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호태누각 08화

8화 새로운 요리사

by 철용

아가씨와의 언짢은 대화는 일꾼을 더 충원하기로 한 후부터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한참을 홀로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얼마 안 되어 깨끗이 씻고, 의관을 제대로 갖춰 입은 이들이 희선의 안내를 받아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저들의 부랑 자티가 벗어날리는 없겠지만 저리 깔끔해진 모습을 보니 제법 이 누각의 일꾼 티가 나는 것 같아 흐뭇해진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이곳에서 일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편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오수통에 모인 손님들의 변을 치워야 할 것이고, 각종 음식물쓰레기도 치워야 할 것입니다. 냄새나고 더러운 일 일 것입니다. 하지만 힘든 만큼의 삯은 받을 것입니다.”

“하하하하. 소똥, 돼지똥이나 사람 똥이나 매한가지다. 밤새도록 똥밭에서 누워자는데 이까짓 거쯤이야 별거더냐! 하하하하”

“그러게 말이다. 우스운 일이다.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한 사람의 호탕한 발언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며 동조했다. 걱정했던바와 달리 모두들 흔쾌히 응해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어린아이들은 손님들의 잔심부름을 할 것이고, 여성들은 침구류의 빨래와 방청소를 맡아할 것이다. 이제 저들은 어엿한 호태누각의 일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기존의 일꾼들과 새로 합류한 일꾼들은 도와가며 가르쳐가며 바삐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이제 제법 부랑 자티가 벗겨진 모습이다. 어둡고 지친 표정의 얼굴들에는 밝아 보였고, 그들의 눈에는 점점 생기가 들어가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손님이 남기고 간 조식을 치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한 이가 손님이 남기고 간 전복죽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토록 그들의 부랑 자티를 벗겨주고 했지만 아직 모자랐던가, 아니면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인가. 그냥 지나치려고 하였지만 발은 이미 그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대에게는 아침밥이 부족했던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배가 두둑할 정도로 충분히 먹었습니다.”

“한데 어찌하여 손님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 게요? 혹여나 버려지는 음식이 아까워 그러는 게요?”

“비렁뱅이의 삶을 살다 보면 당연히 이 전복죽은 입안에 들었다 나왔어도 먹어야 할 음식이지요.. 하지만 지금 저는 이곳 누각의 일꾼입니다. 옛일과 구분 지을 정도의 분별력은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는 식당에서 손님들이 먹다 남은 음식들을 버리고,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 근래에 손님들께서 음식을 많이 남기시기도 하고, 어느 날은 죽이나 음식에 입도 안되고 떠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남은 음식을 먹어보고 그 이유를 알고자 하였습니다.”

“흠… 누각에서 음식의 맛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래 음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었습니까?”

“네. 재료가 많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전복죽에는 전복이 부족하여 깊이 있는 맛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내장을 많이 넣어 비린맛으로 가리려 한 것 같습니다.”

“내게 줘보시오.”

“읔”

맛을 보자마자 그 비린맛에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나는 당장에 요리사를 찾아 부엌으로 뛰어가 물었다.

“그대는 이 전복죽의 맛이 왜 이렇다고 생각합니까?”

“전복에는 살보다는 내장에 영양분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더 넣어 죽을 끓였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먹어야 그 영양을 흡수할 것이 아닌가?”

“영양을 생각하면 맛은 다음에 생각해도 될 일입니다.”

마치 이곳 부엌을 자신의 세상이라는 듯 도도하게 말을 이어가는 요리사의 모습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재정을 담당하는 아가씨를 찾아가 물었다.

“오늘 아침 전복죽을 끓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양을 구입하였습니까?”

“요리사가 세 가마니를 주문해 달라 하여 그리하였습니다. 그 정도면은 한 그릇에 꽤 많은 양의 전복이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손님에게 나간 전복죽에는 살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온통 내장의 비릿한 향으로 가득했지요? “

“그럴 리가 없습니다.”

“솥에도 그 고기를 찾기가 드문드문하였습니다.”

“흠....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나는 다시 처음 문제를 찾아낸 이를 불러서 이유를 물었다.

“저 정도의 전복죽이면 얼마의 전복이 필요할 것 같습니까?”

“한 가마니를 넣어도 저것보다는 많을 것입니다.”

