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문제는 없었습니까? “
“바닷물을 퍼올리는 장치에 문제가 생겨 소가 돌리지를 못했으나, 여기 최 도령이 능숙하게 고쳐냈다. “
겸손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최 도령의 손을 잡고 고마움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한데 언제까지 그대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을 생각입니까? 항상 얼굴을 보며 함께 밥 먹고 일하는데 이름을 부르지 못하니 참 미안하고 불편합니다. “
“그저 손재주 있는 이에 불과합니다. 객주께서는 개의치 마시고 지금까지처럼 최 도령이라고 불러주시지요. 때가 되면 미천한 이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
그저 이름을 밝히기에는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으려니 생각해서 모두들 더 이상 그의 이름은 묻지 않았다.
저 멀리서 우리 누각의 호개꾼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도착하신 모양이다. 어서 가보자. “
나와 아가씨를 포함해서 모든 직원들이 입구에 나와서 승선의 행렬을 맞이하려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나으리“
“하하하하. 이렇게 맞이하여주니 이곳에 머물 설렘보다 더 기쁘구나. 하하하“
승선은 호탕하게 웃으며 가마에서 내려 나의 손을 잡고 인사를 하였다.
“이렇게 다시 승선을 모실 수 있게 되어 저희 누각의 큰 영광입니다. “
“하하하하. 영광까지야. 어서 들어가십시다. 말로만 듣던 누각의 방을 어서 보고 싶구나. “
“예. 제가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
내가 눈짓을 하자 희선이 앞장서고, 중기와 일행들은 승선의 짐을 들고 뒤를 따랐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방입니다. 계단을 오르셔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만, 그 경치는 금강산을 보시는 것과 비견할만합니다. “
“그렇더냐 자 어서 올라가 보자. “
계단을 오르고 가장 꼭대기에 있는 방으로 승선을 안내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향을 피워 좋은 냄새가 나도록 하였고, 욕조에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좋은 온도를 맞추어 바닷물을 받아놓았다.
바닷가를 향한 큰 창을 좌악 펼치자 멀리서 보이는 수평선이 바다 위에 하늘인지 하늘 위에 바다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승선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말했다.
“말로만 듣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 보이는 것으로만 말하면 궁궐보다 뛰어나다. 가히 순서를 기다려 묵을만하도다 “
“그러십니까? 저희는 내려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승선께서는 이 향내를 맡으며 저 따뜻한 바닷물에 몸을 담그셔서 피로를 풀고 계시지요 “
“바닷물? “
“네. 저희는 바닷물을 끓여서 목욕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소금기와 영양분이 많아서 피부병과 여독을 푸는 데는 그만입니다. “
“훌륭하다. 훌륭해 “
“감사합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
방에서 내려와 곽동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요리를 하고 있는 부엌으로 향하였다. 방해가 될까 봐 살짝 문을 열고 보니 모두들 뜨거운 불과 물을 이용하여 요리에 전념하고 있었다. 식당에서 일하는 이들은 깨끗한 앞치마를 두르고 탁상을 닦고, 청소를 하고 있다.
“이제는 뭐라 하지 않아도 모두들 저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추어 일을 하니 제가 이곳에는 더 이상 필요가 없겠습니다. “
“무슨 그런 말을 하시나? 오라버니께서 하실 일이 왜 없소? 저기 쓰레기들 좀 얼른 치워주시오 “
“아. 아. 알겠다. 이놈아. “
나는 머리를 어색하게 긁으며 쓰레기를 담은 통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일꾼들이 미안한 듯 손을 내밀었지만 희선이 방긋 웃으며 그러지 말라고 말린다.
“하하. 괜찮아요. 괜찮아. 제가 버리겠습니다. “
저녁때가 되고 승선이 한결 밝아진 모습으로 내려왔다.
