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새벽녘이 밝아오고, 바다로부터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제법 상쾌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술 때문인지, 어제의 일 때문인지 날씨와는 다르게 무겁게 짓누르는 어깨를 어루만지며 숙소를 나오면서 중기와 마주하게 되었다.
“잘 잤니? “
“어찌 잤는지 모르겠는데, 어깨가 너무 무겁다. “
“승선이 묵어가겠다고 멀리 개경에서부터 올 정도면 이곳 호태누각이 어지간히 입소문이 난 모양이다. “
“그러게 말이다. 나는 그저 작은 꿈을 꿨을 뿐인데 어찌 일이 이렇게 커져가는지 모르겠다. “
“꿈은 네가 꿨으나 흘러가게 하는 것은 세상의 일이다. 그에 맞춰서 대응할 것은 대응하고,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 “
“그러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네 말이 맞다. “
“그나저나 아가씨께서 네 걱정이 크다. “
“그러시더냐? 지금 어디 계시니? “
“아가씨께서 사무를 보시는 방에 계시다. “
중기와 헤어지고 아가씨의 방으로 향했다.
“편히 주무셨습니까? 아가씨“
“편할 리가 있습니까? 밤새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질 않아 잠을 이루 지를 못했습니다. “
“죄송합니다. “
“사람이 어찌 그리 무모하십니까? 높은 사람이 방을 달라하면 손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하나 내어주면 될 일이고, 아무리 선약을 했다 하더라도 능히 다른 원으로 보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승선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면 객주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수도 있었습니다. “
“죄송합니다. “
“죄송하단 말만 하지 말고 뭐라 말씀을 해보시지요! 이곳은 이제 개경에도 궁궐에도 소문이 자자하게 났습니다. 여럿 귀족과 대신들이 묵어가고자 할터인데 그때마다 이렇게 큰 사단을 내실 작정이십니까? 이렇게 목숨을 두고 내기를 벌릴 요량이십니까? “
“죄송합니다. “
“객주의 목숨으로 안되면 다음은 중기 도령의 목숨이고, 그것으로도 안되면 나나 희선의 목숨이 될 것입니다. 누각 모든 이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객주께서 이루려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
“죄. 그저 평등한 기회입니다.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먼저 들어온 사람의 순서와 기회를 뺏어서는 안 된다는 그런 평등한 기회 말입니다. 너무나도 단순한 것인데 어찌 이것을 어겨가면서까지 다른 이들의 것을 빼앗으려 한단 말입니까? “
“이 나라가 그러한 것을 어찌한단 말이오. 왕이 있고 귀족이 있고, 천민이 있는 그런 나라인 것을요. 게다가 요즘에는 몽고인과 고려인의 차별까지 생겨버린 이 나라인 것을요. “
“……“
“객주께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나, 세상의 현실은 당연한 이치를 따르는 것이 가장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내줄 것은 내주고, 얻을 것은 얻어내야 하는 이치를 좇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습니다. “
“아가씨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
“그런데 저는 분명히 아가씨를 민주 누이의 원으로 피신시켰습니다. 어찌하여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까? 큰 화를 당하기라도 하시면 어쩌시려고요 “
“나도 또한 이곳 호태누각의 일원입니다. 화를 당해야 한다면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
“화는 저만 당할 것입니다. “
“객주만이 당하지는 않게 할 것입니다. “
“……“
“……“
한참을 서로가 바라만 볼뿐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보게. 좀 더 서둘러보게. 이제 조금 있으면 승선께서 도착하실 시각이네. “
“네네. 알겠습니다. “
“요리는 준비가 잘 되어가고 있는 겁니까? “
“부엌으로 가서 확인하겠습니다. “
“음식을 내어드림에도 신경 써야 할 것이다. “
다음 달 묵어가시겠다는 승선께서 드디어 정확한 날짜를 보내주었고,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중기는 누각의 외관에 신경을 바짝 쓰고 있고, 희선은 누각의 내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고 있다. 곽동원은 요리에 좀 더 집중하여 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다.
“객주께서 눈이 발갛게 된 것이 잠을 이루 시지를 못한 모양입니다. “
“네 승선 같은 귀족을 모시는 것이 처음이기에 이리저리 생각할 것이 많았습니다. 한데 날이 밝으니 이리 잠이 쏟아지니 큰일입니다. “
“아 그러십니까? 잠시만 기다려보시지요 “
곽동원은 나를 잠시 의자에 앉아 기다리게 하고 무언가를 가져왔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차(茶)입니까? “
“한번 마셔보시지요? “
“시꺼먼 것이 마시기에는 힘들어 보입니다. “
“향을 먼저 맡아보시고 살짝 맛을 보신다면 더욱 놀라실 것입니다. “
곽동원의 말을 듣고 향을 맡아보았다. 고소하다고 해야 하나 쓰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두 가지의 향이 동시에 난다고 해야 하나...
“처음 맡아보는 향입니다. “
말을 마치고 나서 맛을 보았다.
“읔… 쓰디씁니다. 고삼차를 마시는 것 같아요 “
울상을 하며 곽동원을 바라보았다.
“대체 이 쓰고 시커먼 차는 무엇입니까? “
“갑희(甲喜:오늘날의 커피)라 합니다. “
“갑희? 처음 들어봅니다. “
“얼마 전에 대식국에서 오신 손님께서 드시는 것을 보고 궁금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극구 사양하고, 감추려 하기에 손님이 묵는 동안 매일 찾아뵙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작은 콩들을 보여주시며 갑희(甲喜)라 하는 겁니다. 이 콩을 맷돌에 갈아 그 가루를 끓는 물의 증기를 쐬어주면 이 까만 차가 나온다며 몹시 비싼 것이라 하더군요. “
“아. 그렇습니까? 무릇 차라는 것은 그 맑기가 옥류와 같아야 하고 향이 머릿속을 부드럽게 감싸줘야 하는 것인데 이 갑희(甲喜)라는 것은 색은 까마귀 같이 검고, 향은 머리를 쿡 찌르는 것 같아 그 값어치를 알 수가 없을 것 같은데. “
“한데. 갑희(甲喜)를 마시고 나면 뭔가 힘이 생기는 듯하고, 잠에서 덜 깬듯해도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습니다. 입안은 쓰나 마시고 나서의 기쁨은 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도 갑희(甲喜)라 부르는 것 같습니다. 객주께서 잠에서 못 깨시는듯하니 일단 쓰더라도 한번 드셔 보시지요 “
“아 그렇습니까? 제가 한번 마셔보고 그 기쁨이 얼마만 한 지 알아보겠습니다. “
“네. “
갑희(甲喜)라는 것을 마셔보니 멍했던 머리에 기운이 도는 듯하다. 이것의 효능이 참 대단하다 생각이 들 무렵 중기와 최씨가 멀리서 돌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