“세 가마니라면?”

“세 가마니를 모두 넣었다면 쌀이 반이고, 전복이 반일 것입니다.”

나는 중기를 불러 그의 동생들과 함께 부엌으로 가서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전복을 찾아보라 시켰다.

“그대는 어찌하여 맛과 그 양을 잘 아는가?”

“삶이 귀족과 천민으로 구별하여 태어나지 않듯이 저희 또한 부랑자로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

“오래전에 큰 관청에서 요리 업무를 맡아보았더랬지요.”

“관청에서 요리를 맡았다면 그 실력이나 이름이 알려졌을 텐데 어찌하여 부랑자가 되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나는 우선 눈앞에 닥친 부엌의 문제점을 찾는 게 급하다 생각하여 더 이상 묻지를 않고 돌려보냈다.

“남은 전복이 있더냐?”

“없었다.”

“큰일이다. 주문한 것은 세 가마니, 들어간 것은 많이 쳐야 한 가마니이고, 남은 것은 없다… 니.”

“요리사에게 물었더니 세 가마니 모두 넣었다고 한다.”

“그럼 더욱 큰일이구나. 내가 보아도 세 가마니를 모두 넣은 양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요리사가 전복을 빼돌려 몰래 사리를 취한 것이 아니냐?”

“증좌가 없다.”

“내가 벽란도의 시전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찾을 것이다.”

“그래 부탁한다.”

“아가씨께서는 이 전복을 어디서 구매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네. 늘 저희에게 해산물을 공급하는 어전에서 구매했습니다.”

“중 기이는 그 어전부터 시작해보도록 해라.”

“알겠다.”

“그리고 요리사가 일이 끝난 후에 누구를 만나는지도 잘 살펴보고.”

아가씨와 중기와 함께 요리사의 뒤를 캐보기로 했다.

“아가씨 만약 요리사가 재료를 빼돌려 사리를 취했다면 가만히 둘일은 아닙니다.”

“관아에 발고를 하여 죗값을 치르게 해야겠지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요리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이렇게 많은 인원의 요리를 한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거기다가 맛과 영양도 포기할 수도 없으니 꽤나 실력이 있는 요리사여야 합니다.”

“그렇겠지요. 우선 주변의 원에서 인원이 남는 요리사를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안된다면 임시방편으로 아버님 밑에서 일하고 있는 요리사를 불러봐야 할 테지요.”

“휴… 어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욕심이 그렇지요.”

나는 답답한 마음에 민주 누이를 찾아가 이 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사람이 그럴 줄은 몰랐다. 이곳에서 일을 할 때는 성실한 자였는데. 어찌하여?”

“글쎄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삯도 충분히 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부족했나 봅니다.”

“이 일이 어찌하여 네 책임이냐?”

“좀 더 면밀히 살폈어야 할 일들입니다.”

“답답한 마음은 알겠으나 처음 발생한 일이다. 이일을 표본으로 삼아 같은 일이 발생하게 하지 않으면 된다.”

민주 누이는 늘 이런 식이다. 항상 나를 응원해주고, 나의 편이 되어준다. 그래서인지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누이를 찾아 힘을 얻으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얼마가 지나지 않아서 중기가 투전판에 있던 요리사를 잡아와 모든 사실을 직고 하게 하였다.

“재료를 빼돌려 사리를 취하였느냐?”

“……”

“답하라. 그 답에 따라 관아에 너를 발고할지 정하겠다.”

“그... 렇... 습... 니... 다.”

“어찌하여 그랬느냐?”

“투전꾼에 협박당했습니다.”

“협박이라니?”

“우연찮게 투전의 자리에 끼었다가 돈을 따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재미가 들게 되었고 자주 찾게 되었습니다.”

“한데 어느 날부터인가 돈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투전꾼에게 돈을 빌려서 하게 되었고, 점점 쌓이다 보니 제가 감당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재료를 빼돌렸느냐?”

“네. 재료를 빼돌려 투전꾼들에게 넘겼습니다.”

“옳지 못하다.”

“노모와 어린 자식을 돌보고 있습니다. 벌은 달게 받겠사오나 부디 관아에만 발고치 말아주십시오.”

“하…”

“그의 말에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관아에 발고를 하여 일벌백계로 삼아야 합니다.”

