했니? 당연히 누각의 소문이 개경까지 들어갈 것을 몰랐니? “
“네. 이런저런 일들을 살피다 보니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너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 누각은 너의 꿈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니, 누각을 만들 때의 신념을 생각해보거라 “
“신념이라……“
“그래 신념에 어긋난다면 누각이 피해를 보더라도 지켜내야 할 것이고, 이제는 그 신념이 달라졌다면 방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느냐 “
“누이의 말이 창이 되어 제 가슴을 찌릅니다. “
“무슨 말이더냐?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데? 하하하“
“농이 아닙니다. “
“신념이라는 것이 항상 처음과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너를 따르는 이 가 적지 않으니 그들의 삶도 생각해야 봐야 할 것이고, 항상 옳은 선택만은 할 수가 없으니 그것이 객주로써의 큰 짐이다. “
“알겠습니다. 누이. 항상 고맙습니다. “
나는 누각의 나의 숙소로 돌아와서 며칠 동안이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이제 말일이고, 대식국 손님이 나갈 것입니다. 어찌해야 할까? “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간다. 벌써. 벌써. 나는 큰 결심을 하고 희선에게 말했다.
“이 누각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게의치 말고 늘 하던 대로 하거라. “
“역시 오라버니요!! 그럴 줄 알았소!! “
호탕하게 책상을 탕 치며 희선은 객실 안내실로 돌아갔다. 이에 옆에 있던 중기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
“어찌할 바를 생각해냈느냐? 승선의 행차라면 나와 동생들 가지고는 당해낼 수가 없다. “
“당연하지. 어찌 너희가 그들을 상대하겠느냐? 내가 나설 것이다. “
“어떻게? “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그가 한참 한참 있다가 오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 심정은 “
“왜 그들은 이렇게 막무가내인지 모르겠다. 지체가 높으면 높을수록 도덕을 잘 지켜야 하지 않느냐? 그게 맞지 않는 거니? “
“……“
당연한 말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이 단순한 것이 지켜지지 않아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되고, 나아가 나라 간의 싸움도 되지 않는가.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우리 둘은 깊은 한숨을 동시에 내쉬었다. 멀리 바닷가에는 아가씨가 홀로 거닐고 있다. 아가씨도 여럿이 들을 통해 이일을 들었을 터였다.
‘아가씨에게는 피해가 가서는 안될 텐데.’
나는 아가씨에게로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아가씨.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
“아마도 객주가 생각하는 것일 테고 여기 모든 이들이 생각하고 있는 일일 테지요 “
“알고 계셨군요 “
“저는 객주께서 직접 알려주시기를 바랐습니다. “
“서운하셨습니까? “
“네. 객주께서는 무슨 일이 생기면 항상 민주 아가씨를 찾지요. 그리고는 어떤 결정을 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르게 이내 선택을 하십니다. 저는 이곳에 재물이나 헤아리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
“저는 아가씨께서 화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말씀드렸다면 아가씨께서는 어떻게든 해결하려 하셨겠지요 아버님의 힘을 빌려서든. 그러면 어르신께서는 주변의 지인들을 통해서 승선을 설득해 보시려 할 테지요. 설득이 잘된다면 다행이지만 안된다면 어르신도 아가씨도 큰 피해를 볼 것입니다. 누각이야 어디서든 어떻게든 다시 업을 이어가면 되지만 저는 아가씨께서 화를 입는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
“무슨 말씀이 온 지? “
“저는 이번 일에서 아가씨는 빠지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들이 난동을 부릴지 모르니 잠시 자리를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
“그럴 수 없습니다. “
“아가씨 이것은 선택의 여지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올 때를 맞추어 아가씨를 다른 곳으로 보낼 터이니 따라 주십시오 “
“그리하지 않을 것이오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난감해하는 호객꾼을 앞장 세우고 지난번에 왔던 집사라는 자가 큰 가마를 안내하며 누각의 입구로 들어섰다. 많은 호위병들이 뒤따르며 함께 들어왔다.
주위의 모든 이들이 이 행렬을 지켜보며 궁금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집사가 나서서는 객주를 불렀다.
“객주는 나와서 승선을 뫼셔라! “
나는 중기의 동생들에게 우선 아가씨를 먼저 민주 누이가 있는 원으로 보내도록 하고선 그 무리 앞에 나섰다.