“이곳의 시설이 참으로 뛰어나다. 이 시설들을 어찌 계획하고 만들었느냐? “
“모든 이들의 솜씨로 이루어낸 것입니다. 저는 그저 꿈을꾼 것뿐이지요 “
“그래 요즘같이 뒤숭숭한 세상에도 꿈을 꾸는 이가 있었구나. “
“나으리. 이곳에 계실 동안은 나랏일은 뒤로하시고 온전히 나으리만의 하루하루를 보내시지요 “
“나만의 하루라. “
“예. 나으리가 주인인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
“그래. 알겠다. 식사를 함께 하겠느냐? “
“아닙니다. 이곳의 규칙에는 손님과 절대 함께 식사를 하지 않게 되어있습니다. “
“규칙? 하하하하 그래 너는 규칙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이였었지. 하하하하하 “
“그럼 저희가 준비한 요리를 내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내가 눈짓을 하자 식당의 일꾼들이 차례로 준비한 요리를 손에 들고 탁상에 내어놓았다.
나는 다시 승선께 인사를 하고 다른 손님들이 있는 식당으로 가서 그들에게 인사를 하며 편히 쉬는지를 물었다. 곽동원이 부엌을 만든 후 이곳의 음식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고려의 음식 위주였던 예전과는 다르게 각 나라의 음식들이 조금씩 추가되었다. 그리고 손님들 각자의 식성에 맞춰 먹을 수 있도록 모든 음식들이 기다란 탁상 위에 놓아두었다. 여러 가지 음식들을 한 번에 맛볼 수 있어 손님들로부터 많은 칭찬과 고마움을 듣게 되었다. 여러 손님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승선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식사는 입에 맞으셨는지요? “
“아주 훌륭하더구나. 예전 궁궐 연회의 음식과 비슷한 맛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곳 벽란도에도 그런 솜씨를 가진 요리사가 있었더구나 “
나는 내심 그 연회 요리를 만든 이 가 이곳 주방에 있는 곽동원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으나 꾹 참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어 감사합니다. 승선의 말씀을 부엌의 요리사에게 전하면 무척 기뻐하고 크나큰 격려가 될 것입니다. “
“하하하하. 그런가? 궁궐의 요리사가 이곳 벽란도까지 올 리가 없지. 암. 하하하하 “
“그렇사옵니다. 하하“
“그래. 그럼 이곳 누각의 정원을 둘러볼 터이니 더 이상 나를 신경 쓰지 말고 자네는 자네의 일을 하시게나. “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
앞마당의 정원으로 향하는 승선의 뒷모습을 뒤로한 채 나는 승선의 말을 전하려 부엌의 곽동원에게로 향했다.
승선은 이곳에서 5일간 머물고 돌아가는 날이 되어 짐을 싸고 있었다. 일꾼들 중 몇몇이 승선의 심부름으로 위아래를 오가며 짐을 나르며 그 일을 도와주었다.
나와 희선은 1층의 의자에 앉아서 그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라버니 승선은 만족해하실까요? “
“그를 본 모든 일꾼들이 그러기를 표정이 매우 밝아 보였다고 한다. 그럼 나쁘지는 않았다는 거겠지 “
“물어보지도 않으셨소? “
“혼자서 보내는 시간에 매우 흡족 해하신듯하였다. 나랏일로 바빠 집에도 잘 못 갔다고 하더구나. “
“아이고. 높은 사람이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닌 것 같소. 어찌 보면 나 같은 년보다도 못한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하고. “
“쉿,! 말조심하거라. “
“오라버니는 너무 겁이 많소. “
“아이고. 이놈아. “
작은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 승선이 웃으며 내려왔다.
“편하게 보내셨나이까? “
“좋은 날을 보내게 해 주어 고맙구나. “
“아닙니다. 부족한 게 있었을까 걱정입니다. “
“이곳 누각의 좋은 시설을 충분히 누려보니 왜 이리 입소문이 많이 났는지 알겠구나, 이름 그 데로 좋고 편안하였다. “
“감사합니다. “
“한데 나와 같은 이 가 와서 이곳에 묵고자 때를 쓸 것을 생각하니 그 또한 걱정이다. 그때에는 나의 이름을 알려주고 양해를 구해 보거라. “
“이렇게까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승선은 숙박요금으로 많은 재물과 쌀을 내어주고는 돌아갔다. 모두들 조금씩 긴장을 하고 있었던지 그가 돌아가자 한숨을 쉬며 안도하는 이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