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쌤 Dec 09. 2022

무음...미움 모음 미음 마음

 무음 [無音] : 소리가 없음. 또는 소리가 나지 않음.

여름 나무 위에서 재잘재잘 똥을 뿌리던 철새들

바닥 가득 희끗희끗 난장질도 아랑곳 않더니 어느덧 고요하다.

 

가을 나무는 기억조차 없고,

겨울나무에서 뒤처진 듯한 몇 마리 녀석들의 소리를 가만 들어보니 들키기 싫은 듯 조심스럽다.


모른 척 나무 앞 치킨 집 냄새 좋다 걸음을 옮기며

내일 퇴근길에는 너희에게 아직 따뜻한 곳으로 못 돌아간 이유를 물어봐야지 한다.


바람이 더욱 매서워진 내일 나무는 아예 조용하다. 무음 그 자체였다.

그새 떠나고 없는 너희들은 그래서 이름이 뭔지,

뒤처졌던 이유는커녕 배웅의 말도, 지난여름 퍼부었던 짜증도 놓쳐버렸다.



오랜 세월 함께 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알고 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까.

나중도 없고, 마음먹을 시간도 없다.

지나가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온갖 미움을 담아 렸던 모음도...

미음을 썼다 지웠다 날려버린 마음도....

그토록 재잘재잘 시끄러웠던 머리도

아무렇지도 않게 먹먹해진다.


마침내 대답을 듣게 되는 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늘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걷고 있다.

 



 길 한가득 분명 똥 자국이었는데, 새들이 떠나니 비와 시간이 길을 치유하는 듯 하다.


마음도 그런 것 같다.

 '미음'만 썼다 지웠다 하지 말고 '미안하다', '마음이 헛헛하다'를 보내보자.

 

사나운 모음 'ㅗ' 대신 따뜻한 마음을 전해 보자.

나의 무음 모드를 먼저 해제할 때이다.



[행시 소회]

: 무너져가는 마음을 숨기려고 무음 모드 설정 중이라면

: 음... 많이 답답한 중일 걸요? 

     이만 마음 "on"! 온기가 필요해요.  

이전 04화 '무난하다' 좋은 거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