“어서 오십시오. 나으리“
“네가 이곳의 객주인가? “
“그렇습니다. “
“이 호태누각의 소문이 멀리 개경까지 들리더구나, 이곳에 오면 몸과 마음을 편안히 쉬게 할 수가 있다고. 허허허 허 “
“그 소문을 듣고 멀리 이곳까지 찾아와 주시니 저희 누각의 모든 이들을 대신하여 감사드립니다. “
“그래. 내 일전에 집사를 시켜 이곳에 머물 것이라 연통을 하였으니, 나의 방이 어디인지 안내하도록 해라 “
“승선 나으리, 당연히 나으리를 먼저 뫼셔야 할 일이지만 이곳은 누구나 지체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순서대로 방을 내어주고 있습니다. “
“그럼 방이 없다는 말이더냐? 내가 미리 연통을 넣었는데도? “
“연통에 대략적인 날짜라도 알려주시지를 않으니 저희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
“방이 비었을 때 객을 받지 않고 비워뒀으면 되지 않느냐? “
화가 난듯한 표정으로 승선이 질타했다.
“그렇게 되면 이방으로 오지 못하는 이가 다른 곳으로 가야 하고, 만약 그곳에서도 방을 구하지 못한다면 노숙을 해야 합니다. 이 누각은 멀리서 교역하기 위해 오는 이들이 편히 쉬고 돌아가게 할 목적으로 지어졌습니다. “
“내가 그들보다 못하단 말이냐? “
“승선께서는 이곳이 아니더라도 벽란원이라든지 다른 좋은 원에서 묵을 수 있지 않습니까? 승선 나으리처럼 지체 높으신 분들이 오히려 저들을 위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멀리서 교역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이들의 지치고 불편한 모습을 헤아려주시기를 바랍니다. “
“이곳에서 묵기 위해 멀리서 왔다. 나보고 돌아가란 말이냐? “
“벽란원이나 다른 원으로 안내해드리겠나이다. “
“괘씸하구나.. “
“나라에는 국법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따라야 합니다. 또한 각 가정마다 집안의 규칙이 있으며 그것을 지키도록 배워왔습니다. 지체가 높으시다 하여 이렇게 규칙을 어기고 방을 내어 달라하시면 나라의 국법을 어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 단말입니까? 나으리 부디 이 누각의 규칙을 따라주시어 만인의 본이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
승선은 더 이상할말이 없는지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집사를 한참이나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내가 무척이나 나쁜 놈이 되었구나. 들어보니 내가 너무 억지를 부렸구나 하지만 지금 이 늦은 시각에 이 많은 인원들이 묵을 곳이 없으니 네가 우리를 다른 곳으로 안내해주었으면 한다. 그리해줄 수 있느냐? “
“그 일은 제가 돕겠습니다. 나으리“
어디선가 나타난 아가씨와 민주 누이와 함께 승선의 앞으로 나타났다.
“저는 옆의 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 원으로 모실터이니 따르시지요. 나으리 이 누각보다는 누추하겠지만 가장 좋은 곳으로 준비했나이다. “
“너는 어찌 알고 이리 왔느냐? “
“제가 모시고 왔습니다. “
아가씨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날짜를 두지 않고 이곳에 묵으시려 하는 나으리의 말씀에 이곳의 모든 이들이 몇 날 며칠을 걱정하고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이곳의 객주는 무엇보다도 규칙을 우선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미리 다른 원으로 모시기 위해 준비했습니다. “
“허허 이곳의 모든 이들이 서로를 위함이 무척이나 감탄스럽구나. 내가 마음 같아서는 저 호위병들을 시켜 객주를 개경으로 데려가 벌하려 했으나 객주의 굳은 마음과 누각의 모든 이들의 마음이 나를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구나 “
“……“
“그대가 다른 원의 객주인가? “
“그렇습니다. “
“나의 일행들이 모두 묵을 수 있겠느냐? “
“네 걱정하 지마시고 저를 따르시지요 “
“알겠다. 아 참 묵기 위해서는 미리 날짜를 정하라 하였느냐? “
“네 그렇습니다. “
“다음 달 중순경에 올 것이다. 며칠간의 차이는 있을 터이지만 그 정도는 양해해줄 수 있겠지? “
나는 희선을 힐끗 바라보았고, 희선은 어찌 알았는지 숙박일지를 보고는 살짝 미소 지어 보냈다.
“네 알겠습니다. 방을 준비해두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 알겠다. “
승선은 집사를 시켜 무리를 이끌고 민주 누이의 원으로 향하게 했다.
떠나가는 승선의 행렬을 보고서야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심장이 떨어져 나가고, 간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내 다시는 이런 일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하……“
어찌나 떨리던지 말도 제대로 나오지를 않았다.
한바탕의 큰 소동이 잠잠해지고, 중기와 송화주를 몇 잔 나누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