“그냥 둔다면 반듯이 화근이 될 것입니다.”

“하…”

“당장에 너를 관아에 발고하여 그에 해당하는 벌을 받게 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너의 노모와 어린 자식이 눈에 밟히니 그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 너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으나 너를 멀리한다면 반드시 우리 누각에 해코지를 할 것이다. 곁에 두어 그 벌을 대신할 터이니 감당하도록 해라.”

“객주 그를 다시 요리사로 두고자 합니까?”

“객주 일벌백계를 하여야 합니다,”

“……”

“객주!!!”

“너는 더 이상 요리사로서 요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요리사의 마음가짐과 요리를 다시 기초부터 닦도록해라. 이제부터 우리 호태누각의 요리사는 저이다.”

모두들 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이를 향해 눈을 돌렸다. 처음 문제를 발견해낸 부랑자였다.

“객주 어찌하여 근본도 모르는 이에게 이 중요한 요리사 직책을 맡기려 합니까?”

“아가씨께는 따로 말씀드리겠나이다.”

“자네의 이름이 곽가에 동원이 아닌가?”

“어찌 아셨습니까?”

무척 놀란듯한 표정으로 그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 음식의, 식당의 문제점을 찾아낸 너를 무척 궁금해하던 차였다. 그리고 큰 관청에서 일했다는 말을 듣고 개경의 어르신께 연통을 띄어 여쭈어봤다.”

그리고는 공씨 어르신께서 답으로 보낸 편지를 아가씨에게 보여줬다.

“자네는 궁궐에서 왕의 음식을 만들었던 요리사가 아닌가?”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곽동원을 쳐다보았다. 그는 부끄러워서인지, 정체가 알려져서인지 고개를 푹 숙이고 답이 없다.

보아라

네가 알려준 내용을 기초로 해서 여러 지인에게 알아보았다.

몇 년 전에 궁궐에서 왕의 음식을 담당했던 이가 벌을 받고 쫓겨난 사건이 있다고 한다.

워낙에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여 왕에게 올릴 음식을 가지고 여러 가지로 실험을 한 모양이다.

그 일로 인해서 주변으로부터 미움을 사고 왕의 음식을 소홀히 대한 죄로 쫓겨났다고 한다.

이름은 곽가에 동원이라고 하며, 만약 그이가 맞다면 음식에 대한 실력만큼은 뛰어나다고 하니,

잘 설득하여 함께함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된다.

편지를 읽은 아가씨의 표정이 금세 놀람으로 바뀌었다.

“이곳 호태누각에서 음식을 향한 그대의 꿈을 이뤄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손에서 칼을 놓은 지가 한참입니다.”

“아니오 칼은 잠시 놓았지만 음식에 대한 애정은 변하지 않았소, 변했다면 과연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를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가 있단 말이오?”

“이미 저에 대해서 많이 아실 거라 생각됩니다. 그런 저에게 이 누각의 부엌을 맡긴다면 염려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오. 오히려 그대의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높이 생각합니다. 이곳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머물고 있습니다. 매일 똑같은 고려의 음식을 내는 것보다는 다양한 음식을 내어드리는 것이 모두에게도 옳다고 생각하오. “

“객주의 은혜가 하늘과 같습니다. “

“아니오. 나는 그저 땅에 불과합니다. 나를 밟고 여러분의 꿈을 이루신다면 더 할 것이 없습니다. “

부엌을 맡게 된 곽동원은 궁궐에서 요리하던 솜씨를 곧바로 뽐내기 시작했다. 음식에 대한 소문은 벽란도 여기저기에 퍼졌으며, 굳이 누각에서 머물지 않더라도 맛을 보기 위해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호태누각이 많은 재물을 모으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곽동원의 음식 솜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리사의 재료 횡령의 사건으로 시끄러웠던 누각은 다시 활기찬 움직임으로 가득했다. 부엌으로 돌아간 곽동원은 훌륭한 솜씨로 각 나라에서 온 객들을 만족시켰으며, 새로 일꾼으로 들어온 부랑자들은 더럽고,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맡은 바에 충실했다. 이렇게 다들 열심히 일해주니 손님들은 모두 만족해하며 교역을 마치고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keyword
이전 07화7화 새로운 일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